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확산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싱가포르 기업들의 인사(HR) 전략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우수 인재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고 채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확보한 인재를 어떻게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성장시킬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복 업무의 자동화와 노동시장 인재 구성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직원 몰입도(Employee Engagement),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 관리자 역량 등이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금융, 정보통신, 전문 서비스 등 서비스 산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로, 전문직·관리직·임원직·기술직(Professionals, Managers, Executives, Technicians, 이하 PMET)이 전체 노동시장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지식기반 산업 비중이 높은 만큼 기업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의 역량과 생산성에 크게 좌우된다. 이에 따라, 최근 싱가포르 기업들은 채용 경쟁력뿐 아니라 인재 유지(Employee Retention), 조직문화 개선, 리더십 개발 등 사람 중심의 HR 전략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직원들은 조직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싱가포르 기업들이 직면한 낮은 직원 몰입도 문제가 있다. 글로벌 조직 컨설팅 및 조사 기관인 Gallup이 싱가포르 이사협회(Singapore Institute of Directors)와 공동으로 발표한 「Singapore Workplace Report 2026」에 따르면, 싱가포르 근로자들의 업무 몰입도는 14%로 동남아시아 평균(25%)과 글로벌 평균(20%)을 크게 밑돌았다. 특히 이 수치는 2019년 이후 큰 변화 없이 정체된 것으로 나타나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 과제로 평가되고 있다.
Business Times는 낮은 직원 몰입도로 인해 싱가포르 경제가 연간 약 73억6000만 미국 달러(한화 약 11조 원)의 생산성 손실을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높은 GDP와 세계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갖춘 국가임에도 조직 내부에서는 직원들의 몰입도와 소속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의 높은 생활비와 치열한 경쟁사회 등 외부 요인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중간 관리자 및 매니저의 리더십과 조직문화, 성장 기회 부족 등 조직 내부의 요인이 직원 몰입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세대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관리자와 조직문화
직원 몰입도 저하의 원인을 두고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세대 간 인식 차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Gallup 조사에 따르면, 35세 미만 근로자의 업무 몰입도는 10%로 35세 이상(16%)보다 낮았으며,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싱가포르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딸기세대(Strawberry Generation)”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딸기세대는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외부 압박에는 쉽게 무너진다는 비유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일부에서는 젊은 세대가 조직에 대한 헌신이 부족하고 업무 압박에 취약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단순히 세대의 성향 문제로 보기보다 조직 운영 방식과 근무 환경의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오늘날 젊은 직장인들은 급여뿐 아니라 성장 기회, 일의 의미(Meaningful Work), 관리자와의 소통, 유연한 근무 환경 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조직에 대한 몰입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Gallup 역시 직원 몰입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직속 관리자의 역할을 꼽았다.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피드백과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관리자가 있을 때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성과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원 몰입도가 개인의 성향보다 관리 방식과 조직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보고서에 소개된 한 지역 금융서비스 기업은 관리자 역량 개발에 장기간 투자하고, 관리자 한 명이 담당하는 팀의 규모를 줄여 팀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한 결과, 직원 몰입도가 싱가포르 평균의 약 4배 수준까지 향상됐다. 또 한 호텔기업은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보다 관리자가 직원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업무량이 집중되는 시기에 맞춰 웰빙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직원 만족도와 조직 몰입도를 높였다. 이들 사례는 최근 싱가포르 기업들이 단순한 복지 확대보다 관리자 역량 강화와 조직문화 개선을 조직 몰입도 향상과 인재 유지의 핵심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 소재 글로벌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최근 퇴사 인터뷰(Exit Interview)를 진행해 보면 급여 자체보다 ‘관리자로부터 성장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라거나 ‘회사 안에서 다음 커리어가 보이지 않는다’라는 이유가 더 자주 언급된다”며 “특히 PMET 인력은 외부 기회가 많기 때문에 연봉만으로는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리자의 성과관리 역량뿐 아니라 코칭과 멘토링, 경력개발 지원 역량까지 함께 평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관리자가 팀원의 성장을 얼마나 지원하는지가 인재 유지의 핵심 지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시대, 직원 몰입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
생성형 AI의 확산은 싱가포르 기업들의 업무처리 방식과 인재 관리 전략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가 AI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기업들은 AI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직원 몰입(Employee Engagement)과 변화관리(Change Management)가 AI 시대에서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현지 언론은 생성형 AI 도입 과정에서 기업들이 기술적 준비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심리적 수용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직원들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수록 자신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대체될 수 있다고 인식하는, 이른바 “AI 유인 충돌(AI Incentive Conflict)” 현상이 새로운 HR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직원들의 AI 활용을 주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조직에 대한 신뢰와 업무 몰입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다른 과제로는 “AI 경력단계 격차(AI Career-stage Split)”가 제기된다. 과거에는 신입사원들이 반복적인 실무를 수행하며 업무의 기본기를 익혔지만, AI가 이러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사회초년생이 충분한 경험을 축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 정보통신, 전문 서비스 등 PMET 비중이 높은 싱가포르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향후 인재 육성과 조직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AI 도입이 가속화될수록 기업들은 기술 도입 자체보다 이를 조직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변화관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직원들이 AI를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인식할 수 있도록 AI 활용 교육과 재교육, 직무 재설계, 직속 관리자와의 소통 등을 병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AI 시대의 경쟁력이 기술 확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수용성과 조직의 적응 역량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 소재 컨설팅 기업의 People & Culture 담당자는 “최근 AI 도입 프로젝트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은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라며 “같은 AI 툴을 제공해도 팀장마다 활용 수준이 크게 달라 실제 현장에서는 AI 도입 이전에 관리자 대상 교육부터 시행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몰입도는 복지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직원들의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연근무제, 상담 프로그램, 웰니스 데이 등 다양한 복지제도가 싱가포르 기업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것만으로 직원 몰입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Gallup은 직원들의 웰빙은 업무 부담이 줄어들었을 때보다 업무량이 가장 많은 시기에 더욱 중요해지며, 단기적인 복지 프로그램보다 업무 설계와 관리 방식이 직원 경험과 업무 몰입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소개된 우수 사례 기업들도 복지제도를 경쟁적으로 확대하기보다 관리자와 직원 간 정기적인 피드백을 강화하고,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며, 업무량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등 일하는 방식 자체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직원 몰입도가 개별 복지 프로그램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관리자의 리더십과 조직문화, 업무 설계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 도입으로 업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싱가포르 기업들은 기술 투자와 더불어 직원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성장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조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사점
싱가포르 기업들의 HR 전략은 AI 도입과 노동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채용 중심에서 인재 유지와 직원 몰입도 향상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과거에는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확보한 인재가 조직에 장기적으로 머물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직원 몰입도가 단순한 복지나 보상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리더십, 조직문화, 성장 기회, AI 시대에 맞는 변화관리 등 조직 운영 전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싱가포르 기업들은 관리자 역량 강화와 직원 경험 개선, AI 활용 교육 등을 병행하며 인재 유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HR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하는 우리 기업 역시 이러한 변화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지에서는 경쟁력 있는 보상 체계를 갖추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된 만큼,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관리자 육성, 명확한 경력개발 경로 제시, 직원과의 지속적인 소통, AI 도입에 따른 변화관리와 재교육 체계 구축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AI 시대의 기업 경쟁력은 기술 자체보다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수용성을 높이고 조직의 적응력을 강화할 수 있는 HR 전략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 Gallup & Singapore Institute of Directors, Singapore Workplace Report 2026, The Business Times, The Strait Times, CNA, 싱가포르무역관 자료 종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