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국회
유럽계 글로벌 1차 부품사 구매 팀장
미국 자동차 산업의 공급업체 선정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격, 품질, 납기,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핵심 평가항목이었다. 이제는 여기에 관세 노출, 실질 지배구조, 중국과의 기술·자본 관계, 데이터 보안, 원재료 추적성, 미국 내 생산 여부와 공급망 복원력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 자동차 부품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만으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고객은 소유구조, 하위 공급망, 데이터 흐름, 원산지와 실제 생산장소까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 기업은 고객의 공급망 위험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미국 자동차 정책은 원산지보다 통제 가능성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최근 규제는 모든 중국산 부품이나 중국계 기업을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구조가 아니다. 핵심은 차량과 생산시설을 통한 데이터 이전, 중국계 기업의 공급망 통제, 미국 산업 지원의 우회 활용, 강제노동과 원산지 리스크 등 공급망 전반의 위험을 줄이는 데 있다.
경쟁상대가 중국 기업이라고 해서 한국 기업이 자동으로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추고 그 결과를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미국 자동차 업계의 현실적인 공급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커넥티드카’ 공급망 규제다
2025년 3월 17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커넥티드카 관련 최종 규정이 발효됐다. 이 규정은 중국 또는 러시아와 규제상 연계된 차량연결시스템(Vehicle Connectivity System, VCS) 하드웨어·소프트웨어와 자동주행시스템 소프트웨어의 미국시장 사용을 제한한다. 소프트웨어 관련 금지는 2027년식 차량부터, 하드웨어 관련 금지는 2030년식 차량부터 적용된다.
VCS에는 텔레매틱스 제어장치, 셀룰러·위성 통신장치, 블루투스 및 와이파이 모듈 등이 포함된다. 차량 내 카메라,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자동주행 소프트웨어,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차량용 운영체제와 원격진단·클라우드 서비스 등도 고객의 추가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발자의 국적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소유·통제 관계다. 중국인 또는 러시아인 직원이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급업체가 중국 또는 러시아의 소유·통제·관할·지시를 받는지, 외부 기업이 소스코드와 업데이트, 원격관리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적용 대상 차량 제조업체와 수입자는 BIS에 적합성 선언서(Declaration of Conformity)를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와 1차 협력사가 하위 공급업체에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구성, 지배구조, 데이터 접근권한 등에 관한 증빙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부품기업도 중국산 모듈을 한국산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발 체계와 서버 위치, 소스코드 관리, 원격접속 권한, 하위 공급업체와 데이터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관련 자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중국 기업이 아니다”라는 설명보다 규제 적합성 확인에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 실질적인 경쟁력이 된다.
정책의 축은 원산지에서 지배구조와 공급망 구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들은 규제 대응을 주로 “어느 나라에서 생산했는가”라는 원산지 문제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책은 생산국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기술·원재료 의존도, 규제 대상 기업의 공급망 관여 여부까지 함께 확인하는 방향으로 정교해지고 있다.
배터리와 핵심광물 분야가 대표적이다. 소비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는 2025년 9월 30일 이후 구매한 차량부터 종료됐지만, 중국계 공급망에 대한 통제는 이어지고 있다. 2025년 세법 개정으로 Section 45X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 등에 금지외국기업(PFE)의 소유·지배 관계와 원재료·부품·기술의 물질적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규정이 추가됐다.
커넥티드카 분야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Connected Vehicle Security Act of 2026’은 외국 적대국 관련 주체가 일정 수준 이상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커넥티드카 제조업체의 미국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재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일반 사출품이나 프레스부품 등 자동차 부품 전반에 일률적인 중국산 함량 제한이 도입된 것은 아니다. 다만 커넥티드카와 배터리·핵심광물 분야에서 지배구조와 공급망 구성을 함께 심사하는 흐름이 강화되면서, 완성차 업체와 1차 협력사가 법적 의무 확대에 앞서 자체 구매 기준과 공급망 실사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내 생산은 관세 절감에서 공급 지속성의 문제로 확대됐다
미국은 2025년 수입 승용차와 경트럭, 특정 자동차 부품에 25%의 Section 232 관세를 도입했다. 이후 한미 합의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와 대상 부품의 관세는 기본 관세와 Section 232를 합쳐 15%가 되도록 조정됐다. 기본 관세율이 이미 15% 이상이면 추가 Section 232 관세는 부과되지 않는다.
