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일,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번째 국정연설(Cuenta Pública)을 발표했다. 약 2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 이번 연설은 안보·경제·사회의 현 상황 진단, 그간의 성과, 향후 계획을 두루 다뤘다. 외부 분석에 따르면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칠레(90회 이상), 국가(46회), 정부(34회), 일자리·노동(29회), 안보(26회)로, 이는 카스트 정부의 국정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2026년 칠레 국정연설>

[자료: 칠레 대통령실 보도국, 2026]
카스트는 이번 국정연설에 앞서 3월에 '국가 재건 계획(Plan de Reconstrucción Nacional)'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경제 활성화, 재정 건전화, 치안 회복 등을 아우르는 입법 패키지로, 5월 하원을 통과해 현재 상원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번 연설은 해당 계획을 주축으로 한다는 점에서 카스트 정부의 전체 청사진으로 볼 수 있다.
치안·이민
칠레에서 치안은 2020년대 초 불법 이민 급증과 함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이 시기부터 초국가 조직범죄의 활동이 언론에 대거 보도되기 시작했으며, 2024년 국가도시치안설문조사(ENUSC)에서는 응답자의 87.7%가 지난 12개월간 범죄가 증가했다고 인식했다. 2025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좌우를 막론한 주요 후보들이 치안·안보 공약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대선 당시 조직범죄 척결, 경찰관 지원 및 이민 통제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카스트는 대통령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갔다. 먼저 50개 우범 지역을 대상으로 ‘집중 지역 개입 계획(Plan de Intervención Barrial Intensivo)’을 발표했다. 해당 계획은 경찰 집중 배치, 조직범죄 대상 특별 작전 등을 포함하며, CCTV, 스마트 가로등, 차량 인식 게이트, AI 등 첨단 감시 기술을 함께 도입한다. 이를 보완하는 ‘도로 안전 강화 계획(Plan Escudo en Ruta)’은 고속도로에 상시 차량 검문과 원격 보안 시스템을 구축한다. 카스트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공공안보부(Ministerio de Seguridad Pública) 산하에 조직범죄, 청부살인, 국경·항만 관리 등 7개 중점 대응 분야를 맡는 전담반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교정 분야에서는 ‘2030 교정 인프라 계획(Plan de Infraestructura Penitenciaria)’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교도소 과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민관 협력 방식으로 2만 개의 수용 시설을 신규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첨단 기술 도입, 통신 차단, 위험도에 따른 수감자 분리 수용 등을 통해 경비 수준과 보안 체계를 강화한다. 이외에도 현행범 기한을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연장하고, 경찰의 자율성 및 정당한 물리력 사용을 지지하며, 반사회적 행위자에 대해 국가 복지 혜택을 박탈하는 등 다각도의 방책을 마련했다.
이민 정책 역시 치안 강화 맥락에서 다뤄진다. 카스트 정부는 칠레 북부 국경이 역사적으로 마약 밀매와 불법 이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응한 ‘귀환 계획(Plan Retorno)’은 불법 체류자의 자발적 출국을 유도한다. 이와 병행으로 카스트는 군에 북부 지역 병력 배치, 드론을 활용한 국경 감시 강화 등을 지시했다.
<칠레 국경 지대>

[자료: 칠레 정부(Gob.cl), 2026]
고용·투자
카스트 정부의 고용 목표는 현재 9.1%까지 오른 실업률을 2030년까지 6%로 낮추는 것으로, 이는 최소 30만 개의 일자리 회복을 의미한다. 정부는 94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4명 중 1명이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며, 국가가 40개월 연속 8% 이상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며, 투자 활성화를 통해 고용 회복을 이루고자 한다.
