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실리콘밸리’는 규제가 느슨할까?
드론이 음식을 배달하고, 무인택시가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도시. 선전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혹시 규제가 느슨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선전은 규제가 없는 게 아니라 규칙을 먼저 만드는 도시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데이터, 저공경제 등 국가 차원의 법령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신산업 영역에서 선전은 지방 입법으로 규칙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왔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사업 리스크인 ‘법적 불확실성’을 입법으로 제거해주는 것이다. 법이 없어 사업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먼저 생겨 사업이 가능해지는 구조다.
<선전시 드론 배달 및 무인택시 운행 현장>


[자료원: KOTRA 선전무역관 촬영]
<선전시 전략적 신흥 산업>

[자료원: 선전시상무국]
선전의 성장세는 이 방식의 효과를 보여준다. 선전시 정부에 따르면 2025년 선전의 GDP는 38,731.8억 위안으로 광둥성 내 도시 중 1위이며, 중국 전체 도시 중에서는 상하이와 베이징 뒤를 이은 3위다. 전략적 신흥산업의 부가가치는 1.67만억 위안으로, GDP에서 43%를 차지하고 있다.
<2021~2025년 선전시 GDP 및 신흥산업 부가가치 규모(단위: 억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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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GDP |
전략적 신흥산업 부가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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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
30,820.10 |
12,14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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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32,480.71 |
13,32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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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
34,903.27 |
14,48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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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
36,801.87 |
15,56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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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
38,731.80 |
16,700.00* |
* 2024~2025년은 구체적인 수치가 발표되지 않아 증감률에 근거해 추산함
[자료원: 선전시정부, 선전시통계국]
선전 속도의 비밀, ‘특구 입법권’
선전 속도의 비밀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회는 선전시 인민정부에 ‘경제특구 입법권’을 부여했다. 국가 법률·행정법규의 기본 원칙 안에서라면, 상위 법령의 규정을 지역 실정에 맞게 변동하거나 상위 법령이 아예 없는 영역에서도 선전이 독자적으로 법규를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중국 광둥성 및 선전시의 지역 뉴스를 다루는 남방도시보(南方都市报)에 따르면, 이 권한을 통해 선전이 제정한 법규의 3분의 1 이상이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들이고, 최근에는 그 초점이 신산업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데이터부터 저공경제까지 이어진 중국 1호 입법 릴레이
2021년 이후 선전이 내놓은 신산업 입법을 시간순으로 살펴보면 이 도시의 작동 방식이 드러난다.
첫 주자는 데이터였다. 2021년 6월 선전시 인대 상무위원회를 통과해 2022년 1월 1일 시행된 『선전경제특구 데이터조례(深圳经济特区数据条例)』는 개인데이터, 공공데이터, 데이터 요소시장, 데이터 안전을 아우른 중국 최초의 데이터 분야 기초 및 종합 입법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데이터 권익’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기업이 합법적으로 처리한 데이터로 만든 제품·서비스에 재산적 권익을 인정했다. 데이터 거래가 활발하지만 권리관계가 불분명해 분쟁이 잦았던 시장에 거래의 법적 근거를 먼저 만들어 준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율주행이다. 2022년 8월 1일 시행된 『선전경제특구 스마트커넥티드카 관리조례(深圳经济特区智能网联汽车管理条例)』는 자율주행차의 진입·등록·사용·관리까지 규정한 중국 최초의 자율주행 법규다. 이 조례로 선전은 조건부 자율주행(L3) 차량이 합법적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중국의 첫 도시가 됐다. 또한 유인 주행과 완전자율주행 상황을 구분해 교통위반 및 사고책임의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차량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생산자·판매자에 대한 구상 가능성도 규정했다. 기술 실증을 허용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책임의 귀속까지 법제화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세 번째는 AI다. 2022년 11월 1일 시행된 『선전경제특구 인공지능산업 촉진조례(深圳经济特区人工智能产业促进条例)』는 중국 최초의 AI 산업 전문 입법이다. 이 조례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장 진입 조항이다. 국가나 지방 표준이 아직 없는 제품이라도 국제 선진 표준 및 규범에 부합하는 저위험 AI 제품 또는 서비스라면 시험·시범 방식, 즉 선행선시(先行先试)를 허용한다고 명문화한 것이다.
네 번째는 저공경제다. 2024년 2월 1일 시행된 『선전경제특구 저공경제산업 촉진조례(深圳经济特区低空经济产业促进条例)』는 중국 최초의 저공경제 법규로, 드론의 연구개발·생산·판매·인프라·서비스 등을 하나의 법에 담았다. 특징은 ‘드론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할부터 산업지원, 기술혁신, 안전관리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입법 릴레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선전시 인대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등 차세대 신산업 입법을 계속 준비하며, 신흥 분야에서 ‘국가 입법의 시험장’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시사점
선전의 사례는 신산업 경쟁력이 규제의 ‘유무’보다 규칙 확정의 ‘속도’에서 갈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2019년부터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선허용, 후규제’로의 전환을 추진해왔고, 신속확인·임시허가·실증특례를 적용하는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한국이 개별 실증 단위로 특례를 부여한다면, 선전은 산업 단위로 규칙을 먼저 확정해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일괄 적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기업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선전은 법적 근거가 확립된 해외 실증 테스트베드다. 자율주행, AI, 저공경제 분야에서 실증과 상용 운행의 법적 기반이 모두 갖춰진 시장은 드물다. 이러한 시장을 활용해 기술 검증과 상용 레퍼런스를 쌓아 제3국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AI 조례의 선행선시 조항은 외국기업에도 열려 있다. 국가 표준이 없어도 국제 선진 표준에 부합하는 저위험 AI 제품 또는 서비스라면 테스트·시범 방식으로 시장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범 방식으로 시장에 먼저 진입해 볼 수 있다.
셋째, 입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만큼 개정 주기도 짧다. 진출을 검토하는 기업이라면 조례의 제·개정 동향과 시행세칙을 상시 모니터링해, 규제 변화를 조기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자료: 선전시 인민대표상무위원회(深圳市人民代表大会常务委员会) 홈페이지, 선전시정부 홈페이지, 선전시 통계국 홈페이지, 남방도시보(南方都市报), KOTRA 선전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