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에 출렁이는 일본 나프타 시장
2026년 3월 이후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며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막히자, 일본의 나프타 조달에 직접적인 타격이 발생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석유제품으로 '중질 가솔린'으로도 불리며, 나프타 분해시설에서 에틸렌·프로필렌 등으로 분해돼 플라스틱·합성고무 등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로 쓰인다. 이 때문에 나프타 공급 차질은 합성수지에서 필름·용기·포장재를 거쳐 최종 소비재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국가별 나프타 수입 비중>

[자료: 닛케이 신문]
일본 석유화학공업협회(JPCA)에 따르면 일본은 나프타 수입품의 70% 이상, 국내 수요의 약 40%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로 월간 공급량의 약 40%에 해당하는 중동 수입분이 한꺼번에 끊긴 셈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와 석유화학업계는 미국·알제리·호주 등으로 조달선을 넓혀 대체조달률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대체 물량은 운송거리가 길어 리드타임이 수주에서 한 달 이상 걸리는 탓에, 봄~여름 사이 현장에서는 품귀와 가격 급등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 여파로 일본 제국데이터뱅크(TDB)는 나프타 관련 제품의 공급망 차질에 영향을 받는 제조업체가 수만 개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가격 전가력이 약한 중소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이란 군사 충돌 이후 나프타 가격 추이>
(단위: 달러/톤)

[자료: 닛케이 신문]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도쿄 오픈스펙(東京オープンスペック) 기준 나프타 가격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최고조였던 3월 하순 1톤당 1208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대체 조달 진전과 통항 정상화 기대감에 6월 25일 632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이후 다시 반등해 7월 23일에는 881달러를 기록했다. 반년 새 급등→급락→재반등을 반복한 셈으로, 이번 사태가 일회성 급등이 아니라 중동 정세에 따라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일본 나프타 쇼크가 흥미로운 것은, 기업별 대응 방식이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기업들의 대응은 크게 ▲인쇄 색상 축소 ▲소재·디자인 전환 ▲손님 참여 유도 ▲가격 전가의 네 갈래로 정리된다.
나프타 부족에 대응하는 일본 기업들의 전략
1. 인쇄 색상 축소
<흑백 패키지를 도입한 가루비의 과자 상품>

[자료: 닛케이 신문]
[만화가 오쓰카 시로의 X 게시 사진]

[자료: X(@shiro_otsuka)]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가루비(Calbee)의 대응이다. 가루비는 2026년 5월 11일, 중동 정세 악화로 포장 인쇄용 잉크의 용제·수지 조달이 불안정해졌다며 '포테토칩스', '갓파에비센', '가타아게포테토', '후루구라' 등 주력 14개 품목의 패키지를 흑백 2색 인쇄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5월 25일 출하분부터 순차 적용됐으며, SNS에서는 여백에 그림을 그려 넣는 놀이가 유행할 정도로 큰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가루비는 2026년 7월 9일, 8개 품목의 패키지 표면 풀컬러 인쇄를 7월 27일 주부터 단계적으로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포테토칩스'·'갓파에비센'의 뒷면은 계속 흑백을 유지해, 절약 기조 자체는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패밀리마트 또한 5월 22일, 자체브랜드(PB) '파미마루(ファミマル)'의 로고를 흑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나프타로 만드는 잉크 조달이 불안정해지자 상품 공급을 우선하기 위한 조치로, 초록·파랑 로고가 인쇄된 샌드위치류부터 순차 흑백화하고, 냉동음료 뚜껑이나 삼각김밥·도시락 포장 필름의 색상 축소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2. 소재·디자인 전환
<패키지를 변경한 카고메 케첩 (오른쪽)>

[자료: 요미우리 신문]
카고메(KAGOME)는 5월 14일, 대표 상품인 '카고메 토마토케첩'(500g·300g·180g)의 패키지 디자인을 5월 하순부터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40년 넘게 이어온 빨간 토마토 일러스트 디자인에서 그림 비중을 대폭 줄이고, 패키지 하단부를 인쇄 없는 투명 부분으로 늘리는 방식이다. 용기 형태나 내용물은 그대로 두고 인쇄 면적만 줄여 잉크 사용량을 낮춘 것으로, 소비자 반응은 오히려 "속의 빨간 케첩이 비쳐서 깔끔하다"는 우호적 평가가 다수였다.
<랩 포장으로 변경되어 매장에 진열된 깐새우>

[닛케이 신문]
이토요카도(Ito-Yokado)는 소재를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5월 하순부터 도쿄 오모리점 등 도심 대형점을 중심으로 스테이크·회 등 일부 상품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랩으로 대체했다. 이토요카도는 나프타 위기 이전부터 탄소배출 저감 차원에서 검토해온 방안이었다고 설명하며, 이번 조달난이 사전에 준비해둔 대안을 실제로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3. 손님 참여 유도 — 개인 용기 지참
<히노데데리카의 개인 용기 지참시 반찬 증량 서비스 개시>

