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육의 시대, 늘어나는 어린이 스크린타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교육계는 디지털전환을 교육 혁신의 핵심 과제로 여겨왔다. 태블릿과 노트북을 활용한 디지털 학습은 종이 교재를 대체하는 미래형 교육으로 평가받았으며, 학교는학생들에게 개인별 디지털 기기를 지급하는 '1인 1기기(One-to-One Device)' 정책을 빠르게 확대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원격 수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미국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학생들에게 크롬북(Chromebook)이나 아이패드같은 태블릿을 지급했고, 온라인 학습 플랫폼과 디지털 교재는 교육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에도 이러한 변화는 쉽게 되돌아가지 않았다. 학생들은 과제 제출부터 시험 응시, 독서 활동, 동영상 학습, AI 기반 학습 프로그램 활용까지 대부분의 교육 활동을 스크린 화면을 통해 수행하게 됐으며, 디지털 기기는 학교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학습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Futuresource Consulting에 따르면 미국 K-12 공교육 시장에서는 이미 수천만 대의 학생용 노트북과 태블릿이 운영되고 있으며,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학습 플랫폼 시장 역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교육이 보편화될수록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스크린 시간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집중력 저하, 읽기 능력 감소, 수면 부족, 시력 악화, 사회성 발달 저해 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발달 단계상 직접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며 학습하는 것이 인지 발달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교육 현장에서도 "기술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보다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급증한 어린이 스크린 사용

실제로 미국 어린이들의 스크린 사용 시간은 코로나19 이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Common Sense Media 조사에 따르면 8~12세 어린이의 하루 평균 엔터테인먼트 목적 스크린 사용 시간은 약 5시간 30분 수준이며, 13~18세 청소년은 하루 평균 8시간 이상을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학교 수업과 온라인 과제 수행을 위한 교육용 스크린 사용 시간을 포함하면 실제 화면 노출 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어진다.


<미국 12-17세 스크린 사용 시간>

Products - Data Briefs - Number 513 -October 2024

[자료: CDC, National Center for Health Statistics]

교육 전문가들은 팬데믹 기간 원격수업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는 대면수업이 정상화된 만큼 디지털 기기의 활용 수준 역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경우 아직 읽기와 쓰기, 언어 습득, 사회성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인 만큼 종이책 읽기, 손글씨 쓰기, 토론과 놀이 중심 학습이 장기적인 학습 성과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미국소아과학회(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AAP) 역시 어린 연령일수록 과도한 스크린 노출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2~5세 아동의 경우 하루 1시간 이내의 스크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권고는 가정에서의 전체 스크린 사용을 대상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학교에서의 디지털 학습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교육 현장 역시 적절한 스크린 사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교육 확대와 아동 발달 사이의 균형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최대 공립 교육기관 가운데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Los Angeles Unified School District, LAUSD)가 학생들의 교내 스크린 사용 시간을 대폭 제한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국 교육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LAUSD, 초등 저학년 중심으로 스크린타임 대폭 제한

미국 공립 교육기관인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Los Angeles Unified School District, LAUSD)는 2026년 6월 학생들의 교내 스크린 사용 시간을 대폭 제한하는 새로운 정책을 교육위원회(Board of Education)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LAUSD는 1,000여 개 학교와 50만 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인 미국 2번째 최대 규모 교육청 가운데 하나로, 이번 정책은 미국 공교육 시스템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정책은 2026–27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2027년 초까지 전면 도입될 예정이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특히 언어 습득과 기초 학습이 이루어지는 유아교육 과정(Transitional Kindergarten)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교실 내 개인 디지털 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해당 학년 학생들은 기존처럼 크롬북이나 태블릿을 이용해 읽기와 쓰기 활동을 수행하기보다는 종이 교재, 손글씨 쓰기, 교사의 직접 지도 및 학생 간 상호작용 중심의 수업을 받게 된다.

