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4일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이하 IAA)을 두고 EU 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 기관별 입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IAA는 역내 높은 에너지 비용, 글로벌 과잉생산, 전략산업의 역외 의존 심화에 대응해 역내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탈탄소화를 촉진하기 위한 법안으로,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 2025년 2월 발표)을 구체화하는 핵심 이니셔티브다. 집행위원회는 IAA를 통해 EU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4년 14.3%에서 2035년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집행위원회 IAA 제안 주요 내용(2026.3.4.)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IAA는 크게 ①공공조달·공적 지원에 유럽산·저탄소 요건 의무화, ②전략 분야 내 외국인직접투자(FDI)에 투자 조건 부과, ③산업 제조 가속화 구역 지정 및 인허가 간소화로 구성된다.
① 공공조달·공적 지원에 유럽산(Made in Europe)·저탄소 요건 의무화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 산업, 배터리·태양광·풍력·히트펌프 등 넷제로 기술, 자동차 분야 내 공공조달과 공적 지원에 유럽산(Made in Europe) 및 저탄소 요건을 도입한다. 공공부문의 구매력과 보조금을 활용해 역내에서 생산되는 저탄소 제품에 안정적인 수요, 즉 선도시장(lead market)을 조성함으로써 제조 역량 강화와 친환경 전환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품목별로 적용되는 요건에는 차이가 있다. 철강의 경우 2029년부터 건축물·인프라·자동차에 사용되는 철강의 최소 25%를 저탄소 제품으로 사용하도록 하되, 별도의 유럽산 요건은 없어 비유럽산 제품도 저탄소 기준을 충족하면 인정된다. 반면 알루미늄은 최소 25%, 콘크리트·모르타르는 최소 5%를 유럽산이면서 동시에 저탄소인 제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자동차의 경우, 전기차·외부 충전식 하이브리드·수소연료전지차는 원칙적으로 EU에서 최종 조립하고, 배터리를 제외한 차량 부품 가치의 최소 70%를 유럽산으로 조달하도록 했다. 배터리 역시 셀, 양극활물질,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주요 부품에 대해 유럽산 요건을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유럽산 범위에 대해 집행위원회는 EU와 FTA·관세동맹을 체결했거나 WTO 정부조달협정(GPA)에 가입한 국가 제품도 원칙적으로 유럽산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제안했다. 다만 상대국이 EU 제품을 차별하거나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해당 국가를 유럽산 인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적용할 예정이다.
② 전략 분야 외국인투자(FDI)에 투자 조건 부과
배터리·전기차·태양광·핵심 원자재의 4대 신흥 전략 분야*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외국인직접투자에 별도의 승인 요건을 적용한다. 투자 규모가 1억 유로를 초과하고, 투자자의 국적국이 해당 분야의 글로벌 생산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초과하는 경우 적용 대상이며, 해당 투자자는 EU 내 고용 창출과 R&D 수행, 역내 조달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편, △EU와의 FTA·경제동반자협정(EPA)에 관련 투자 약정이 포함된 경우, △서비스 제공 목적의 투자, △포트폴리오 투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 (세부 적용 분야) △배터리(배터리 기술, 에너지저장시스템(BESS) 관련 밸류체인), △자동차(순수 전기차, 외부 충전식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및 전동화・디지털화 관련 부품), △태양광(PV) 기술, △핵심 원자재의 채굴・가공・재활용. 참고로 집행위원회는 향후 위임법(delegated acts)을 통해 EU 경제안보에 중요한 전략 분야를 추가할 수 있다.
적용 대상 투자자는 EU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6개 조건* 중 최소 4개를 충족해야 하며, 이 가운데 EU 역내 근로자 고용 비중 50% 이상은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필수 요건이다.
