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업의 에너지 및 핵심 원자재 조달 환경은 지정학적 갈등과 특정 국가에 집중된 공급망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국제유가와 해상 운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희토류·니켈·망간·흑연 등 주요 원자재 시장에서는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공급 및 가공 능력의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독일과 유럽은 중희토류의 정제·가공과 자석 소재 공급에서 중국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일부 품목은 대체 공급처가 거의 없어 중국의 수출통제 강화가 자동차, 풍력발전, 반도체, 방위산업 등 독일의 주요 제조업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독일과 유럽연합은 공급망 다변화와 역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나, 정제시설과 자본, 장기 구매계약이 부족해 실제 공급망 전환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기업의 에너지·원자재 조달 환경
① 중동 정세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
걸프 지역의 군사적 충돌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국제유가를 단기간에 크게 움직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걸프 지역에서 추가 공습을 실시한 직후 2026년 7월 13일 9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장 초반 배럴당 79.40달러로 4.46% 상승했다. 분쟁 초기에는 브렌트유 가격이 일시적으로 배럴당 126달러를 넘어선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과 국제 교역에서 중요한 통로다. 이란의 해협 폐쇄 위협과 주변국에 대한 드론·미사일 공격, 해상 시추시설 피해가 이어질 경우 원유 공급뿐 아니라 해상 물류 전반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 독일에서 생산 및 물류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에는 에너지 비용 상승과 운송 지연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② 핵심 원자재 공급망의 지역적 집중 심화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핵심 광물 공급망의 지리적 집중도는 최근 더욱 높아졌다. 최근 2년 동안 핵심 원자재 가공 부문에서 발생한 전체 성장분의 4분의 3 이상이 니켈 분야의 인도네시아와 기타 주요 에너지 광물 분야의 중국에 집중됐다. 망간, 니켈, 흑연 등 일부 시장에서는 같은 기간 공급 증가분의 대부분이 시장을 지배하는 단일 공급국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공급 집중은 수출 제한이나 지정학적 갈등이 발생할 경우 산업 전반의 생산 차질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비교적 적은 양의 핵심 광물에 막대한 경제적 가치가 의존하고 있지만, 해당 광물의 공급망은 여전히 소수 국가와 기업에 집중돼 있어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③ 독일·유럽 희토류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
<독일·유럽 희토류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

[자료: 프랑크푸르트무역관 자체 정리(도식: AI 기반 이미지 도구 활용)]
④ 중국에 집중된 중희토류 공급
독일과 유럽은 중희토류의 가공과 자석 소재 분야에서 중국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일부 품목은 사실상 대체 공급처가 거의 없다. 중국은 사마륨, 가돌리늄, 디스프로슘, 터븀,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 등 여러 희토류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했다.
이들 원자재는 전기자동차, 풍력발전기, 희토류 영구자석 및 방산 제품 생산에 사용된다. 이에 따라 수출허가 지연이나 공급 축소는 독일의 자동차·에너지·방위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반도체와 방위산업에 필요한 게르마늄과 갈륨의 수출도 한때 거의 중단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인 바 있다.
중국산 희토류를 수입하려는 기업은 해당 소재가 군사적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 제품에 투입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생산계획, 수입물량, 도면과 같은 자료의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어 기업들은 공급 확보와 함께 기술 및 영업정보 공개 위험도 부담하고 있다.
중국은 독일 기업에 수출심사와 허가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는 이른바 ‘녹색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유럽 기업들은 이러한 절차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공급을 보장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⑤ 채굴보다 부족한 정제·가공 능력
유럽의 취약점은 광산이 부족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광을 분리·정제하고 이를 자석과 산업용 소재로 전환할 수 있는 가공시설도 충분하지 않다. 중국은 수십 년간 희토류 채굴과 가공에 투자하고 정부 지원을 제공하면서 정제·후속 가공 분야에서 기술과 규모의 우위를 확보했다.
특히 중희토류의 경우 유럽은 핵심 산업에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의 산업 규모 가공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호주의 라이너스는 중국 이외 업체 중 중희토류 가공 역량을 확보한 대표적 사업자로 꼽히지만, 현재 생산능력은 제한적이다. 관련 공정을 산업적 규모로 확대하기까지는 최소 1∼2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위산업에 필요한 자체 공급 기반은 서방이 향후 3∼4년 안에 일정 수준 구축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를 자동차, 에너지 및 일반 제조업이 요구하는 대량생산 체계로 확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로 평가된다.
독일 기업의 대응과 제약 요인
① 뒤늦은 물량 확보와 비축 확대
독일 산업계는 과거 안정적인 공급망보다 비용과 수익성을 우선시해 가격이 낮은 중국산 원자재를 구매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수출통제를 강화한 이후 기업들이 구매량을 크게 늘리기 시작하면서 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중희토류 물량은 더욱 부족해졌다.
프랑크푸르트의 원자재 거래업체 트라디움에 따르면 현재 중희토류 수요는 공급 가능한 물량을 넘어선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수출통제 강화 이후 신속히 대응해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물량의 상당 부분을 선점한 반면, 독일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늦게 조달에 나섰다.
