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국방예산이 천조 원을 훌쩍 넘는 미국. 세계 최대 방산시장의 문은 그러나 쉽게 열리지 않는다. 까다로운 조달 규정과 현지 생산 요건, 오랜 기간 형성된 공급망 때문에 한국 기업에는 쉽게 넘보기 어려운 시장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미국 방산시장에서 최근 눈에 띄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8월 한화디펜스USA가 미 육군의 기동 전술포(Mobile Tactical Cannon, MTC) 시제품 개발 계약을 따냈다. 최대 18대의 차륜형 자주포 체계를 시험·평가하는 사업으로, 한화디펜스USA가 미 육군과 맺은 첫 주요 계약이다.

그렇다면 방산장비 한 대가 팔리면 거래는 끝날까? 방산 장비는 자동차나 가전처럼 몇 년 쓰고 바꾸는 제품이 아니다. 한번 도입하면 수십 년을 운용하고 그동안 정비하고, 부품을 바꾸고, 성능을 높이는 일이 반복된다. 새 장비를 만드는 시장만큼 이미 배치된 ‘장비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시장’도 길다.

미국 방산시장을 두드리는 한국 기업이라면 이 ‘긴 뒷시장’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유지·보수와 교체부품, 성능개량 수요는 장비가 현장에 배치된 뒤에도 오랫동안 이어진다. 완성 체계 수주만 바라보기보다 장비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형성되는 공급망까지 함께 봐야 미국 방산시장의 기회가 더 선명해진다.

오래 쓸수록 커지는 유지의 무게

문제는 방산장비가 오래될수록 ‘유지’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수십 년 운용하는 동안 부품은 닳고 기술은 바뀐다. 생산업체가 사라지거나 필요한 부품이 단종되는 일도 생긴다. 멀쩡한 장비라도 작은 부품 하나를 제때 구하지 못하면 임무에 투입하기 어렵다. 방산장비의 긴 수명은 그만큼 긴 유지·보수 공급망을 필요로 한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2025년 육군과 해병대 지상장비 18종의 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2024 회계연도 기준 GAO가 조사한 육군 장비 가운데 육군의 90% 임무수행 가능률 목표를 달성한 장비는 하나도 없었다. 2015 회계연도와 비교 가능한 조사 대상 18종 가운데 16종은 임무수행 가능률이 낮아졌다. 특히 GAO가 별도로 비교한 육군 지상장비 11종은 모두 임무수행 가능률이 하락했으며, 브래들리 전투차량(Bradley Fighting Vehicle), 고기동 다목적 차량(HMMWV), 중형 전술차량 계열(FMTV) 등 주요 장비에서도 두 자릿수 하락 폭이 나타났다.

<2015년 대비 2024년 미 육군 주요 지상장비 임무수행 가능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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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GAO)]

문제의 원인도 단순한 노후화만은 아니다. 육군과 해병대 관계자들은 조사 대상 18종 모두에서 부품·자재 부족과 최신 기술자료 확보 문제를 유지·지원의 어려움으로 지적했다. 숙련 정비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 계획되지 않은 정비 수요도 여러 장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일부 장비에서는 제한된 공급원과 긴 부품 조달 기간이 필요한 부품을 제때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미국의 한 글로벌 방산기업에서 근무하는 책임 엔지니어도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업무에서는 신규 장비 개발뿐 아니라 기존 장비를 계속 운용하기 위한 유지·지원 업무가 매우 중요하다”며 “부품 단종이나 공급업체 변경 등으로 기존 부품을 그대로 구하기 어려워 대체 부품을 검토하거나 설계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GAO에 따르면 조사 대상 육군 장비 11종 가운데 9종은 2015년 이후 유지비가 증가했고, 에이브럼스 전차(Abrams)는 2015년과 2023년 사이 전체 유지비가 1억8130만 달러 늘었다. 육군과 해병대가 2023 회계연도 지상 차량의 대규모 정비·재생에 지출한 비용은 합산 23억 달러를 웃돌았다.

임무수행 가능률이 떨어진다고 곧바로 새로운 장비로 모두 교체할 수는 없다. 수십 년간 운용하는 방산장비에서는 기존 장비의 수명을 연장하고 필요한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계속 따라붙는다. 유지·보수와 교체 부품이 미국 방산시장에서 일회성 수요가 아니라 반복되는 공급망 수요로 자리 잡는 배경이다.