* (EU 경제 기여 요건) △외국인 지분·통제권 49% 이하, △EU 기업과의 합작투자 및 EU 측의 실질적 경영 참여, △EU 측에 지식재산권・노하우의 라이선스 제공 및 기술이전, △EU 내 R&D 투자(연 매출의 최소 1%), △EU 역내 근로자 고용 비중 최소 50%(필수), △EU 밸류체인 강화 전략 공개 및 투입재의 최소 30% 역내 조달 노력
③ 산업 제조 가속화 구역 지정 및 인허가 간소화
전략산업의 생산 기반 확대와 투자 촉진을 위해 각 회원국은 IAA 발효 후 12개월 이내에 최소 1개의 ‘산업 제조 가속화 구역(Industrial Manufacturing Acceleration Area)’을 지정해야 한다. 해당 구역에서는 여러 프로젝트에 공통으로 요구되는 환경평가와 인허가를 사전에 일괄 처리하는 통합 기본허가(aggregated baseline permit)를 도입해 기업의 행정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또한, 단일 접근 창구(Single Access Point)를 통해 산업 제조 프로젝트의 인허가 절차를 디지털 방식으로 통합 운영한다. 기업이 단일 창구를 통해 신청하면 담당 기관은 접수 후 45일 이내에 신청서의 완부 여부를 확인하고, 이후 지정기관이 관련 기관 간 절차를 조율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EU 이사회 논의 동향
2026년 6월 말 EU 이사회 의장국 키프로스는 회원국 간 이견이 큰 ‘유럽산’ 인정 범위는 추후 논의로 남겨두고, 산업 제조 가속화 구역 지정 및 외국인투자 요건을 중심으로 한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 타협안은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기본 틀은 유지하되 회원국의 행정 여건을 고려해 제도 운영의 유연성을 확대했다. 인허가 절차는 각 회원국의 행정체계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회원국 재량을 확대하고, 산업 가속화 구역 지정 기한은 발효 후 12개월에서 24개월로 연장했다. 외국인투자의 경우, 회원국의 투자심사기관 지정 기한을 발효 후 1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했다.
현재 EU 이사회 내 논의는 지난 6월 타협안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유럽산’ 인정 범위에 집중되고 있다. 2026년 하반기 의장국 아일랜드가 타협을 모색하고 있으나, 인정 범위를 EU 27개 회원국 생산품으로 한정할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지를 두고 회원국 간 입장차가 여전히 뚜렷한 상황이다. 프랑스는 EU 공공재원이 역내 생산과 고용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며 EU 27개 회원국 제품 중심의 엄격한 기준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독일·스페인·벨기에·폴란드·덴마크·체코·핀란드·룩셈부르크 등은 기존 통상관계와 공급망을 고려해 인정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독일은 제3국을 포함하는 ‘Made with Europe’ 방식을 선호하며, 상대국이 EU 기업에도 동등한 시장접근을 보장하는 상호주의를 주요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일률적인 기준보다는 산업별 공급망 특성을 고려해 유럽산 인정 범위를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철강·알루미늄 등 기초소재는 EU산으로 한정하되,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에 대해서는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다.
이 같은 이견을 좁히기 위해 스페인은 9월 24일 ‘3단계 메커니즘(The 3-Layers Mechanism)’을 담은 절충안을 제시했다. EU 역내 생산의 최소 비중을 우선 보장하되, 나머지 유럽산 요건을 충족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제3국의 범위를 산업・품목별로 달리 설정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1단계는 EU 27개 회원국 생산품으로 한정하고, 2단계에는 EEA와 상호주의·산업별 요건을 충족하는 역외국 제품을 포함한다. 3단계에는 FTA·관세동맹·GPA 참여국과 EU 내 생산능력이 부족한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국가의 제품을 포함해 보완적 조달을 허용한다. 다만, 이러한 분류는 국가별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품목별로 결정되어 동일한 국가의 제품이라도 특정 산업·부품에서는 2단계, 다른 산업·부품에서는 3단계로 분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유럽산 부품 비중이 70%이고 이 가운데 EU 27개 회원국 생산품의 최소 비중이 40%로 설정된다면, 전체의 40%는 EU 27개국 생산품으로 충족하고 나머지 30%는 EU 회원국 또는 2단계 국가에서 조달할 수 있다. 유럽산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나머지 30%에는 3단계 국가의 제품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제3국을 일률적으로 포함하거나 배제하기보다 산업별 공급망 여건과 EU의 생산능력을 고려해 개방 범위를 차등화하면서, 일정 수준의 역내 생산은 확보하려는 절충안이다.