트라디움은 프랑크푸르트의 옛 방공호에 희토류와 기타 핵심 금속을 보관하고 있다. 신규 물량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현재는 투자자와 기존 보유자가 맡긴 원자재를 다시 매입하는 방식으로 일부 공급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공급 차질이 현실화된 뒤 현물시장에서 원료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② 재활용·자석 생산의 확대 한계
독일은 희토류 자석과 재활용 분야에서 일부 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우의 바쿠움슈멜체는 희토류 분말을 자석으로 가공하고 있으며, 비터펠트의 렘로이는 폐희토류 자석을 재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산 원료와 자석 소재는 중국산보다 가격이 높다. 독일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산이 아닌 소재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렘로이는 일부 고객을 확보하고 있지만, 생산량을 산업 규모로 확대할 만큼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산 희토류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생산시설뿐 아니라 일정한 구매 수요가 필요하다. 렘로이 측은 유럽산 소재의 최소 구매비율을 설정하는 방식이 시장 조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③ 양해각서 중심 협력의 한계
독일과 유럽 기업들은 원자재 기업 및 광산업체와 양해각서를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양해각서는 대부분 가격과 구매물량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없다.
원자재 개발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크고 사업 위험도 높다. 추가 투자자를 유치하고 생산시설을 확대하려면 일정 물량을 특정 조건으로 구매하겠다는 구속력 있는 장기계약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장기 구매약정이 부족해 다수 원자재 프로젝트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EU의 정책 대응과 한계
① 핵심원자재법과 전략사업 추진
유럽연합은 핵심원자재법을 통해 역내에서 필요한 핵심 원자재의 최소 10%를 자체 채굴하고, 최소 40%를 역내에서 가공하며, 25%를 재활용을 통해 공급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한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47개의 전략적 사업을 선정했다.
그러나 전략사업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재정 지원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기사에 따르면 실제 지원금에 접근한 사업은 세 건에 불과하다. 일부 사업은 전략사업으로 선정된 이후에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의 지원제도도 여러 회원국의 개별 프로그램으로 분산돼 있다. 독일 원자재 기금은 주로 5,000만 유로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 상당히 진척된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초기 단계의 광산 및 원자재 사업은 지원받기 어렵다. 독일 정부는 지원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유럽 차원의 통합적인 투자·금융 플랫폼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② 가격 하한제와 가격 투명성 논의
G7은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원자재 동맹과 핵심 원자재 가격 하한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보조금과 축적된 가공기술을 바탕으로 서방 기업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가격으로 원자재와 자석 소재를 공급해 왔다. 이로 인해 중국 외 지역의 희토류 프로젝트는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다만 적정 가격 하한을 산정하기 어렵고, 제도 자체가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독일 정부와 유럽투자은행 관계자들은 실제 거래정보를 익명으로 수집·통합해 원자재와 세부 규격별 시장 기준가격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가격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보다 직접적인 지원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MP 머티리얼스에 수억 달러 규모로 투자하고 생산품에 일정 수준의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정책 논의와 전략사업 선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투자와 자금 지원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공급망을 다변화할 경우 조달비용이 높아질 수 있지만,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이를 공급 차질에 대비하는 경제적 보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신규 희토류 사업과 말레이시아의 생산 확대는 중국 이외 지역에서 공급망 다변화가 일부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EU의 정책 대응과 한계>

[자료: 프랑크푸르트무역관 자체 정리(도식: AI 기반 이미지 도구 활용)]
우리기업에 대한 시사점
① 조기 확보·비축·장기계약 중심의 조달전략
독일의 사례는 공급 부족이 현실화된 이후 현물시장에서 원자재를 추가로 확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수출통제가 강화되자 독일 기업들이 구매량을 확대했지만,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이미 가용 물량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상태였다.
한국기업은 핵심 원자재별 공급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복수의 공급선과 일정 수준의 비축물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체 공급처가 제한적인 중희토류는 단기 구매가격보다 공급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조달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원자재 생산업체와 협력할 때는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만으로 공급을 보장하기 어렵다. 구매물량과 가격조건이 포함된 장기 구매계약은 한국기업의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원자재 프로젝트의 투자 유치와 생산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② 정제·가공·재활용·자석 분야의 협력 기회
독일과 유럽의 가장 큰 취약점은 광산 부족뿐 아니라 정제, 분리, 후속 가공, 재활용 및 자석 생산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채굴된 원료를 산업용 소재로 전환할 수 있는 시설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에는 광산 개발보다 정제·가공·재활용·자석 및 중간소재 분야에서 독일과 유럽 기업과 협력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유럽의 전략사업으로 선정됐다는 사실만으로 재정 지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프로젝트의 자체 자금조달 능력과 실제 수요처, 장기 구매계약 확보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③ 에너지 비용과 물류 리스크의 동시 관리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국제유가 상승과 해상 운송 지연을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 이는 독일과 유럽에서 생산 또는 물류 활동을 수행하는 한국기업의 원가와 납기 부담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조달·생산·운송계획을 수립할 때 유가 상승과 해상 운임, 운송기간 변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과 물류 차질을 별개의 위험으로 관리하기보다, 동일한 지정학적 사건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공급망 위험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자료: 독일연방경제기후보호부(BMWK), 독일연방재무부(BMF), 독일연방방위부(BMVg), Handelsblatt, FAZ, Spiegel 및 KOTRA 프랑크푸르트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