<2026년 남미 실업률 순위>

[자료: Emol, 2026]
투자 활성화는 환경부 장관이 주재하고 경제부, 농업부, 에너지부 등이 참여하는 장관 위원회가 주도한다. 위원회는 환경영향평가(SEIA)를 통과하고도 이의신청에 묶여있던 프로젝트들을 심의·해소하며, 일일 모니터링 플랫폼을 가동하고 분야별 인허가 신속화를 추진한다. 위원회는 카스트 대통령 취임 후 3개월 내 이미 6차례 회의를 거쳐 약 7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정상화했다. 여기에는 남부 고속도로(Carretera Austral) 확장 프로젝트, 산티아고 지하철 7·8·9호선 지속 사업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주요 전략 산업과 미래 기술 육성책을 분야별로 제시했다. 중소 광업 부문에서는 500헥타르 면적 제한 등 일부 규제를 철폐하고 광업권 취득 절차를 간소화해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자 하며, 에너지 부문에서는 전력 요금 체계를 개편하고 전기차 보급과 그린수소 등 신기술 도입을 가속할 방침이다. 농업 부문 역시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대규모 관개 시설 투자로 물 안보를 보장하고자 한다. 나아가 기술 소비를 넘어 차세대 산업을 직접 일으킬 수 있도록 데이터센터 등 핵심 인프라 구축과 전문인력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보건·주거
카스트 정부는 민간 부문의 역량을 적극 활용해 한정된 자원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건·주거 정책을 펼치고 있다. 보건 분야에서는 과도한 진료 대기를 해소하고자 국민건강보험기금(Fonasa)을 통해 민간 병원 진료 정원 4800개 이상을 확보하는 공공·민간 상호보완 체계를 가동했다. 주거 분야에서도 중산층을 위한 주택 구입 보조금을 신설하고 국유지를 민간 개발용으로 이전하는 등 민간 주도의 주택 공급을 꾀하고 있다.
특히 주거 정책은 민간 투자를 통한 건설 경기 회복에 초점을 둔다. 칠레 건설업은 미분양 신규 주택이 10만 채를 넘고 수년간 약 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공공정책의 전환을 요구해 왔다. 이에 정부는 신규 주택 판매에 대한 12개월간 한시적 부가세(IVA) 면제를 도입해 미분양과 주택 부족 문제에 동시 대응하고자 한다.
가족·사회
산업 외에 사회·민생 대책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먼저 취약계층 아동 대상으로 1인당 월 3만 페소(약 30달러)를 지원해 가계 부담을 직접 덜고, 교내 폭력에 대응하는 등 안전한 교육 환경을 구축하고자 한다. 저출생 전담 기구를 신설해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며, 여성의 보육 부담을 덜기 위해 단계적으로 보편적 영아 보육(Sala Cuna Universal) 법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1993년~2025년 칠레 출생률 추이>

[자료: 칠레 통계청(INE), 2026]
경제 활력과 민생 안정을 함께 겨냥한 정책도 제시됐다. 카스트 정부는 기업의 재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법인세율을 현행 27%에서 2029년까지 23%로 단계적으로 인하할 방침이며, 이 밖에 자본이득세 폐지, 자본 회귀에 대한 한시적 저율 과세 적용, 기부금 세제 50% 감면 등도 제시했다. 노동자에 대해서는 서민의 구매력 회복을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정부는 당초 546,546페소를 제안했으나, 의회 논의를 거쳐 553,553페소로 가결됐으며 2026년 5월 1일부로 소급 적용된다. 향후 소비자물가지수(IPC)를 반영해 2027년 1월 2차 인상이 예정돼 있다.
국정 운영 개편
카스트 정부는 국정 운영 자체의 개편에도 나섰다. 우선 내무부(Ministerio del Interior)와 정부 대변인·공보부(Ministerio Secretaría General de Gobierno)를 통합하고, 부처 효율화를 위한 전문가 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3월부터 1000명 이상의 감사 인력이 AI를 활용해 500개 이상 공공기관의 지출을 점검하는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해 공공 부문의 부패를 적발하고 예산 집행의 효율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실제 점검 과정에서 부당 급식 대금 지급, 정당한 사유 없이 지연된 중소기업 대상 대금 등 이슈가 드러났으며, 정부는 이를 토대로 내부 감사 기구의 권한과 예산을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약 8년간 의회에 계류돼 있던 ‘투명성 법(Ley de Transparencia 2.0)’을 재추진해 공공 정보 접근권을 강화하고자 한다.
