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업계의 미래차 전환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미래 기술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생산비용과 공급망 부담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9월 10일 프랑크푸르트 힐튼 시티센터에서 열린 ‘2026 한-유럽 미래차 글로벌 파트너링(GP Europe 2026)’에서도 이러한 고민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 행사에서 유럽 완성차·부품기업과 한국기업이 논의한 기술협력 방안과 공급 조건을 바탕으로 독일 미래차 시장의 변화와 우리 기업의 진출 방향을 살펴본다.
전기차 시장은 성장 중, 생산과 수익성 회복은 별도의 과제
독일에서는 전기차 보급 확대와 자동차 생산 부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가 2026년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독일의 순수전기차(BEV) 신규 등록 대수는 약 51만55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독일 내 전체 승용차 생산은 약 265만1600대로 4% 감소했으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6%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자동차 산업 전반의 생산 회복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전동화 전환의 어려움은 상용차 업계에서 더욱 뚜렷하다. 충전 여건 개선과 운송사업자의 경제성 확보가 특히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로이터의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다임러 트럭 등 유럽 주요 상용차 제조사들은 충전망 부족과 높은 에너지 비용을 이유로 EU의 2030년 대형 상용차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 이행 시한을 3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고민: 미래 투자에 필요한 수익 확보
부품기업은 기존 내연기관 사업을 유지하면서 전동화와 디지털 기술에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VDA의 니부어(Jendrik Niebuhr) 아시아·태평양 통상정책 담당 전문위원은 GP Europe 2026 발표에서 이를 ‘이중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에너지 비용과 인건비까지 겹친 상황에서, 전환기에 경쟁력과 투자 여력을 함께 유지하는 것이 업계의 핵심 과제라는 지적이다.
상용차 제조사들은 충전 인프라 보급 상황과 고객의 운행 여건에 맞춰 기술별 투자와 상용화 속도를 조정하고 있다. 다임러 트럭의 구매총괄 L씨는 기존 디젤 사업에서 확보한 수익을 배터리·수소 기술 개발에 투입하는 전략을 설명하며 ‘수익성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사업의 수익을 유지하면서 무배출차량 기술 투자를 병행하겠다는 취지다.
다임러 트럭이 9월 13일 발표한 ‘IAA Transportation 2026’ 자료에서도 이러한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업은 배터리 전기트럭과 수소연료전지 트럭의 개발 현황을 소개하는 한편, 신규 고효율 디젤 파워트레인도 공개했다. 따라서 한국 부품기업은 고객사의 차종과 운송 용도, 개발 일정에 따라 기존 내연기관 부품과 전동화 부품의 공급 기회를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료: 프랑크푸르트무역관 직접촬영]
공동개발과 현지 대응으로 넓어지는 협력 범위
한국기업과 유럽 기업의 협력에서는 서로 다른 기술과 사업 기반을 결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PRETTL Group의 아태대표 L씨는 한국의 전력전자·배터리 기술과 신속한 개발·사업화 역량에 유럽 기업의 시스템 통합 경험, 인증 대응 능력, 현지 사업 기반을 더하는 협력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협력 가능 분야로 전동화·전력전자, 차량 소프트웨어와 전자제어 구조, 정밀·경량 부품 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협력은 공동개발과 현지 생산, 합작투자 등 장기적인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기업은 제품 사양과 가격뿐 아니라, 고객사의 개발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지와 양산 이후 어떤 공급·기술지원 체계를 제공할지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기능을 기존 시스템에 적용하고 현지 인증과 생산 일정에 맞추는 역량이 협력 범위를 넓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배터리는 용도별로 요구되는 성능을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속 충전과 고출력, 높은 열적 안정성이 필요한 용도에서는 고성능 원통형 배터리 셀이 협력 대상으로 검토될 수 있다. V4Smart의 제품기획 담당자는 이러한 셀의 특성과 적용 분야를 설명했으며, 이 기업의 공개 기술자료에서도 고성능 차량 등 특정 용도를 겨냥한 제품 전략이 확인된다. 한국 배터리 소재·부품기업은 시장의 양적 성장률뿐 아니라 고객사의 요구 사양과 최종 용도의 사용 조건까지 면밀히 분석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구매 수요 변화와 현지 공급망 강화
