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공급 충격에 가스 가격 급등, 낮은 저장률에도 수입망은 안정
2026년 2월 말 중동 분쟁이 격화한 이후 유럽 천연가스 시장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3월에는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LNG 생산단지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카타르 LNG 수출능력의 약 17%에 해당하는 액화설비 2기가 손상됐다.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복구에 3~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LNG 운송이 분쟁 이후 위축된 가운데 일부 운항이 재개되고 있으나, 공급 불확실성은 이어지고 있다.
유럽 가스 가격의 대표 지표인 네덜란드 TTF* 1개월물 선물가격은 분쟁 전 MWh**당 30유로 안팎이었으나 2026년 9월 14일 장중 83.75유로까지 올라 2022년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가격이 일부 조정을 받았지만 9월 말에도 MWh당 70유로대를 유지하며 분쟁 전의 두 배 이상 수준을 이어갔다.
*주: 네덜란드에 있는 천연가스 거래시장으로, 유럽 가스 가격의 기준 지표로 활용
**주: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1TWh는 100만 MWh임
에너지 가격 상승은 독일의 물가와 경기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 연방통계청(Destatis)이 2026년 9월 30일 발표한 속보치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3%, 에너지 물가는 14.9% 올라 8월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연방경제에너지부(BMWE)도 높은 에너지 가격과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 등이 민간소비와 경기 흐름을 제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방네트워크청(BNetzA)에 따르면 독일의 가스 저장률은 2026년 9월 30일 업데이트 기준 57.9%(143.4TWh)로 과거 같은 시기보다 낮다. 법정 저장 목표는 2026년 11월 1일까지 저장시설별 80%(일부 시설 45%)다. 다만 BNetzA는 가스 수입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저장률만으로 공급안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2026년 9월 23~29일 독일은 파이프라인으로 14.9TWh, 국내 LNG 터미널로 2.1TWh를 수입했다. 낮은 저장률에도 파이프라인과 LNG 수입이 공급을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 가스 수입의 중심은 여전히 파이프라인이다. 2025년 전체 가스 수입에서 노르웨이(44%), 네덜란드(24%), 벨기에(21%)가 주요 공급국이었다. 같은 해 독일 LNG 터미널을 통한 수입은 106TWh로 전체의 10.3%였으며, 에너지수자원산업협회(BDEW)에 따르면 이 중 약 96%가 미국산이었다. LNG는 러시아산 공급 감소 이후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수급 변동에 대응하는 보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긴급 도입한 FSRU에서 상설 육상 터미널로
독일은 2022년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급감하자 건설기간이 짧은 부유식 저장·재기화설비(FSRU)*를 우선 도입했다. 현재 빌헬름스하펜 1·2, 브룬스뷔텔, 슈타데, 무크란 등 5개 FSRU 거점이 구축됐으며, 이 가운데 슈타데를 제외한 4곳이 가스망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슈타데에는 FSRU ‘에너고스 포스호(Energos Force)’가 2026년 9월 15일 접안해 시운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운영사 도이치에너지터미널(DET)은 11월 초 첫 LNG 화물이 입항할 것으로 예상했다(2026년 9월 16일 발표 기준).
*주: 선박에 LNG를 저장한 뒤 다시 기체로 바꿔 육상 가스망에 공급하는 해상 설비
독일 정부는 긴급 도입한 FSRU를 장기적으로 육상 LNG 터미널로 대체할 계획이다. BMWE에 따르면 독일 LNG 터미널의 연간 수입능력은 2025년 약 150억 ㎥에서 2027년 250억㎥로 늘고, 향후 육상 터미널이 가동되면 최대 340억 ㎥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브룬스뷔텔에서는 저먼 LNG터미널(German LNG Terminal)이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연간 최대 100억 ㎥ 규모의 터미널을 건설하고 있다. 독일재건은행(KfW) 50%, 네덜란드 가스유니(Gasunie) 40%, RWE 10%가 출자했으며, 16만 5000㎥ 규모의 LNG 저장탱크 2기가 들어선다. 향후 수소 파생물*도 취급할 수 있도록 전환 가능성을 고려해 설계됐다.
