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하지 않는 방재, ‘페이즈 프리(Phase Free)’의 등장
2026년, 일본 수도권 및 난카이 대지진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과 매년 발생하는 돌발적·국지적인 호우(선형 강수대) 속에서 일본인의 방재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가정에서는 오랫동안 반복돼 온 고민이 있다. 그것은 '지진에 대비해 구입한 방재 배낭이나 구급용품이 창고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거나, '비상식량의 유통기한이 지나 그대로 버려진다'는, 이른바 ‘방재용품의 유휴화 및 폐기 문제’이다.

[자료: 에디온 난바 본점]
이러한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해결하고, 일본의 소비재·소매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키워드가 바로 ‘페이즈 프리(Phase Free)’이다. 페이즈 프리란 평상시(일상)와 비상시(재해)라는 두 가지 페이즈(단계)의 구분을 없애고, “평소부터 마음에 들어 자주 이용하던 물건이나 서비스가 재해 발생 시에도 특별한 조작 없이 그대로 유용한 생존 도구가 된다”는 개념이다. ‘비축하지 않는 방재’ 혹은 ‘생활과 밀착된 방재’라고도 불리는 이 흐름은 단순한 친환경이나 사회 공헌을 넘어 고부가가치 소비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편, 손보재팬 조사에 따르면 페이즈 프리에 대한 인지도는 22.2%에 그쳐, 그 보급을 도모하기 위해 내각부는 6월에 페이즈프리 촉진을 위한 전문가 검토회를 신설해 첫 회의를 개최했다. 11월에 발족 예정인 방재청은 이를 주요 과제로 삼아 추진할 방침이다.
급속히 확대되는 페이즈프리 시장… 2026년에는 470억 엔 규모로 두 배 증가할 전망
일본 국내의 페이즈 프리 관련 상품 및 서비스 시장 규모는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장 조사 기관인 야노 경제 연구소가 발표한 『페이즈프리 시장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인증 제품 및 관련 상품의 일본 내 시장 규모는 2024년 232억 엔(약 2068억 원)에서 2026년에는 470억 엔(약 4189억 원)으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개인 소비자의 ‘일상생활에서의 안심’에 대한 수요뿐만 아니라, 기업의 BCP(사업 연속성 계획) 대책 및 지방자치단체의 조달 기준(B2B/B2G)에서 페이즈프리 인증 및 기준이 신속하게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위: 억 원, %)

※ MUFG Bank Exchange Quotations(2026년 7월 31일, TTM, 100KRW = 11.22JPY)의 환율을 기준으로 환산
[자료: 야노경제연구소 『페이즈프리 시장에 관한 조사(2025년)』를 바탕으로 KOTRA 도쿄무역관 재구성]
사례를 통해 본 페이즈프리 최신 히트 트렌드 (2025~2026년)
페이즈프리 상품은 단순히 ‘방재 용품의 외관을 세련되게 다듬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패션, 가구, 가전, 스마트 인프라, 식품에 이르기까지 일상 소비재 전반에 걸쳐 강력한 히트 상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1. 패션·의류: 일상과 비상시를 아우르는 에이스의 다기능 ‘RUGGRENTICE’과 압축 기능을 갖춘 ‘SPACEOPT’

[자료: 에이스(ACE)]
일본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가방 브랜드 ‘에이스(Ace)’는 2023년부터 페이즈프리 개념을 도입한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누적 판매량 50만 개를 넘는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기반으로, 대피 시 유용한 기능을 탑재한 비즈니스 백팩 ‘가제터블 PF’를 비롯해, 대피소에서 간이 책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여행가방 ‘테오필드’, 수난 시 생명을 지키는 부력을 갖춘 ‘플로트 비즈 백팩’ 등 페이즈프리 관점에서 제품군을 전개하고 있다. 비즈니스맨과 B2B 기업의 구매 담당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 회사는 일반사단법인 페이즈프리 협회가 주최하는 ‘페이즈프리 어워드 2025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2. 사무용 가구: 알루미팩토리의 ‘1대 4역’ 재해 대응 파티션 ‘ALCARA(알카라)’

[자료: PRTIMES, 알루미팩토리]
평소에는 사무실 내 회의실이나 업무 공간을 구분하는 모던한 알루미늄 파티션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재해 발생 시에는 특별한 공구 없이 몇 분 만에 테이블·침대·화이트보드로 전환할 수 있는 ‘1대 4역’ 사양 덕분에, 기업의 BCP 대책 필수 구매 품목으로 등록되었다.
3. 물류: 평시와 비상시의 원활한 물류를 위한 세이노HD, 에어로넥스트, NEXT DELIVERY가 공동 개발한 ‘SkyHub®’