배터리·전장부품 분야에서 신규 공급업체가 거래 가능성을 높이려면, 제품 소개에 그치지 않고 기술 적합성과 구체적인 공급 조건을 검토하는 단계로 협의를 이어가야 한다.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이 파악한 상담 사례 중에는 국내 배터리 부품기업과 바이어가 제품 적용 가능성을 논의한 뒤, 기술·구매 담당자 간 후속 협의와 도면 검토 절차를 조율한 경우가 있다. 전장부품 분야에서는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한 뒤 우리 기업이 견적 산출에 필요한 세부 사양을 바이어로부터 전달받는 방안도 논의됐다. 이러한 사례는 실제 발주에 앞서 기술 검증과 거래 조건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급업체 평가에서는 현지 공급 안정성과 고객 요구에 맞춘 가공 역량도 검토 대상이다. 일부 유럽 바이어는 유럽 내 물류창고 보유 여부, 해외 생산거점 현황 등 공급 여건을 확인했으며, 소재 공급에 더해 용접·가공 등 후속 공정까지 맡을 수 있는지도 검토했다. 한국기업은 납품 대상 공장의 위치와 사업별 생산 조건을 구분해 파악하고, 고객사가 요구하는 납기와 공급 형태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현지 창고나 생산거점을 둘지 여부도 실제 주문 규모와 물류비, 품질 대응 범위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배터리 생산 지원과 정보관리 요구에 대한 대응
유럽에서는 공급망 안정성 확보와 역내 배터리 생산기반 강화를 위한 정책 지원도 추진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6년 7월 28일 '배터리 부스터(Battery Booster Facility)' 공모를 시작했다. 이는 유럽경제지역(EEA) 내 전기차용 배터리 셀 생산 확대를 위해 최대 15억 유로의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제도로, 지원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이 시범 생산에서 본격적인 상업 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뒷받침한다. 이 제도는 한국 소재·부품기업에도 현지 제조사와 공급 협력을 모색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정책 지원이 곧바로 부품 발주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고객사의 자금 확보 상황과 실제 양산 일정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2027년 2월 18일부터 EU 시장에 출시되는 전기차 배터리 등에는 제품 식별정보와 성능·내구성 정보 등을 담은 디지털 배터리 여권이 의무화될 예정이다. 다만 탄소발자국 등 일부 정보는 별도의 적용 일정에 따라 추가된다. 여권의 작성·관리 책임은 완성된 배터리를 EU 시장에 출시하는 사업자에게 있지만, 부품·소재 공급사도 고객사가 요구하는 관련 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한국기업은 제품 개발과 함께 소재·부품 정보 관리 체계를 정비해 고객사의 규제 대응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시사점
독일 자동차업계가 수익성 개선과 전동화 투자를 병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기업은 고객사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개발·양산 과정을 지원할 역량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BMW는 2026년 9월 30일 공식 발표에서 AI 활용 확대와 조직 효율화를 추진하고, 핵심 원자재와 반도체 등 부품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해 새로운 파트너십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로이터 보도에서도 이러한 전략이 확인된다. 비용 관리와 공급망 안정성 확보가 주요 완성차 기업의 사업 전략에 함께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이 인터뷰한 현지 자동차기업 관계자 A씨는 한국기업의 기술을 유럽 기업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현지 생산 기반에 접목하고, 공동개발과 장기 공급을 통해 협력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기업이 고객사의 개발·생산 과정에서 맡을 역할과 양산 이후의 지원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 기업은 제품의 성능·가격 경쟁력에 더해 고객사의 조달·물류·품질관리 비용과 납기 위험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공급사가 제안하는 공급 방식이 고객사의 총소유비용(TCO)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후속 도면 검토와 견적 산출, 시험·인증 협의에서는 기술 검증 자료와 구체적인 공급 계획을 제시하고, 배터리 분야에서는 고객사의 양산 일정과 공급망 정보관리 요구사항까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초기 상담을 지속적인 공급 관계와 공동개발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 VDA, Reuters, Daimler Truck, V4Smart, EU 집행위원회, GP Europe 2026 발표 및 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 상담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