종합 평가
카스트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에서 제시된 정책들은 칠레의 국가 운영 방식을 재편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정책 대부분은 민간의 역량을 끌어내는 ‘실용적 조력자’로서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전 분야에 걸친 인허가 및 규제 간소화 기조는 국가가 직접 투자를 주도하기보다 민간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둔다. 사회 정책에서도 이러한 실용주의가 두드러진다. 공공 의료의 적체를 민간 병원의 정원 확보로 해소하려는 방식은 공공과 민간을 아울러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질서 없이는 자유도 없다(sin orden, no hay libertad)’라는 카스트의 통치 원칙 또한 국정연설 전반을 관통한다. 치안 강화, 불법 이민 통제 등 안보 정책은 투자 유치와 관광 활성화를 위한 필수 인프라이자 안전한 사회가 경제적 번영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소유자의 나라(país de propietarios)’를 지향하는 주거 정책은 중산층을 강화하고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장기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비판 및 한계
카스트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안보부터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칠레가 직면한 문제와 그 해결책을 담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구현될지는 여러 변수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입법 과정에 있다. 카스트 정부가 제시한 정책 다수는 의회 통과를 전제로 하는데, 핵심 입법 수단인 ‘국가 재건 계획’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 심의 전망은 불확실하다. 상원은 여야 의석이 팽팽해 정부가 독자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고 평가되는 만큼, 정책 시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적·외교적 한계도 있다. 카스트는 이민자의 귀환을 강조했으나, 정작 그 성패를 좌우할 외교 리스크는 국정연설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칠레가 불법 체류자를 강제 추방하거나 자발적 귀환을 유도하려 해도, 이민자의 본국 정부와의 외교적 합의나 협조가 없으면 항공기 진입 등 실무적인 송환 절차를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울 전망이다.
경제·재정 여건 부담도 존재한다. 2025년 회계연도는 당초 목표치(1.6%)의 두 배를 넘는 GDP 대비 3.7%의 적자로 마감됐다. 카스트 정부는 이에 대응해 출범 초기부터 대규모 공공 지출 삭감을 지시했으나, 이는 결국 정책 시행에 필요한 예산의 잠식을 동반한다. 정부는 부채에 기대지 않고 효율적 자원 배분으로 재정을 건전화하겠다는 방침이나, 법인세 인하와 같은 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재정 건전성까지 회복하겠다는 구상이 실제로 지속 가능할지에는 의문이 따른다.
무엇보다, 개별 정책들에 대해 야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된 비판은 실효성이다. 저출생 해결책으로 제시된 취약계층 자녀 1인당 약 30달러의 지원을 두고 하이메 마냐리치 전 보건장관은 그 취지는 인정하면서도, 이 정도 지원으로 위기를 돌리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최저임금 또한 카스트 정부의 당초 인상액이 의회에서 충분치 않다고 지적되어 결국 상향된 점은 정부안과 현실의 기대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비판들은 정책의 방향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실행의 깊이와 속도를 겨냥한 것으로, 구체적 성과는 앞으로의 입법 협상과 집행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마무리
카스트 정부는 임기 초기부터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보수적 실용주의 방향을 택하고 있다. 이는 우리 기업에 구체적인 진출 기회를 시사한다. 우선 정부가 민간 자본과 역량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선호하는 만큼, 민관 협력(PPP) 및 양허 사업 참여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허가 완화로 행정 지연이 줄면서 광업·에너지·건설 등 주요 분야의 민간 프로젝트 진입 여건이 개선되고,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인프라 분야에서도 협력 수요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도입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치안 강화에는 스마트 가로등, 차량 번호판 인식 게이트, AI 등 첨단 감시 기술이 동원되고, 국정 운영에는 감사 인력이 AI의 지원을 받아 공공기관의 지출을 점검한다. 국경 통제에는 드론이 활용되며, 산업 정책에서는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개발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이는 정부가 지능정보기술을 전 분야를 아우르는 필수 도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당 분야에 강점을 지닌 우리 기업은 이번 국정연설을 길잡이 삼아 선제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자료: 칠레 정부(Gob.cl), 내무부(Ministerio del Interior), 대통령실 보도국(Prensa Presidencia), 통계청(INE), La Tercera, Emol, BioBioChile, Diario Financiero, Ex-Ante, El Mostrador 등 현지 언론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