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폭증에 투자 몰리는 미 전력 시장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증설, 제조업 리쇼어링, 전력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미 전력 시장에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비영리 조사기관 파워라인스(PowerLine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전역 51개 민간 전력 유틸리티 기업이 계획한 향후 5년간의 전력망 자본 지출(CAPEX) 규모는 1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과 1년 전 동일한 기업이 발표했던 투자 계획과 비교해 20% 늘어난 수치이며, 과거 10년간 투입된 전체 비용의 두 배를 웃도는 압도적인 규모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극심한 비용 상승과 공급망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월스트릿저널(WSJ)은 라자드(Lazard)의 전력생산 비용 보고서를 인용해 전력 발전 및 송배전망 인프라의 평균 구축 비용은 전년대비 10% 이상 상승했으며, 핵심 전력 기자재 주문 밀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난 7월 24일 보도했다. 산업조사 기관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가 발표한 2025~2026년 리포트에 따르면, 2019년 이전 1~2년 정도였던 초고압 변압기의 평균 납기는 현재 약 2년 6개월 정도로 늘었고, 대형 발전기 연계용 변압기(GSU)는 최대 2년 9개월로 연장됐다. 이 때문에 올해 미국 내 가동을 예정했던 데이터센터 중 40%가 예상보다 가동이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간 균등화발전원가(LCOE) 변동 추이>
(단위: $/MWh)

주: 일부 발전 기술(예: 원자력, 석탄, 지열)은 이용 가능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분석 방법론이 변경됨에 따라 분석 대상에서 제외됨. 각 연도별·발전기술별 LCOE의 상한값과 하한값의 평균을 반영한 수치임. 백분율은 각각 Lazard의 LCOE v3.0 및 LCOE v18.0 대비 평균 LCOE가 변화한 전체 비율을 나타냄.
[자료: Lazard]
환경 인허가 규제와 인플레이션 및 관세 부담도 전력망 구축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전력 인프라 확장 비용의 증가가 일반 가계 전기 요금 인상으로 전가됨에 따라 백악관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을 향해 데이터센터용 전력 인프라 구축 비용을 직접 부담하도록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압박은 빅테크 기업이 자체 전력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면서 전력회사 위주의 미 전력 인프라 시장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현지 생산 한계가 부른 전력 기자재의 수퍼사이클
미국 전력 유틸리티와 빅테크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미국 내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대형 변압기의 핵심 자재인 방향성 전기강판(GOES)의 미국 내 공급처가 단 한 곳에 불과할 정도로 공급망 생태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현지 제조사들의 생산 능력은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미국 시장은 외부로부터의 신속한 전력기자재 수입이 절실한 상황에 놓였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초고압 케이블 수입액은 20억6600만 달러로 전년대비 20.7% 증가했으며, 초고압 변압기의 수입액은 40억2200만 달러로 전년과 비교해 38% 급증했다.
이는 현압기, 초고압 케이블, 스위치 기어 ESS 등을 생산하는 한국 전력기자재 기업에 수출 수퍼사이클을 열어주고 있다. 높은 수준의 품질과 경쟁국 대비 빠른 납기로 인정받은 한국 전력기자재의 대미 수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초고압 변압기 대미 수출은 지난해 7억2300만 달러로 전년대비 98.5% 늘어 미국 수입 시장 점유율 1위 국가인 멕시코를 맹추격하고 있다. 초고압 케이블 역시 전년비 20% 넘는 증가율을 보이며 3억8100만 달러의 수출고를 올려 미국 수입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2025년 미국의 초고압 케이블과 초고압 변압기 수입액 변동 추이>
(단위: $US 백만)

주: HS Code 8544.60(초고압 케이블), 8504.23(초고압 변압기) 기준
[자료: U.S. Department of Commerce, Bureau of Census]
<2023~2025년 미국의 초고압 케이블과 초고압 변압기 대한 수입액 변동 추이>
(단위: $US 백만)

주: HS Code 8544.60(초고압 케이블), 8504.23(초고압 변압기) 기준
[자료: U.S. Department of Commerce, Bureau of Census]
주목할 점은 이들 기업의 대응이 단순 수출 확대를 넘어 현지 생산 거점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생산거점을 둔 주요 기업들이 관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현지화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관세 정책과 자국 산업 보호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미국 시장내 지속가능한 공급 관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밖에 변압기 중심이던 수출 구조가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 스위치 기어, 데이터센터 전력 솔루션 등으로 확장되는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다.
전망 및 시사점
미국 전력망 시장의 1조4000억 달러 투자와 전력 인프라 공사비 급등은 향후 5~10년간 한국 전력기자재 기업에 새로운 수출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보다 안정적인 납기와 공급 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생산 효율을 높여 긴급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초고압 송전기기뿐 아니라 배전반, 친환경 차단기, 고효율 변압기 등으로 수출 품목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바이아메리카(Buy American) 정책과 관세 변동성에 대비한 장기 전략도 요구된다. 완성품 수출에만 의존하기보다 북미 생산·조립 거점 확보나 현지 기업과의 합작 등을 통해 현지 조달 요건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뉴욕 소재 컨설팅 업체 A사 애널리스트는 KOTRA 뉴욕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예측이 어려운 미국의 관세 정책과 자국 산업 보호주의 기조는 수출 물품의 단가 경쟁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향후 수요에 따른 시장 진출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료: Wall Street Journal, Lazard, U.S. Department of Commerce, Bureau of Census, PowerLines, Wood Mackenzie 및 KOTRA 뉴욕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