|
단계 |
포함 국가 |
적용 방식 |
|
1단계 |
EU 27개 회원국 |
EU 역내 생산으로 충족해야 하는 최소 비중이며, 역외국 생산분으로 대체 불가 |
|
2단계 |
EU 27개 회원국, EEA 국가, 상호주의・산업별 기준을 충족하는 역외국 |
1단계 최소 비중 외에 추가로 요구되는 유럽산 비중을 충족하는 데 해당국 생산분 인정 |
|
3단계 |
FTA・관세동맹・GPA 참여국 등 |
유럽산 비중으로 인정되지 않는 나머지 부품의 조달처로 허용 |
자료 : 현지 언론 Politico 입수본
유럽산 인정 범위 외에도 저탄소 기준의 적용 방식, 자동차 분야의 기술 중립성, 요건 시행 시기 등도 논의되고 있다. 폴란드는 회원국별 에너지믹스와 탈탄소화 전환 속도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저탄소 기준이 일부 회원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자동차 분야에서 특정 기술에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기술 중립성을 보장하는 한편, 유럽산·저탄소 요건은 조기에 시행하자는 입장이다.
IAA의 산업정책 목표를 수정하자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2035년까지 EU GDP 대비 제조업 비중 20%’ 목표를 대신해, ‘2035년까지 EU 제조업 부문의 가치를 30%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하자는 내용이다.
유럽의회 논의 동향
유럽의회에서는 9월 9일 공동보고관 3인*이 마련한 수정안 초안을 중심으로 IAA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초안은 집행위원회 제안보다 EU 역내 생산을 우선시하고, 공공조달·공적 지원과 외국인투자에 적용되는 요건을 한층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 공동보고관 : 국제통상위원회(INTA) Anna Cavazzini, 산업연구에너지위원회(ITRE) Christophe Grudler, 역내시장소비자보호위원회(IMCO) Pierre Jouvet
유럽산 인정 범위와 관련해서는 FTA・GPA 당사국 제품을 원칙적으로 EU산과 동등하게 인정한 집행위원회 안을 삭제하고, EU 27개 회원국에서 생산된 제품만 유럽산으로 인정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했다. 다만, 공공조달의 경우 7개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3국에 한해 집행위원회가 위임법을 통해 추가 인정하는 옵트인(opt-in) 방식을 제안했으며, 이 과정에서 EEA·EFTA·영국 등 유럽 국가를 우선 고려하도록 했다. 반면 공적 지원에는 이러한 제3국 추가 인정 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EU 역내 생산 제품만 유럽산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 (7개 요건) △내국민 대우, △EU 경제안보 부합, △EU와 동등한 경쟁조건 및 ILO 협약 준수, △파리협정 준수 및 탄소가격제도 시행, △UN 글로벌콤팩트 및 UN 기업・인권 이행 원칙 준수, △EU 수준의 저탄소 제품 수요 촉진 조치 도입・추진, △우회 위험 부재
공적 지원과 공공조달에 적용되는 사회·노동 요건도 강화했다. 공적 지원을 받은 기업이 5년 이내에 역외로 이전할 경우 지원금을 환수하도록 했으며(중소기업은 3년), 사회·노동 의무를 위반한 사업자는 공공조달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외국인투자 요건도 한층 강화했다. 적용 기준을 1억 유로 초과 투자에서 5천만 유로 초과 투자로 낮춰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투자 승인을 위해 충족해야 하는 요건도 기존 6개 중 최소 4개 충족에서 6개 모두 충족으로 강화했다. 이와 함께 EU 역내 근로자 고용 비중도 50%에서 60% 이상으로 상향했다.