초등학교 2~5학년 역시 디지털 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학년별 최대 2시간 사용을 설정하고, 교육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했다. 또한 유튜브같은 영상 플랫폼의 활용 역시 교육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며, 수업 시간 중 학생들이 장시간 영상을 시청하는 방식의 학습은 지양하도록 권고했다. 일부 학교에서 운영하던 '학생이 크롬북을 집으로 가져가는 프로그램' 역시 저학년을 중심으로 운영 방식이 재검토될 예정이다.

LAUSD는 이번 정책이 기술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연령과 발달 수준에 맞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여전히 중요한 교육 도구이지만, 모든 수업을 화면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학습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 교육청의 판단이다.

교육 패러다임 변화 시작


LAUSD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컴퓨터 사용 시간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미국 공교육 정책의 방향 전환을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팬데믹 당시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디지털 기기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핵심 과제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교육계는 오히려 학생들의 발달 단계와 학습 효과를 고려해 디지털 기술의 활용 범위를 다시 조정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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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 Angeles Unified School District - Wikipedia

[자료: LAUSD]

교육 전문가들은 앞으로 학교의 역할이 단순히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술을 건강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정책뿐 아니라 에듀테크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미국 교육 시장에서는 '디지털 학습 확대'보다 '디지털 절제(Digital Balance)'를 지원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LAUSD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먼저 제도화한 교육기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번 정책은 향후 미국 다른 교육구들의 정책 수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팬데믹의 비상조치에서 정상 교육으로


LAUSD가 이러한 정책을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팬데믹 이후 급격히 변화한 교육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학교들은 대면수업을 중단하고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에게 대규모로 노트북과 태블릿을 지급했다. 당시에는 디지털 기기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었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수업은 사실상 유일한 교육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면수업이 재개된 이후에도 많은 학교에서는 팬데믹 시기의 디지털 학습 방식이 그대로 유지됐다. 학생들은 교과서 대신 노트북 화면으로 읽기 활동을 하고, 문제 풀이와 과제 제출, 평가까지 대부분의 학습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다. 이에 따라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뒤에도 숙제와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 때문에 아이들의 스크린 사용 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교육청에 개선을 요구해 왔다. 특히 저학년 학생들의 경우 학교 수업과 가정에서의 스마트폰, TV, 게임기 사용 시간이 합쳐지면서 하루 대부분을 화면과 함께 보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LAUSD 교육위원인 Nick Melvoin은 이번 정책을 발표하며 "팬데믹 당시에는 학생 모두에게 디지털 기기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이제는 학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학습 환경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이 교육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지 교육 자체를 대체해서는 안 되며,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교사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과 손으로 쓰고 읽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점

LAUSD의 스크린타임 제한 정책은 단순히 한 교육청의 내부 규정 변경이 아니라, 미국 교육계가 팬데믹 이후 디지털 교육의 활용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미국 공교육은 노트북과 태블릿 보급 확대, 온라인 학습 플랫폼 도입 등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해 왔으나, 최근에는 학생들의 집중력 저하와 문해력 감소, 사회성 발달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술의 무분별한 확대보다 '적절한 활용'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변화하고 있다.


KOTRA 로스앤젤레스무역관이 인터뷰한 교육학과 교수 B 씨는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도구는 교육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었지만, 현재는 그것이 학습 효과를 높이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에듀테크 산업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기존의 ‘스크린 사용 확대’ 중심의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제한된 디지털 환경에서도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교사용 보조 도구, 수업 효율성을 높이는 AI 기반 관리 솔루션, 그리고 짧은 시간 내 학습 몰입도를 높이는 콘텐츠 등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LAUSD는 미국 최대 규모의 교육청 가운데 하나인 만큼, 이번 정책은 향후 다른 교육구와 주정부의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 전반에서 '디지털 절제' 교육이 새로운 트렌드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자료: LAUSD, ABC7 Los Angeles, Los Angeles Times, CDC,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AAP),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Common Sense Media, Futuresource Consulting, KOTRA 로스앤젤레스 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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