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 프랑스는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렸다. 6월부터 8월 평균 기온은 24.0°C로 1900년 관측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폭염은 세 차례에 걸쳐 총 53일간 이어졌으며,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보다 약 40% 부족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규모 산불이 프랑스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해 지난 20년간 산불로 소실된 평균 면적의 6배가 소실됐다. 인명 피해도 컸다. 프랑스 공중보건청(Sante Publique France)은 8월 19일 기준 올해 폭염 기간 초과 사망자 수가 약 7,3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폭염은 원자력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필요로 한다. 강의 수온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강물의 유량이 부족해지면 발전소에서 물을 취수하거나 다시 방류하는데 제약이 발생하고, 이에 발전량을 줄이거나 일시적으로 원자로를 멈춰야 한다.
2026년 여름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이례적인 규모로 나타났다. 폭염과 갈수의 압박 속에 7월에는 하루 평균 23기, 8월에는 하루 평균 27기의 원자로가 부분적, 또는 완전히 가동 중단 상태에 놓였다. 프랑스 전력망 운영기관 RTE는 2026년 여름 폭염과 가뭄 등 기후 요인으로 원전의 잠재 발전량 가운데 약 10TWh가 생산되지 못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기존 기록이었던 2003년의 6TWh, 2020년의 3TWh보다 큰 규모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서부의 골페슈(Golfech) 원전으로, 가론강의 수온이 규제 기준인 28°C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7월 29일 원자로 2호기를 정지시켰다. 이후 8월 7일에 재가동했지만, 가론강 수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8월 8일 다시 정지시켰고, 8월 20일에야 전력망에 재연결했다. 강에서 취수한 냉각수가 발전소를 거쳐 다시 강으로 방류되는 과정에서, 발전소 하류 하천의 높은 수온이 하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였다.
(단위: TWh)

[자료: EDF]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대규모 발전 손실이 발생했음에도, 전력 공급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RTE에 따르면 6월~8월 프랑스 원전 발전량은 83.7TWh로, 2024년 83.5TWh, 2025년 84.4TWh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원전은 여전히 프랑스 전체 발전량의 약 67%를 차지했고, 프랑스 국내 소비량의 약 84%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했다.
이는 폭염으로 원전 일부가 발전량을 줄였음에도, 다른 원전의 전반적인 가동률이 예년보다 좋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다른 발전원의 증가가 이를 보완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다만, 프랑스 원전 단지가 기후 변화에 충분히 대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원전의 정상적인 가동 여부를 결정하는 변수에 원자로 자체의 안전성과 설비 상태뿐 아니라 기온, 하천 수온과 유량 등 기후, 수자원 조건이 새롭게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EDF(프랑스 전력 공사), 기후 변화 대응에 15년간 90억 유로 투자계획
프랑스 전력공사 EDF는 반복되는 폭염과 가뭄이 원자력 및 수력 발전소에 미치는 장기적 위험을 파악하고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서도 발전설비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EDF는 기후변화로 인해 2010년대 동안 수력발전 시설의 연간 생산량이 1TWh 손실됐고, 별도의 적응 조치가 없다면 이러한 손실은 최소 2040년대까지 동일한 속도로 계속되어 수력 발전량의 약 2.5%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DF는 향후 15년 동안 기존 시설을 기후 변화에 적응시키고 해외 영토의 전력망을 강화하기 위해 약 90억 유로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기후 회복력’을 향상시켜 기후로 인해 발생하는 발전 손실을 줄이고 발전 설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인프라 일부를 현대화할 계획이다. 이는 연간 6억 유로 규모로 기존의 투자 금액보다 약 4배 높은 수준으로, 폭염과 가뭄뿐만 아니라 홍수, 산불, 폭풍 등의 위험 요소도 종합적으로 고려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보(Civaux) 발전소에 적용된 방식이 대표적인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이 발전소에는 14m 높이의 ‘미니 냉각탑’ 4대가 설치되어 있어 178m 높이의 대형 냉각탑 두 곳에서 배출되는 배수(purge)를 자연 배수하기 전 미리 냉각시킨다. 이를 통해 원래 취수했던 시점보다 더 차가운 상태로 물을 강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EDF는 이 시스템을 이번 여름 폭염으로 가동 제한을 겪은 골페슈 발전소에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변화 자연재해 극복을 위한 EPR 원자로 설계
한편, 프랑스 최초의 EPR 원전인 플라망빌(Flamanville) 원자로 또한 350일 간의 정비 단계에 돌입했다. 플라망빌의 EPR은 추가 비용을 투입한 끝에 예정보다 12년이 지연된 2024년 12월에 가동을 시작한 원자로다. 이번 정비는 핵연료 최초 장전 후 최대 30개월 이내에 이른바 ‘종합 점검(visite complete)’를 실시하도록 한 EDF의 법적 의무 규정에 따른 것이다. 통상적인 점검 외에도 이번 대규모 정비 작업으로, 원자로 압력용기와 주요 계통에 대한 검사와 제작 과정에서 탄소 함량 이상이 확인됐던 원자로 압력 용기 덮개의 교체 작업이 포함될 예정이다. 원자로 건물 역시 밀폐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을 거치게 된다.