산업별 유럽산·저탄소 요건도 강화했다. 철강에는 기존 저탄소 요건에 유럽산 요건을 추가하고, 유럽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으로 EU 내에서 최초 용해·주조(melt and pour)가 이루어지고, 생산에 투입되는 1차 철 원료의 최소 75%를 EU 역내에서 생산하도록 했다. 자동차의 경우, 전기차 등 대상 차량의 배터리 제외 부품 중 유럽산 비율을 기존 70%에서 75%로 상향했으며, 배터리에 사용되는 관련 전략원자재의 최소 20%를 EU 내에서 채굴·가공·재활용하도록 하는 요건을 추가했다. 콘크리트·모르타르·시멘트의 경우 유럽산·저탄소 최소 사용 비중을 2029년 25%, 2032년 35%, 2036년 50%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단열재 등 일부 건설용 플라스틱도 적용 대상에 추가했다. 이 밖에도, 저탄소 제품의 판단기준 마련이 지연되는 경우를 대비해 관련 위임법이 2027년 말까지 발효되지 않을 경우 집행위원회가 별도의 탄소발자국 성능 기준을 마련하고, 상위 2개 성능 등급에 해당하는 제품을 저탄소 제품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다만, 9월 말 유럽의회 논의에서는 제3국 제품을 유럽산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범위와 방식을 두고 정당별로 입장차가 드러났다. 공동보고관들은 EU 27개 회원국 생산품을 기본으로 하되 엄격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3국만 추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역외국까지 폭넓게 포함할 경우 역내 생산을 우대하려는 본래 IAA 취지가 약해지고 우회 가능성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유럽국민당(EPP, 중도우파) 의원들은 인정 범위를 처음부터 EU 27개 회원국에만 한정하는 데 반대하며, 일부는 상호주의와 지속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파트너국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리뉴유럽(Renew Europe, 자유주의) 소속 일부 의원은 정부조달협정(GPA)・국제에너지기구(IEA) 참여, EU와 무역협정 및 파리협정 가입을 모두 충족하는 국가를 인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역내 산업계 입장
EU 산업계는 IAA를 통한 역내 생산과 투자 확대라는 방향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요건과 시행 방식에 대해서는 산업별 공급망과 경쟁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
유럽철강협회(Eurofer)는 공공조달·공적 지원에서 저탄소 철강의 최소 사용 비중을 25%에서 최소 50%로 높이고, EU 내 최초 용해·주조(melt and pour)를 기준으로 유럽산 요건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공공조달과 공적 지원이 역내 철강 생산 및 탈탄소화 투자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알루미늄협회(European Aluminium)는 건축·자동차·인프라 중심의 적용 범위를 방위·철도·해양·항공 분야까지 확대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유럽산 인정 범위는 EU·EEA·EFTA·영국을 중심으로 설정하고, 그 밖의 제3국은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탄소 기준에는 알루미늄 산업의 높은 전력 의존도와 재활용의 기여를 반영하고, 철강 등 경쟁 소재와의 적용 시기도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는 저탄소·순환제품의 수요와 역내 투자 확대라는 방향을 지지하면서도, 화학산업에 적용되는 세부 조치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위임법의 범위와 도입 일정을 사전에 제시하고, 충분한 연구와 이해관계자 협의를 거쳐 수요 촉진 조치를 설계할 것을 요구한다. 유럽산 기준과 관련해서는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인정 범위를 확대해 기존 공급망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활용업계는 집행위원회 제안이 재활용과 순환 원료의 산업 탈탄소화 기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로 꼽고 있다. 유럽재활용협회(Recycling Europe)와 유럽폐기물관리협회(FEAD)는 재활용·자원회수 활동을 전략산업에 포함해 인허가 간소화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재활용 원료와 2차 원자재의 탄소감축 효과를 저탄소 기준에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자동차 업계는 유럽산 요건의 시행 속도를 역내 자동차 공급망의 실제 생산능력에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전기차의 유럽산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배터리셀과 주요 부품의 역내 생산 확대가 필수적이지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원자재와 주요 부품의 역외 의존도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배터리 부품에 대한 유럽산 요건을 공급능력에 맞춰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공급망과 생산 구조가 다른 트럭·버스에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역내 공급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기 전에 요건을 적용할 경우 생산비용과 차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전기차 보급과 자동차 산업의 탈탄소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향후 일정 및 전망