중국산 자동차와 일부 부품은 품목에 따라 Section 301 관세가 추가될 수 있어 실제 관세 부담은 품목별로 달라진다. 모든 중국산 자동차 부품을 하나의 세율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품목에서는 한국산과 중국산 간 관세 부담 차이가 커질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미국 내 생산기반을 갖춘 한국 기업은 관세뿐 아니라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도 차별화할 수 있다. 미국 고객은 현지 공정 범위, 핵심 원재료·부품의 조달처, 해외 본사와 설비·소프트웨어 의존도까지 함께 살펴볼 가능성이 크다. 미국 공장 보유 자체보다 현지조달률, 관세 노출, 대체 공급원, 생산 전환 가능성과 공급중단 시 복구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UFLPA는 완성 부품이 아니라 공급 경로를 본다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전부 또는 일부 생산됐거나 ‘UFLPA Entity List’에 등재된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것으로 추정한다. 수입자가 이를 충분히 반박하지 못하면 미국 수입이 제한될 수 있다.
자동차 공급망에서는 완성 부품의 최종 조립국만으로 위험을 판단하기 어렵다. 알루미늄·철강 원료, 배터리 소재, 흑연, 희토류 등도 공급 경로에 따라 추적이 필요할 수 있다. 다만 중국산이라는 사실만으로 UFLPA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핵심은 신장 지역이나 UFLPA Entity List 기업과 공급망이 연결돼 있는지 여부다.
한국에서 사출·도장·조립한 부품이라도 원재료나 하위 부품이 금지 대상 공급망과 연결되면 미국 통관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최종 원산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만큼, 원재료 생산자와 제련·정제·가공업체까지 공급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미국 자동차 부품 구매의 기준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자동차 업계 구매 담당자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공급업체 선정 이후 발생하는 관세 부담, 통관 지연, 규제 부적합과 생산 중단은 결국 구매 조직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만큼 공급업체 평가 기준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가격, 품질, 납기와 생산능력이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미국 내 생산 가능 여부, 원재료·하위 부품의 출처, 지배구조와 기술 통제권, 데이터 이동경로, 대체 공급망 확보 여부까지 함께 살펴볼 가능성이 높다.
가장 낮은 단가가 반드시 가장 경쟁력 있는 조건도 아니다. 관세와 물류, 통관 지연, 공급 중단 위험까지 고려하면 표면단가가 낮은 공급원이 오히려 더 큰 총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구매 기준은 “현재 얼마에 공급할 수 있는가”에서 “환경이 바뀌어도 계속 공급할 수 있는가”로 확대되고 있다. 가격과 품질은 여전히 기본조건이지만, 공급망을 설명하고 중국 노출도와 대체 가능성을 데이터로 입증하는 역량도 중요한 선정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 경쟁사 대비 가질 수 있는 우위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한미 동맹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보다 실제 사업 수행 역량에서 나온다.
