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지역사회 중심으로 재편되는 스페인 돌봄시장
스페인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자택에서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 통계청(INE)에 따르면 2026년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1.1%를 차지하며, 이 비중은 2050년 30%에 이를 전망이다. 요양시설 확충만으로 증가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스페인 돌봄정책의 무게중심도 요양시설에서 재택·지역사회로 옮겨가고 있다. 스페인 노인사회서비스청(IMSERSO)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자립·의존지원제도(SAAD)가 제공하는 약 220만 건의 급여 및 서비스 가운데 56%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제공됐다. 이는 방문요양, 원격돌봄, 개인활동지원 등을 확대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존 생활권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는 정책 방향이 실제 서비스 구성에도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책 전환의 핵심 기반은 스페인 정부가 2024년 승인한 ‘지역사회 중심의 새로운 돌봄모델을 위한 국가전략 2024~2030’이다. 이 전략은 시설 보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의사와 생활방식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시설 입소 예방, 이용자의 참여와 선택권 강화, 개인 중심의 돌봄모델 구축,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 제도·인력·재정 기반 정비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재택돌봄과 원격돌봄, 개인활동지원, 주간보호센터 및 접근성이 높은 주거 대안을 확대하고, 보건·복지기관 간 연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돌봄인력의 전문교육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한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혁신도 추진한다. 스페인 정부는 이 전략에 13억2300만 유로 이상의 재원을 배정했으며, EU 구조기금과 경제회복기금 등을 활용해 관련 사업을 지원 중에 있다.
비상호출에서 예방·예측형으로 진화하는 재택돌봄
재택·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이 확대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과 서비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스페인의 재택돌봄을 보조해 온 원격돌봄 서비스는 그동안 이용자가 응급상황에서 목걸이형이나 손목형 비상버튼을 눌러 관제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후 대응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정용 센서와 웨어러블기기를 이용해 별도의 호출이 없어도 위험 징후를 감지하는 첨단 원격돌봄 솔루션이 주목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첨단 원격돌봄 솔루션은 움직임, 출입문 개폐, 전력·수도 사용량, 실내 온도 등 이용자의 생활정보를 지속해서 확인하고 평소와 다른 변화가 나타나면 관제센터나 돌봄인력, 가족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거나 냉장고 문을 열지 않는 경우, 외출 후 평소 시간에 귀가하지 않는 경우 등을 감지해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서비스는 축적된 정보를 AI와 빅데이터로 분석해 낙상이나 인지기능 저하, 사회적 고립 등의 위험까지 사전에 파악하는 예측형 돌봄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격돌봄의 역할도 응급상황 발생 후 대응하는 데서 벗어나 이용자의 일상 변화를 관찰하고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활용되는 제품과 솔루션 역시 기존 비상호출기에서 스마트워치, 위치추적기, 낙상감지기, 움직임·출입문·화재·가스 감지센서, 인지훈련용 태블릿, 데이터 분석 및 통합관제 플랫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스페인 주요 지방정부, 첨단 원격돌봄 서비스 확대
안달루시아주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규모로 원격돌봄 서비스를 운영하는 지역 중 하나다. 2025년 6월 말 기준 공공 원격돌봄 서비스 이용자는 약 27만4000명에 달한다. 주정부는 기존 비상호출 중심의 서비스를 예방·예측형으로 전환하기 위해 이용자 가정에 움직임·출입문·온도·습도 감지센서와 가스·연기 감지기, 태블릿 등을 보급하고 있으며, 2025년 8월까지 설치된 신규 장비는 38만3000개를 넘어섰다. 수집된 생활정보는 AI와 빅데이터로 분석해 평소와 다른 행동 변화를 감지하고 필요한 돌봄으로 연계하는 데 활용된다.
바르셀로나 지역에서도 기존 원격돌봄 서비스에 예방·예측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2025년 11월 기준 바르셀로나 지역 원격돌봄 서비스 이용자는 12만 명 이상이며, 이용자 가정에는 화재·가스·낙상·움직임 감지기 등 약 3만 개의 안전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바르셀로나 지방정부는 2023~2025년 EU 차세대기금 690만 유로를 투입해 900가구에 생활습관 변화를 분석하는 통합형 센서를 설치하고, 인지훈련용 태블릿 1430대를 보급한 바 있다.

[자료: 바르셀로나 시청]
한편, 바스크주는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한 첨단 원격돌봄 기술을 기존 공공서비스로 확대하고 있다. 주정부는 8만9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공공 원격돌봄 서비스 베티온(betiON)에 예측·예방 기능을 추가하고, 2026년 9~10월부터 이용자 4400명을 대상으로 관련 장비를 단계적으로 보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용자의 필요와 위험도에 따라 위치추적·낙상감지 기능을 갖춘 스마트워치 3236개, 인지기능 평가·훈련용 태블릿 582개, 가정 내 사고 예방을 위한 센서 기반 시스템 582개를 제공할 방침이다. 시범사업에 머물렀던 기술을 기존 공공서비스 운영계약에 포함했다는 점에서 예방·예측형 돌봄이 본사업으로 전환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전망 및 시사점
스페인의 돌봄체계가 재택·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관련 솔루션에 대한 수요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워치와 낙상감지기 등 웨어러블기기뿐 아니라 움직임·출입문·화재·가스·수도·전력 사용량을 감지하는 가정용 센서가 대표적인 품목이다. 수집된 생활정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와 이상징후를 전달하는 통합관제 플랫폼, 인지훈련·원격재활 솔루션, 생체정보 모니터링 장비 등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 돌봄시장이 전통적인 복지서비스를 넘어 IoT와 통신, AI, 스마트홈 기술이 결합된 융합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스페인의 원격돌봄 서비스는 주로 지방정부가 사업을 발주하고 전문 운영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조달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계약에는 장비 공급뿐 아니라 설치와 통신 연결, 관제센터 운영, 유지보수, 이용자 교육 등이 함께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은 개별 제품을 직접 판매하기보다 현지 원격돌봄 운영사나 통신기업, 시스템통합업체와 협력해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기존 공공서비스 플랫폼과의 연동 가능성과 스페인어 인터페이스, 고령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설계, 현지 설치·유지보수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패턴과 건강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제품은 개인정보보호와 사이버보안 요건에도 대응해야 한다. 특히 의료적 진단이나 환자 모니터링 기능을 표방하는 제품은 사용 목적과 기능에 따라 EU 의료기기규정(MDR)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KOTRA 마드리드무역관이 현지 원격돌봄 운영기업 T사와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재택·지역사회 돌봄 확대 정책에 힘입어 센서와 웨어러블기기 등 관련 제품의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동 시장은 아직 성장 단계이므로 특정 브랜드의 인지도보다는 가격경쟁력과 혁신성, 품질이 중요하게 평가돼 국내 기업에도 진출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 INE, IMSERSO, 스페인 정부, 안달루시아주정부, 바르셀로나 시청, 바스크주정부, 스페인 T사 및 현지 언론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