EU는 당초 2026년 내 IAA 입법 합의를 목표로 했으나, EU 이사회와 유럽의회가 각각 연말까지 기관별 입장 확정을 추진하고 있어 연내 최종 법안 채택은 어려울 전망이다. EU 이사회는 10월 중 추가 타협안을 제시하고, 11월 회원국 간 입장 조율을 거쳐 12월 3일 입장을 확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의회의 경우 12월 1일 위원회 표결을 추진하고 있으며, 본회의 표결은 12월 14일로 잠정 예정돼 있다. 양 기관이 예정대로 입장을 확정하더라도 이후 집행위원회를 포함한 3자 협상(trilogue)을 거쳐야 하는 만큼, 최종 합의까지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협상의 최대 쟁점은 공공조달·공적 지원에서 유럽산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느냐가 될 것이다. 엄격한 역내산 요건은 공공수요를 EU 내 생산과 투자로 연결하는 효과를 높일 수 있지만, 역내 생산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비용 상승과 공급망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인정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면 역내 생산 기반 강화라는 IAA 본래의 정책 효과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향후 EU의 협상은 산업별 공급망 특성과 역내 생산능력을 반영하여 두 목표 사이의 절충점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IAA와 기존 EU 정책·법률 간 중복되는 제도와 절차가 실제 이행 과정에서 어떻게 조정될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IAA는 탄소중립산업법(NZIA)과 핵심원자재법(CRMA) 등 기존 제도와 연계해 공공조달·공적 지원, 투자, 신속 인허가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만큼, 기존 제도와의 중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정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행정부담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투자 분야에서는 안보・공공질서 중심의 기존 FDI 심사와 별도로 역내 고용・R&D・지식 및 기술이전 등 EU 경제에 대한 기여를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어 향후 최종 법안과 후속 입법을 통해 대상과 절차, 제출자료 등 구체적인 이행 방식이 어떻게 마련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IAA를 둘러싼 주요 교역상대국과의 통상마찰 가능성도 제도의 도입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로 남아 있다. 특히, EU와 FTA·관세동맹을 체결하지 않았고 WTO 정부조달협정(GPA)에도 가입하지 않은 중국은 IAA의 유럽산 우대와 외국인투자 요건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2026년 4월 중국 상무부는 해당 조치가 최혜국대우·내국민대우 원칙을 비롯해 GATT, 무역관련투자조치협정(TRIMs),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TRIPs), 보조금 및 상계조치협정(SCM) 등 WTO 규범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 기업의 이익이 침해될 시 대응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국은 EU와 FTA를 체결하고 GPA에도 참여하고 있어, 집행위원회 안에서는 협정 적용 범위 내에서 한국산 제품을 EU산과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종 법안이 EU 27개 회원국 생산품을 우선하는 유럽의회 안에 가까워지거나 스페인이 제안한 것처럼 산업·품목별로 제3국의 인정 범위를 차등화하는 방식이 반영될 경우 한국산 제품의 인정 범위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철강, 자동차, 배터리 등 우리 주요 수출산업은 향후 3자 협상 결과에 따라 시장접근 및 공급망 운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관련 입법 동향을 보다 면밀히 주시해야 할 것이다.
자료 : EU 집행위원회, EU 이사회, 유럽의회, Eurofer, European Aluminium, Acea, Politico・Borderex・Euractiv 등 현지 언론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