[자료: YBS NEWS 방송화면 캡처, KOTRA 후쿠오카무역관 번역]
포장재 자체를 줄이는 대신 소비자의 협조를 구하는 대응도 확산됐다. 야마나시현 고후시의 도시락·반찬가게 '히노데데리카(ヒノデデリカ)'는 5월 말, 용기 매입처로부터 6월 출하분부터 30% 값을 올리고 향후 공급이 끊길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자 SNS에 사정을 알렸다. 이후 개인 용기를 지참한 손님에게는 반찬을 무료로 증량해 주거나 채썬 양배추를 얹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단골손님을 중심으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손님에게 가방이나 용기 지참을 호소하는 빵집 griotte>

[자료: 닛케이신문]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비닐봉지 품귀도 함께 표면화됐다. 도쿄 메구로구의 빵집 'griotte'는 식빵 등을 포장하는 봉투를 언제 다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자, SNS를 통해 손님들에게 밀폐용기나 봉투 지참을 요청했다. 일부 손님이 이에 호응했고, 단골 중에는 자신만의 포장 봉투를 아예 매장에 맡겨두는 경우까지 생겼다.
4. 가격 전가
<중동 정세에 따른 포장용기 등의 가격인상>

[자료: 닛케이 신문]
반면 대응 여력이 제한적인 기업들은 정공법인 가격 인상을 택했다.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인쇄대기업 TOPPAN홀딩스는 4월 21일부터 식품·일용품 업체에 납품하는 연포장 필름·종이용기·라벨 등 포장재 가격을 20~30%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포장재 매입 원가 자체가 20~30% 올라 자체 흡수가 한계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식품 용기 업계도 마찬가지다. 야후 재팬 뉴스에 따르면 대형 식품용기업체 에후피코(エフピコ)는 2026년 6월부터 전체 약 1만 종 제품을 20% 이상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같은 시기 츄오화학(中央化学)은 30% 이상, 씨피화성(シーピー化成)은 25% 이상 인상을 각각 발표했다. 인쇄·디자인을 바꿔 원가를 방어하는 대신, 비용 상승분을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시사점 및 유의사항
앞서 살펴본 나프타 공급 위기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 말 나프타 수급 우려가 퍼지면서 종량제 쓰레기봉투 사재기, 이른바 '쓰봉대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재고 물량 확인과 정부의 대응으로 큰 혼란 없이 가라앉았지만,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각종 생활용품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얼마나 빠르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식품·포장재 기업이라면 이번 사례에서 몇 가지 실무적인 대비책을 챙겨둘 필요가 있다.
첫째, 일본 바이어와의 계약 단계에서 원가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해두는 것이 좋다. 포장재 원가가 짧은 기간에 20~30% 이상 뛰는 상황이 다시 벌어질 수 있는 만큼, 가격 재협상 주기나 원재료 연동 조항을 미리 계약에 담아두면 협상에서 유리하다.
둘째, 인쇄 사양과 소재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대안을 평소에 준비해두는 편이 좋다. 가루비와 카고메 사례에서 보듯 일본 소비자는 인쇄 색상 축소나 디자인 단순화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원자재 리스크가 불거졌을 때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간소화 버전 패키지 시안을 미리 확보해두면 대응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나프타 수급 동향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 나프타 가격은 통상 1~2개월의 시차를 두고 일본 국내 나프타 가격, 나아가 합성수지·포장재 가격에 반영된다. 이 흐름을 선행지표로 활용하면 일본 거래처의 단가 인상 요구나 납기 지연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다.
현지 포장업계 관계자는 KOTRA 후쿠오카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나프타 공급난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기업들이 단순히 원가를 절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패키지의 기준 자체를 바꾸려 했다는 점"이라며 "색상을 줄이거나 인쇄 면적을 최소화하고, 용기 구조를 단순화하는 등 제품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포장만 바꾸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포장 디자인을 마케팅 요소로만 봤다면, 이제는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는 경영 수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도 위기 상황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경량화·저잉크·저소재' 패키지 옵션을 미리 준비해두면 일본 바이어와의 협상에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넷째, 조달선을 다변화하는 역량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대체 조달을 빠르게 늘린 기업일수록 생산 차질을 줄일 수 있었다. 국내 포장재·소재 기업이 중동 외 지역의 원료 조달망이나 재생원료·바이오플라스틱 같은 대체 소재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는 일본 거래처에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자료: 닛케이 신문, 일본 석유화학공업협회(JPCA), 일본 제국데이터뱅크(TDB), X, 요미우리 신문, YBS NEWS, 야후 재팬 뉴스, 각 기업 홈페이지, KOTRA 후쿠오카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