누가 이 부품을 사나, 미국 방산 유지·지원 공급망

미군이 수천 종의 장비를 오랫동안 운용하려면 필요한 부품을 사고, 재고를 관리하고, 제때 정비 현장까지 보내는 조직이 필요하다. 미국 국방물류청(Defense Logistics Agency, DLA)과 미 육군 전차·자동차 및 무장사령부(U.S. Army Tank-automotive and Armaments Command, TACOM)가 대표적이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는 DLA 산하 DLA Weapons Support 본부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아스널에는 TACOM이 자리하고 있다.

DLA Weapons Support는 미군의 육상·항공·해상 무기체계에 필요한 부품 공급망을 관리한다. DLA는 2025년 10월 기존 DLA Land and Maritime과 DLA Aviation의 임무를 통합해 DLA Weapons Support를 출범시켰으며, 현재 4300개가 넘는 주요 무기체계에 사용되는 240만 개 이상의 국가재고번호(National Stock Number, NSN) 품목을 관리한다. 필요한 부품은 민간 공급업체로부터 조달해 각 군과 정비 시설에 공급한다. 장기간 운용되는 장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수리·교체부품 수요가 실제 조달로 이어지는 주요 창구다.

TACOM은 미 육군 지상 장비의 장기 운용과 부품 공급망을 담당한다. 산하 통합군수지원센터(Integrated Logistics Support Center, ILSC)는 Abrams 전차와 Bradley 전투차량, 전술 차량 등 지상 장비의 수리부품 계획과 공급망 관리를 맡는다. 관련 계약 업무는 육군계약사령부 디트로이트 아스널(Army Contracting Command–Detroit Arsenal, ACC-DTA)이 수행한다. 2026년에는 TACOM ILSC의 Class IX(수리부품·구성품) 조달을 위한 5년짜리 BOAST(Basic Ordering Agreement Sustainment Track) 체계도 가동됐다. 100개가 넘는 사전 자격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필요한 부품을 경쟁 방식으로 조달하는 구조다.

<미 육군 BOAST 수리부품 조달 체계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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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U.S. Army Contracting Command–Detroit Arsenal]

수요에서 계약까지, 교체부품 조달의 흐름

정비 현장에서 필요한 부품이 생겼다고 곧바로 특정 업체에 주문하는 것은 아니다. 재고 부족이나 추가 수요가 발생하면 DLA는 해당 품목의 조달 절차를 진행하고 공급업체로부터 견적이나 제안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품목 식별과 수요 관리는 국가재고번호(NSN)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DLA의 주요 전자조달 창구는 DLA 전자입찰시스템(DLA Internet Bid Board System, DIBBS)이다. 공급업체는 DIBBS에서 견적요청서(Request for Quotation, RFQ)를 확인하고 전자 견적을 제출할 수 있으며, 제안요청서(Request for Proposal, RFP)와 계약 결과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DLA 조달 공고는 미국 연방정부 조달포털인 SAM.gov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에 게시된 DLA 교체부품 RFQ 사례>

차량용 금속 그릴(Grille, Metal)

엔진용 유체 필터(Filter Element, Fl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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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SN 2510-01-317-5493, RFQ 수량 163개

· 2026년 5월 RFQ 공고, 6월 응찰 마감

· 1년 또는 누적 주문액 35만 달러까지의 자동 장기계약(IDC) 가능

· 최소 보장수량 24개, 연 2회 주문 예상

· 디지털 도면·군사 규격 자료 제공

· NSN 2940-01-547-8550, RFQ 수량 1,292개

· 2026년 6월 RFQ 공고, 7월 응찰 마감

· 1년 또는 누적 주문액 35만 달러까지의 자동 장기계약(IDC) 가능

· 최소 보장 수량 193개, 연 2회 주문 예상

· 승인 공급원 지정, 규격·도면 미제공

[자료: Defense Logistics Agency]


기존 공급업체가 있는 품목에도 신규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경로가 있다. DLA는 현재 승인되지 않은 업체나 기존 지정 부품과 다른 제품을 제안할 수 있도록 대체 제안(Alternate Offer)과 공급원 승인 요청(Source Approval Request, SAR) 절차를 운영한다. 진행 중인 입찰에서는 대체 제안과 기술자료를 제출할 수 있으며, 신규 제조업체는 SAR을 통해 기존 승인품과 동등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제품을 제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품목에 따라 도면과 시험 계획 등 기술 자료도 요구된다.

유지·보수 부품 시장에 진입하려면 먼저 자사 제품과 연계되는 NSN과 실제 조달 수요를 찾아야 한다. 이후 DIBBS나 SAM.gov에서 공고를 확인하고, 해당 품목에 요구되는 기술 자료와 공급원 승인 요건을 갖추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 순서다.

