탄산에서 과자까지…한국 식품시장 장악한 ‘제로’
한국 식품시장에서 ‘제로(Zero)’는 더 이상 일부 탄산음료에 붙는 수식어가 아니다. 제로슈거 탄산음료에서 시작된 흐름은 어느새 과일음료와 커피, 아이스크림, 젤리, 과자, 주류 등 다양한 식음료군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기존 제품의 맛과 단맛은 즐기면서 당이나 칼로리에 대한 부담을 낮추려는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한국만큼 ‘제로’라는 키워드가 식품 전반을 아우르는 소비 트렌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물론 ‘糖類ゼロ(당류 제로)’, ‘糖質ゼロ(당질 제로)’, ‘カロリーゼロ(칼로리 제로)’ 등을 내세운 제품은 이미 존재한다. 다만 한국처럼 음료를 넘어 다양한 식품군에서 ‘제로’ 자체가 강력한 마케팅 키워드로 확산된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자료 : KOTRA 도쿄무역관 촬영]
일본의 ‘無糖(무당)’과 한국의 ‘제로’… 같은 개념으로 봐도 될까
일본의 제로 시장을 살펴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제로’ 제품을 일본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無糖(무당)’과 그대로 대응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 차음료 대기업 이토엔(伊藤園)의 2026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 국내 음료시장에서 무당음료(無糖飲料)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기준 57%에 달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녹차와 보리차, 우롱차, 블랙커피 등 본래 단맛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음료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 수치를 한국에서 최근 성장한 ‘제로슈거’ 시장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기사에서 주목하는 한국의 ‘제로’는 기존에 단맛이나 열량이 있던 제품에서 이를 줄이거나 없애면서도 맛을 유지한 제품이 새로운 선택지로 성장한 현상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이에 가까운 제품을 찾으려면 단순한 ‘無糖(무당)’보다는 ‘糖類ゼロ(당류제로)’, ‘糖質ゼロ(당질 제로)’, ‘カロリーゼロ(칼로리 제로)’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 표현의 의미도 다르다. 일본 소비자청의 식품표시기준상 ‘糖類(당류)’란 단당류와 이당류 가운데 당알코올을 제외한 것을 말하며, 식품 100g 또는 음료 100㎖당 0.5g 미만이면 ‘糖類ゼロ(당류제로)’와 같은 표시가 가능하다. ‘糖質(당질)’이란 탄수화물에서 식이섬유를 제외한 보다 넓은 개념으로, ‘糖類ゼロ(당류 제로)’라고 해서 반드시 ‘糖質ゼロ(당질 제로)’인 것은 아니다. ‘カロリーゼロ(칼로리 제로)’ 역시 완전한 0㎉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100g 또는 100㎖당 열량이 5㎉ 미만이면 ‘제로’ 표시가 가능하다. (26.9.1. 기준, 일본 소비자청 홈페이지 참고)

[자료 : KOTRA 도쿄무역관 촬영]
일본에서도 보이는 변화…‘달콤한 제로 ’ 제품 확대
최근 일본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코카콜라가 2025년 3월 출시한 미닛메이드 제로슈거 레모네이드(ミニッツメイド ゼロシュガーレモネード)’다. 기존 제품과 달리 과일음료의 맛을 즐기면서 당과 칼로리를 낮춘 제품이다.
시장 반응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 코카콜라에 따르면 해당 제품의 2025년 3월~12월 출하 실적은 당초 계획의 1.6배를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제로슈거 피치 레모네이드(ミニッツメイド ゼロシュガー ピーチレモネード)’를 추가하며 제품군을 확대했다. 일본에서도 ‘달콤한 음료를 마시고 싶지만 당과 칼로리는 신경 쓰인다’는 수요가 실제 소비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로 제품은 음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롯데 역시 ‘ZERO’ 시리즈를 통해 설탕과 당류를 사용하지 않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하고 있다. 2025년 보도에 따르면,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2023 회계연도 ZERO 시리즈 판매량은 2018 회계연도 대비 약 340% 증가하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아직 한국처럼 식품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한 트렌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제로의 적용 범위가 음료 이외의 영역으로 넓어질 기반은 이미 존재하는 셈이다.
시사점 : ‘무가당 강국’ 일본에서 ‘제로’의 다음 시장을 찾아라
일본 제로 시장을 바라볼 때 핵심은 ‘일본에는 무당 제품이 적다’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일본은 국내 음료시장의 절반 이상을 무당음료가 차지할 정도로 당이 없는 음료에 익숙한 시장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존 무가당 소비와 별개로, ‘원래 달콤한 제품의 맛은 유지하면서 당이나 칼로리를 줄이는’ 제로계 제품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확대되느냐다.
일본 식품・음료 시장조사 기관 애널리스트 F씨는 "최근 몇 년간 건강과 칼로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로 칼로리 제품과 대체감미료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기존 무가당 음료 시장과는 별개로, 단맛을 유지하면서 당과 칼로리를 낮춘 제품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식품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제로 음료를 시작으로 주류, 빙과, 과자, 젤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제품을 개발해온 경험이 축적돼 있다. 일본에서 제로계 식품이 향후 본격적으로 다양화된다면 이러한 경험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
다만 ‘한국에서 제로가 성공했으니 일본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이미 무가당 음료가 일상화된 일본에서는 단순히 ‘당이 없다’는 것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렵다. 일본 소비자의 입맛과 제품별 수요에 맞춰 ‘제로인데도 맛있다’는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일본은 ‘제로가 없는 시장’이 아니다. 다만 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가당·제로 제품을 소비해온 시장이지만, 아직 한국처럼 ‘제로’ 자체가 식품 전반을 아우르는 소비 트렌드로 확장되지는 않은 시장에 가깝다. 일본의 ‘제로’가 일부 제품의 특징을 넘어 한국처럼 하나의 시장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료 : 주식회사 이토엔(伊藤園), 일본 코카콜라 주식회사, 주식회사 PR TIMES, 일본 소비자청, KOTRA 도쿄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