첫째는 미국 내 생산과 고객 근접성이다. 현지 생산기반은 물류·재고 위험을 줄이고 생산변동이나 품질 문제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둘째는 투명한 지배구조다. 미국 고객은 최종 실질소유자, 주요 의사결정권, 기술 라이선스 등 실제 통제구조까지 확인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는 자동차 양산 경험이다. 다수의 한국 협력사는 APQP·PPAP 등 양산 품질관리 절차와 IATF 16949 품질경영시스템, 고객별 품질 요건과 적시공급(JIT)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역량은 인증서보다 실제 양산 실적과 문제해결 경험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는 가격과 함께 실행속도와 공급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가격 경쟁보다 고객 요구에 맞춰 양산을 실행하고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다섯째는 중국 노출도를 파악하고 줄여갈 수 있는 데이터 역량이다. 품번별 중국산 원재료·부품 비중과 대체 공급원, 전환 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규제 변화에 대응 가능한 공급업체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 고객이 확인하려는 것은 “현재 공급업체를 귀사로 변경하면 위험과 총비용이 얼마나 줄어드는가”다. 운송 시간, 재고 감소, 현지 조달률, 중국산 부품 비중, 대체 일정과 공급망 복구 시간 등을 가능한 한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Tier 1, Tier 2와 Tier 3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규제가 강화될수록 공급 단계별 역할도 구체화된다. 완성차 업체에 직접 납품하는 1차 협력사(Tier 1)부터 그 하위의 2·3차 협력사(Tier 2·3)까지 공급망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1) Tier 1: 공급망 전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Tier 1은 품번별 공급망, 주요 하위 공급업체, 실질 소유자, 원산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흐름을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 규제와 대체 계획도 함께 관리할 필요가 있다.
(2) Tier 2: 제품뿐 아니라 공정을 증명해야 한다
Tier 2는 원재료와 하위 부품의 출처, 외주 공정, 생산 설비·소프트웨어 의존도, 중국산 원재료 비중과 대체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표준화해 제공하면 Tier 1의 실사 부담을 낮출 수 있다.
(3) Tier 3: 추적 가능한 원천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Tier 3와 원재료 공급업체는 생산업체와 생산국, 제련·정제·가공 경로, 중국산 함량 등 원재료의 공급 이력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원산지증명서뿐 아니라 원재료가 어떤 기업과 경로를 거쳐 공급됐는지까지 설명할 필요가 커질 수 있다.
규제를 경쟁사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중국 경쟁사의 규제 위험을 사업 개발에 활용할 수는 있지만, 시행되지 않은 법안을 확정된 규제로 설명하거나 중국계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거래가 금지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일반 부품 공급과 차량 통신시스템 공급은 규제상 의미가 다르며,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도 실사 대상에서 자동으로 제외되지 않는다.
경쟁사의 법적 부적격을 단정하기보다 확인이 필요한 위험요소와 자사가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을 설명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한국 기업도 중국 노출도를 투명하게 파악하고 대체 가능성과 전환 기간, 통제장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완전한 중국 배제보다 단계적인 대체 계획을 보여주는 편이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 더 효과적이다.
지금 준비하는 공급망이 2029~2030년형 차량을 결정한다
자동차 산업은 일반적으로 양산 개시(SOP) 2~3년 전에 핵심 공급업체를 선정하고 이후 설계 검증, 금형·설비 제작, PPAP와 양산 준비를 진행한다. 프로그램과 품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26년 현재 완성차 업체와 1차 협력사들은 2029~2030 모델연도(MY) 신규 프로그램의 후보 공급업체와 공급망을 검토하는 시기다.
이는 규제가 시행된 뒤 공급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규제가 본격 적용될 시점의 공급망을 지금 설계하고 있다는 의미다. 품번별 공급망과 실질 소유자, 원재료, 소프트웨어, 데이터 흐름을 설명할 수 있는 기업은 향후 규제 변화에 대응할 대안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자동차 협력사도 단순한 대체 공급업체보다 현지화와 공급망 다변화, 비상 대응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북미 파트너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맺음말
미국 자동차 공급망의 재편은 단순한 원산지 경쟁이 아니다. 앞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의 구매 담당자는 가격뿐 아니라 관세와 규제가 바뀌거나 공급에 차질이 생겨도 납품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함께 볼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기업도 현지 생산과 투명한 지배구조, 추적 가능한 원재료, 통제 가능한 데이터와 대체공급망을 구체적인 자료로 제시해야 한다.
결국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부품만이 아니라 공급망 자체다. 고객의 공급망 위험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그 가치를 얼마나 구체적인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는지가 한국 자동차 협력사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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