[자료: 세이노HD, 에어로넥스트, NEXT DELIVERY]
B2C 및 G2C 분야에서도 페이즈 프리 서비스가 도입되고 있다. 평소에는 인구 감소 지역이나 산간 오지에 거주하며 쇼핑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고령자)에게 생활 필수품이나 드론을 통한 배송을 제공하는, 평일의 일상적인 물류 인프라로 운영되고 있다. 2024년 노토 반도 지진 당시, NEXT DELIVERY는 실제로 고립된 지역에 의약품을 드론을 통해 배송한 실적이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평시 인프라를 재해 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SkyHub® Emergency Package’ 체계 구축이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존 방재 비즈니스와 페이즈 프리 비즈니스의 구조 비교
왜 지금 일본의 소매 기업과 지자체는 기존의 ‘전문 방재 용품’ 대신 페이즈 프리 모델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양자의 구조적 차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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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항목 |
기존의 방재용품 모델 |
페이즈 프리 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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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용 시기 |
긴급 상황(재해 발생 시)에만 일시적으로 사용 |
일상생활(365일) + 비상시 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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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구매 심리 |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비상시의 지출(비용, Cost) |
매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 안심도 얻을 수 있는 가치(QOL, Va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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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공간 활용 |
투박하고 소박함. 창고·신발장에 보관하는 것을 전제로 함 |
인테리어나 일상 패션과 조화를 이루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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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기반 |
B2C 개인 대상(일회성 구매) |
B2C + B2B(사무실·주택) + B2G(지자체 조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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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 및 재구매 |
유통기한 경과 시 폐기 및 방치 위험 |
일상적인 소비 및 롤링 스톡을 통한 지속적인 선순환 |
[자료: KOTRA 도쿄무역관 작성]
페이즈 프리 성공을 이끄는 4가지 핵심 메커니즘(Business Key Factors)
일본 시장에서 페이즈프리 상품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4가지 공통 전략이 도출된다.
1. 디자인 및 일상적인 삶의 질(QOL)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음(Guilt-Free & High Utility). 방재 용품 특유의 ‘투박함’이나 ‘위기감’을 완전히 배제하고, 소비자가 거실이나 사무실, 출퇴근 길에 두고 싶어 할 만큼 뛰어난 디자인과 실용성을 고려한다.
2. ‘비용(Cost)’에서 ‘부가가치(Value)’로의 가치 재정의.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해를 위해 돈을 쓴다’는 거부감을 없애고, ‘매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다’는 확실한 가성비와 만족감을 제공했다.
3. B2C를 넘어 B2B·B2G 시장으로의 수평적 확장. 개인 소비자 시장뿐만 아니라 사무실 인테리어, 분양 아파트의 기본 옵션, 지자체의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 등 공공 조달(B2G) 및 기업 조달(B2B) 규격에 페이즈프리 사양을 적용하여 대량 납품 판로를 개척했다.
4. 신뢰 제도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일반사단법인 ‘페이즈프리 협회’의 페이즈프리 인증 마크(Phase Free Mark) 및 ‘페이즈프리 어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비자와 기업의 구매 담당자에게 ‘검증된 브랜드’라는 신뢰감과 제품 개발 스토리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자료: 페이즈프리 협회]
시사점
일본의 ‘페이즈프리’ 트렌드는 대일 수출이나 일본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 일본 생활용품 유통업계 관계자 H씨는 “페이즈프리 제품은 비상시 기능뿐 아니라 평소의 사용성과 디자인도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도 일상과 재해 발생 시의 활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은 디자인이 뛰어난 소형 가전, 아웃도어 용품, 생활 잡화, 간편식(HMR) 등을 선보일 때 ‘일상의 편의성’과 ‘비상시의 안심’을 함께 전달하는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 제품의 디자인과 가격뿐
아니라 재해 발생 시 활용 가능한 기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제품 차별화와 부가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일본 페이즈프리 협회의 인증 기준과 신청 요건을 확인하고, 인증 취득이나 관련 어워드 응모를 통해 현지 바이어·소비자의 신뢰와 미디어의 관심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기업의 BCP 대책과 지자체의 재해 대응 수요에 맞춘 B2B·공공 조달 시장 진출도 모색할 수 있다. 부품·소재, 가구 조립 구조체, 휴대용 전력 제어 기술, 센서 기반 IoT 기기 등을 보유한 한국 기업은 일본 건설사·사무용 가구 유통업체 등과의 OEM·ODM 협력을 검토하고, 현지 납품 규격과 조달 요건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페이즈프리는 일상의 삶의 질 향상과 재해에 대한 대비를 함께 추구하는 소비 수요와 맞닿아 있다. 한국 기업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제품 기획 단계부터 일상적 사용성과 비상시 활용성을 결합하고, 소비재와 기업·공공 조달 시장별 수요에 맞는 진출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료: 에디온, 야노경제연구소, 에이스, 알루미팩토리, 세이노HD, 에어로넥스트, NEXT DELIVERY, 페이즈프리 협회 각사 자료 및 KOTRA 도쿄무역관 자체 조사를 종합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