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운행 중인 순수 전기차가 10만 대를 넘어섰다. 이를 뒷받침할 공용 충전기는 2024년 말 3191대에서 2025년 말 4227대로 1년 새 1036대, 32.5% 증가했다. 헝가리 에너지·공공서비스규제청(MEKH)이 발표한 2025년 4분기 보고서에 담긴 수치다.
사용량도 함께 늘었다. 2025년 4분기 헝가리 공용 충전기에서 공급된 전력량은 1만2630MWh로 전년 같은 기간 8693MWh보다 약 45% 많았다. 유럽 전체로도 2026년 5월까지 신규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35% 증가했으며, 헝가리 중고 전기차 시장은 이보다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늘어난 충전기가 모두 활용되지는 않는다
충전기는 크게 완속과 급속으로 나뉜다. 완속은 가정용 전기를 그대로 받아 차량 내부에서 변환하는 방식이어서 완전 충전에 몇 시간이 소요된다. 급속은 충전기 내부에서 변환을 마친 전기를 차량에 직접 공급해 30분 안팎이면 상당 부분을 채울 수 있다. 헝가리 공용 충전기 4227대 가운데 73%인 3079대가 완속이다.
사용량은 정반대다. 4분기에 공급된 전력량 1만2630MWh 중 완속이 담당한 몫은 2158MWh로 17%에 그쳤다. 충전 건수로 보아도 같은 기간 51만9373건 중 37만5945건, 72%가 급속이었다.
충전기 한 대가 담당하는 양을 기준으로 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완속은 분기당 약 700kWh를 공급한 반면 급속은 약 9300kWh를 공급했다. 대당 13배 차이다. 완속은 아파트 주차장이나 사무실처럼 차량을 장시간 세워두는 장소에 주로 설치되는 반면, 이동 중 충전 수요는 급속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완속을 늘려도 실제 충전 수요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충전 단자 규격은 정리되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CCS2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계 완성차가 채택해 온 차데모(CHAdeMO) 규격은 신규 설치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헝가리 공용 충전기의 CCS2 단자는 1559개, CHAdeMO는 506개다.
EU 규정이 요구하는 다음 단계
급속 안에서도 출력 차이가 크다. 헝가리에서 급속 충전이 가능한 충전기 1148대에 설치된 충전 단자는 2085개이며, 이 중 150kW 이상은 704개로 34%, 350kW 이상은 82개로 4%에 그친다. 나머지 3분의 2는 이보다 출력이 낮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EU 규정 때문이다. EU는 대체연료 인프라 규정(AFIR)을 통해 회원국에 유럽 주요 간선도로망을 따라 60km마다 충전소를 설치하되, 한 곳당 총 출력 400kW 이상에 개별 출력 150kW 이상 충전기를 최소 한 대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초고속 충전기 확충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유럽운수환경연합(T&E) 분석에 따르면 2026년 6월 기준 EU 주요 간선망의 79%가 2025년 목표치를 충족했으며, 미달 구간은 주로 동유럽과 스페인에 집중돼 있다. 다만 같은 분석은 이들 지역에서 초고속 충전기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업자들은 부지 확보에 나섰다
초고속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충분한 전력을 끌어올 수 있고 차량 통행이 많은 부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업자가 이러한 부지를 직접 매입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이에 따라 일반 기업의 주차장을 임차해 자사 네트워크에 편입시키는 방식이 등장했다.
헝가리 최대 정유·주유소 기업인 몰(MOL)은 2026년 7월 3일 자사 충전 네트워크의 파트너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헝가리에 등록된 기업이 적합한 부지와 전기 설비를 갖추고 충전기 구입비를 부담하면, MOL이 급속충전기를 조달해 현장까지 운송하는 방식이다. 설치와 시운전도 MOL에 위탁할 수 있다.
MOL은 충전기 외관에 자사 광고를 부착하는 대가로 일회성 분담금을 지급한다. 49~99kW급은 순액 100만 포린트(약 470만 원), 100kW 초과는 순액 360만 포린트(약 1692만 원)다. MOL은 이 분담금으로 충전기 구입비와 설치비의 3분의 1가량이 사업 개시 시점에 회수된다고 설명했다. 투자액만큼 법인세 과세표준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안내했다.
충전기 소유권은 부지를 제공한 기업이 보유하며, 수익은 고정 수수료와 이용량에 따른 수수료로 배분된다. 계약 기간은 10년이며 연장이 가능하다. 신청 요건은 최소 50kW의 여유 전력과 충전기 한 대당 주차면 2개 확보다.
독일계 전력기업 이온(E.ON)의 헝가리 충전 자회사는 접근법이 다르다. 이 회사는 2026년 7월 200kW를 넘는 초고속 충전기를 설치할 부지를 발굴하는 전국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투자와 설치, 운영을 모두 자사가 부담한다. 대신 부지 조건이 까다롭다. 24시간 접근이 가능하고 조명이 갖춰진 안전한 장소, 하루 수천 명이 오가는 장소, 상업지구나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통행량이 많은 입지를 요구한다. 이 회사는 현재 150개 지점에서 충전기 236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중 156대가 150kW를 넘는다.
요금으로 수요를 분산하려는 시도
부지 확충과 별개로, 이미 설치된 충전기를 고르게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헝가리 국영 전력그룹 MVM의 충전 브랜드 모빌리티(Mobiliti)는 2026년 7월 1일부터 지정 충전기에서 시간대 할인 요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요일과 관계없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충전을 시작하면 kWh당 160포린트(약 752원)가 적용된다. 부가세를 포함한 가격이다.
평소 요금은 50kW급이 kWh당 250포린트(약 1175원), 초고속이 269포린트(약 1264원)다. 40kWh를 충전할 경우 각각 3600포린트(약 1만6920원), 4360포린트(약 2만492원)를 절감할 수 있다. 적용 지점은 전국 60여 곳이며, 이 회사가 운영하는 맥도날드 매장 주차장 충전기 34곳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할인 시간대를 한낮으로 설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헝가리는 태양광 발전 설비가 빠르게 늘어 정오 무렵 전력이 남는 반면 저녁에는 부족하다. MVM은 이 시간대로 충전 수요를 유도해 전력망 부담을 완화하고 남는 태양광 전기를 소화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러한 요금 설계가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 헝가리 재생에너지 관련 협회 관계자 K씨는 인터뷰에서 '전기차 충전을 낮 시간대 태양광 생산 피크와 저렴한 요금 시간대에 맞추는 다이내믹 가격 책정이 필수적'이라며 '스마트 충전을 통해 전기차 자체가 국가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자원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MVM이 적용 중인 방식은 시간대를 미리 고정해 둔 형태로, 실시간 수급에 따라 요금이 변동하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시사점
헝가리 충전 시장은 설비 대수 경쟁을 지나 어느 위치에 어떤 출력을 설치하느냐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완속이 전체의 73%를 차지하면서도 전력의 17%만 공급하는 구조는 향후 투자가 고출력 급속충전기와 통행량이 많은 입지에 집중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현재 헝가리 시장 자체의 규모는 크지 않아 단독 진출 대상으로 삼기에는 제한적이다. 헝가리 사례가 갖는 의미는 EU 대체연료 인프라 규정이 27개 회원국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 있다. 초고속 충전기 확충 요구는 중동부 유럽 전반에서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며, 헝가리는 그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료: MEKH 2025년 4분기 전기차 충전설비 보고서, MOL 보도자료, MVM, EDRI 보도자료, T&E 보고서, Portfolio.hu, Vilaggazdasag.hu, KOTRA 부다페스트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