*주: 수소를 운반·저장하기 쉽도록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변환한 형태로, 암모니아 등이 대표적
슈타데에서는 한자에너지허브(Hanseatic Energy Hub, HEH)가 연간 133억 ㎥ 규모의 육상 터미널을 건설하고 있다. 24만 ㎥ 규모 저장탱크 2기를 갖추고 향후 암모니아도 취급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가동 목표는 당초 2027년에서 2029년으로 미뤄졌다. 빌헬름스하펜 육상 터미널은 초기 단계로, 사업자 트리에너지솔루션스(Tree Energy Solutions, TES)는 2030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일정에 따라 FSRU와 육상 터미널이 병행 운영되는 기간도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사점
이처럼 과도기가 길어질수록 FSRU 운영·정비 수요와 육상 터미널 기자재 조달 수요가 함께 이어질 수 있다. FSRU 건조와 LNG 인수기지 운영 경험을 갖춘 한국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독일 LNG 수입망과 접점이 있다. 독일에 투입된 FSRU 5척 중 4척이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됐다. ‘회그 에스페란자호(Höegh Esperanza)’(2018년)와 ‘회그 개닛호(Höegh Gannet)’(2018년)는 HD현대중공업, ‘엑셀시어호(Excelsior)’(2005년)는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넵튠호(Neptune)’(2009년)는 삼성중공업이 건조했다. 이러한 건조 경험은 독일 LNG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 역량을 보여주는 참고 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육상 터미널 건설이 진행되면서 기자재 발주도 구체화되고 있다. 브룬스뷔텔의 설계·조달·시공(EPC*)은 스페인 코브라(COBRA)와 세네르(Sener)의 합작사 CS가스노스(CS Gas North)가, 슈타데는 스페인 테크니카스레우니다스(Técnicas Reunidas)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맡고 있다. 저먼 LNG터미널에 따르면 건설 관련 발주는 CS가스노스가 맡고, 사업자가 직접 발주하는 공급·서비스 계약은 독일 전자조달 플랫폼(DTVP)을 통해 공고한다.
*주: 설계(Engineering), 기자재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을 한 업체나 컨소시엄이 일괄 수행하는 사업 방식
실제 극저온 펌프 등 일부 핵심 설비는 이미 발주가 이뤄졌다. 일본 닛키소(Nikkiso)는 두 터미널의 EPC사로부터 극저온 펌프를 잇달아 수주했다. 국내 기업도 하역·저장·재기화 설비, 극저온 밸브·배관, 가스 분석·누출 감지 등 안전·계측 장비 분야에서 프로젝트별 진입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이들 분야는 한국 기업이 실적을 쌓아온 영역이다. 한국은 2025년 LNG 수입량 4867만 톤으로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LNG 수입국이며*, 한국가스공사가 평택·인천·통영·삼척 등에서 대규모 LNG 인수기지를 운영해 왔다. 또한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 LNG 운반선 수주의 60% 안팎을 차지하면서 극저온 밸브·펌프, 단열재 등 LNG 기자재 공급망도 국내에 폭넓게 형성돼 있다.
*주: 국제가스연맹(IGU) 'World LNG Report 2026'
다만 주요 EPC 업체가 이미 선정됐고 일부 핵심 설비 발주도 진행된 만큼, 대규모 신규 수요를 전제로 하기보다는 EPC사 협력사 등록을 통한 잔여 기자재·하도급 물량, 시운전·유지보수, 향후 암모니아·수소 전환 설비 등을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품별로 적용되는 EU 압력기기지침(PED*)과 방폭지침(ATEX**) 등 인증 요건도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주: EU 역내에 유통되는 최대 허용압력 0.5bar 초과 압력기기의 설계·제조·적합성 평가 요건을 정한 지침
**주: 폭발 위험 환경에서 사용하는 기기와 보호시스템의 안전 요건을 정한 EU 지침
자료: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E),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 독일 연방통계청(Destatis), 독일 에너지수자원산업협회(BDEW), QatarEnergy, Deutsche Energy Terminal(DET), German LNG Terminal, Hanseatic Energy Hub(HEH), TES, Höegh LNG, 한국무역협회(KITA), Nikkiso CE&IG, Handelsblatt, Euronews, Reuters, KOTRA 프랑크푸르트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