일반 제조업과 맞닿은 방산 유지부품 시장

미국 방산 유지·보수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전차나 자주포 같은 완성 장비만이 아니다. 전자부품과 엔진부품, 밸브, 펌프·모터, 동력전달장치처럼 일반 제조업에서도 익숙한 부품이 폭넓게 조달된다.

DLA의 실제 조달 실적에서도 이런 품목을 확인할 수 있다. 2024 회계연도 DLA Land의 주요 조달 분야에는 기타 전자부품 2억3135만 달러, 금속 하드웨어 1억5705만 달러, 기타 엔진 및 엔진 관련 장비 1억3664만 달러, 기타 자동차부품 1억3199만 달러, 기계식 동력전달장치 1억582만 달러가 포함됐다. DLA Maritime에서도 산업용 밸브 2억1387만 달러, 기타 전자부품 1억3340만 달러, 가공 파이프 및 배관 피팅 8638만 달러, 전자 커넥터 7504만 달러, 유체동력 펌프·모터 6843만 달러가 주요 조달 분야로 나타났다.

<2024 회계연도 DLA Land·Maritime 주요 제조업 조달 분야>

(단위: US$ 백만)

DLA Land 주요 제조업 조달 분야

금액

DLA Maritime 주요 제조업 조달 분야

금액

기타 전자부품

231.3

산업용 밸브

213.9

금속 하드웨어

157.1

기타 전자부품

133.4

기타 엔진 장비

136.6

가공 파이프 및 배관 피팅

86.4

기타 자동차부품

132.0

전자 커넥터

75.0

기계식 동력전달장치

105.8

유체 동력 펌프 및 모터

68.4

[자료: Defense Logistics Agency]

다만 DLA가 조달하는 품목이라고 해서 한국산 제품이 모두 공급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미 FTA가 적용되는 조달에서는 한국산 제품도 협정 대상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실제 참여 가능 여부는 개별 공고에 명시된 원산지 기준과 조달 요건을 확인해야 한다.

시사점

공장의 설비도 설치로 끝나지 않는다. 오래 가동할수록 정비와 부품 교체가 중요해진다. 방산장비 역시 수십 년간 운용되는 동안 유지·보수와 교체부품 수요가 꾸준히 이어진다. DLA 조달 실적에서 확인되듯 전자부품과 자동차부품, 밸브, 펌프·모터, 동력전달장치 등 일반 제조업과 맞닿은 품목도 적지 않다.

한국 기업이 이 시장을 살펴볼 때는 실제 미군이 어떤 부품을 얼마나 자주, 어떤 조건으로 구매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산 품목과 유사한 국가재고번호를 찾아 DIBBS와 SAM.gov의 조달 이력과 공고를 확인하면 수요 규모와 빈도, 기술 요건을 파악할 수 있다. 기존 승인품목의 경우 공급원 승인과 도면·시험자료 등 추가 요건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다만 조달 실적이 있다는 사실이 한국산 부품의 공급 가능성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미국 연방조달규정(FAR)상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국가이며, 현재 한미 FTA의 연방정부 물품 조달 적용 기준은 계약금액 10만 달러다. 한미 FTA가 적용되는 조달에서는 한국에서 생산되거나 실질적 변형 요건을 충족한 최종제품이 한국산 제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계약금액이 기준을 넘더라도 모든 국방 조달에 FTA가 자동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해당 품목과 조달이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국방조달에서는 한미 FTA 적용 여부와 별도로 ‘국방연방조달규정보충규정(DFARS)’상 국가 구분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DFARS의 ‘적격국가(Qualifying Country)’에는 포함돼 있지 않아, 적격국가 제품에 적용되는 ‘미국산 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 및 ‘Balance of Payments Program(BOPP)’ 관련 면제를 자동으로 받을 수 없다. 다만 해당 조달공고에 FTA 관련 조항이 적용되는 경우 한국산 제품은 협정국 제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실제 공급 가능 여부는 개별 공고에 적용되는 무역협정, 미국산 구매 관련 규정, 원산지 요건, 공급원 승인, 기술자료 접근, 품질·시험 요건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완성 장비 수주가 아니더라도 미국 방산시장에 들어갈 길은 있다. 이미 운용 중인 장비의 정비와 교체부품 수요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은 한국 제조기업이 새로운 조달 기회를 발굴하고 방산 공급망에 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진입 경험이 쌓이면 수출 기반을 넓히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 Hanwha, U.S. Army, 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GAO), Defense Logistics Agency (DLA), U.S. Army Tank-automotive and Armaments Command (TACOM), Integrated Logistics Support Center (ILSC), U.S. Army Contracting Command–Detroit Arsenal (ACC-DTA), DLA Internet Bid Board System (DIBBS), SAM.gov, eCFR,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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