EDF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따른 원자력 발전소의 취약성이 높아짐에 따라, 플라망빌 EPR은 가능한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콘크리트 기초 구조물 위에 건설됐고, 그 높이는 홍수나 해수면 상승을 예견하여 계산됐다.
전력 공급이 끊기는 상황에 대비해 4개의 주요 비상 디젤 발전기를 서로 분리된 건물에 배치했으며, 4개 발전기를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별도의 최종 비상 디젤 발전기 2대도 마련했다. 주요 비상 발전기는 외부 전원 상실 상황에서 안전계통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배터리 역시 비상 상황에서 안전계통의 전력 공급을 보완한다.
EDF 측은 이번 플라망빌 EPR 원자로 종합 점검이 그 규모 면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의 10년 주기 점검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약 200개 기업에서 2,500명의 인력이 동원될 예정이다.
플라망빌 EPR의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얻은 경험은 후속 모델인 EPR2에도 반영될 예정이다. EDF는 펜리(Penly), 그라블린(Gravelines), 뷔제(Bugey) 등 3개 부지에 각각 2기의 EPR 2세대를 건설하는 총 6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설계 표준화와 동일한 원자로를 쌍으로 건설하는 방식을 통해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PR2 원자로 건립 상황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22년 EPR2 타입 원자로 6기와 8기 추가 건설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후 지난 2025년 3월 소집된 원자력 정책 위원회(CPN, Conseil de Politique Nucleaire)는 기존에 공식적으로 2035년~2037년 사이로 계획됐던 펜리(Penly) 지역의 첫 번째 EPR2 원자로 2기의 가동을 2038년으로 연기했다. 또한 2026년 3월에는 6기 프로그램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EDF 이사회의 최종투자결정을 2026년 말까지 마치며 첫 EPR2를 2038년까지 가동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EDF는 플라망빌의 EPR을 포함하여 총 57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이다.
(노란색: EPR2 프로젝트 부지)

[자료: AFP]
일간지 르몽드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북부의 펜리(Penly), 그라블린(Gravelines), 뷔제(Bugey)에 건립 예정된 6기의 EPR2 원자로는 26년 9월 기준 아직 착공 전이지만, 추가 건립될 8기의 EPR2 원자로 유치를 두고 지자체의 경쟁이 분주한 상황이다. 정부와 EDF가 8기의 EPR2 추가 건립 추진 여부와 이를 건설할 4곳의 신규 부지를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자체 간의 경쟁은,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의 원자력 발전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지자체 재정에도 막대한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2025년 기준 18개 발전소에 분산된 프랑스 내 57기의 원자로는 약 11억 유로 규모의 지방세수를 창출했다는 보도다.
전문가 의견 및 시사점
프랑스의 원자력 산업은 기후 변화에 대응한 인프라 현대화에 투자중이고, EPR2 건설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산업 재건을 추진 중이다. EDF를 중심으로 한 EPR2 프로젝트는 살펴본대로 Penly, Bugey, Gravelines 등 3개 부지에서 단계적으로 착공을 진행 중이며, Framatome, IWF, Rutschi 등 다수의 중견 제조 기업이 이에 대응한 대규모 설비투자와 공급망 확대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 원자력 생태계는 여전히 기술력과 산업 기반 측면에서 유럽 내 핵심 축으로 평가되며, Nuward, Calogena, Framatome, Orano 등 주요 기업들이 부품 소재, 고온 금속, 3D 프린팅, 비파괴검사(NDE) 등 분야에서 협력 파트너를 찾고 있는 추세로 파악된다.
EDF와 협업 중인 V사의 공급망/구매 코디네이터 A 씨는 파리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자사는 신형 EPR2 원자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다수의 프로젝트는 원자력 산업에서 많은 작업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원자력 산업 시장의 성장 규모를 고려하였을 때 향후 10년간 프랑스 민간 원자력 산업에서 매년 10,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히며, “프랑스 장비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제조업체는 고객과 연락을 취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인증을 받아두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며 “파트너십을 맺고 인증 및 제품 동일화 과정을 용이하게 해주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면 이들을 선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의 원전 산업이 현재 공급망 재편의 과도기에 있는 만큼 검증된 기술력과 산업 표준 경험을 가진 한국 기업에게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 일간지 르몽드(Le monde), 레제코(Les echos), 프랑스 정부 포털 Vie Publique, EDF, 파리무역관 보유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