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철 대표, NHN Service Technology(Dalian)
choi_youchul@nhn-st.com
최근 중국 제조업은 또 한 번의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제조 혁신의 중심이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공장 구축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산성과 의사결정의 고도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선회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비약적인 발전은, 오랜 기간 인간의 경험과 숙련도에 의존해 온 전통적 제조 업무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중국 정부 역시 '신형 공업화(新型工业化)'와 'AI Plus(人工智能+)' 정책을 앞세워 제조업과 AI의 융합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형 제조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까지 AI 도입을 미래 경쟁력 확보의 핵심 전략으로 명확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현지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들에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이 AI 도입을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ChatGPT와 같은 범용 생성형 AI 서비스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는 문서 작성이나 정보 검색 등 일반 사무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AI가 지니는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업무 보조를 넘어선다. 기업 내부에 파편화되어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데이터 기반의 체계적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제조 현장의 업무는 제품 정보, 생산 계획, 구매, 품질 관리, 협력업체 관리 등 다차원적인 데이터가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현장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정제하여 활용할 수 있을 때, AI는 단순한 기술 도구를 넘어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핵심 자산이 된다.
Case Study : AI는 제조 현장의 '경험'을 어떻게 자산으로 바꾸는가
최근 필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생산 거점을 운영하는 글로벌 OEM 제조기업(A사)의 'AI 기반 제조 혁신 프로젝트'를 면밀히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
A사는 글로벌 브랜드의 다품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매 시즌 새로운 제품 개발과 생산 준비를 기민하게 반복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고객사로부터 접수되는 제품 기술 사양서에는 설계도, 자재명세서(BOM), 공정 요구사항, 품질 기준 등 방대한 제조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구매·생산·품질 등 유관 부서들이 이를 기반으로 동시다발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정밀 검토하며 발견한 가장 큰 문제는 AI 기술의 부재 보다는, 기업 내부에는 이미 오랜 기간 축적된 제조 노하우와 숙련된 경험이 풍부하게 존재했으나, 이 핵심 자산들이 철저히 담당자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경험 많은 인력이 있을 때에는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만, 인력 교체나 해외 생산기지 확대가 이루어질 경우 동일한 수준의 의사결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해질수록 담당자 개인의 경험만으로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
이에 프로젝트에서는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제조 경험을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제안하였다.
첫 번째는 '제품 기술문서의 AI 분석'이다.
AI는 고객사가 제공하는 제품 기술사양서를 자동으로 분석하여 자재명세(BOM)를 추출하고, 주요 공정 요구사항과 품질 관리 포인트를 정리하며, 과거 생산 이력과 비교하여 예상되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시하도록 설계하였다. 이를 통해 담당자는 반복적인 문서 검토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두 번째는 'AI 기반 구매 의사결정 고도화'이다.
제조기업의 원가 경쟁력은 구매 경쟁력과 직결된다. 프로젝트에서는 AI가 과거 구매 실적, 공급업체 평가, 납기 이력, 품질 데이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적합한 구매 대안을 추천하도록 설계하였다. AI는 단순히 최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 안정성과 공급 리스크까지 함께 입체적으로 고려함으로써 보다 균형 잡힌 구매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생산계획의 지능화'이다.
기존 생산계획은 설비 운영 상황이나 작업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AI는 생산능력, 재고 수준, 자재 입고 일정, 고객 납기 등을 동시에 분석하여 최적의 생산계획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 따른 연쇄 영향을 신속히 파악하고, 납기 준수율과 설비 운영 효율(OEE)을 극대화하는 기반이 된다.
네 번째는 AI 기반 품질관리이다.
비전 AI를 활용한 외관검사는 이미 다양한 제조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프로젝트에서는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 불량 발생 패턴을 분석하고 원인을 추적하는 기능까지 포함하였다. 품질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될수록 AI는 반복되는 불량 유형을 학습하여 예방 중심의 품질관리 체계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특정 업무의 자동화가 아니라, 기업 내부에 축적된 경험을 데이터와 AI를 통해 조직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제조업에서 중요한 것은 'ChatGPT'가 아니라 '기업 전용 AI'
최근 많은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이 ChatGPT를 사용하면 AI를 도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제조기업의 AI 활용은 일반적인 사무업무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제조기업이 다루는 데이터는 제품 설계도, 고유 생산 기술, 정밀 공정 조건, 원가 구조, 협력사 정보 등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보안 레이어이자 핵심 자산이다. 이러한 로우(Raw) 데이터는 외부 범용 서비스에 단순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보안상으로도 리스크가 존재한다.
진정한 제조 AI는 ERP, MES, PLM, SCM, WMS 등 기업의 기존 레거시 시스템과 연계되어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업 내부의 표준과 업무 프로세스를 학습하여 의사결정을 지원해야 한다. 다시 말해, 범용 AI를 사용하는 것보다 기업의 업무 환경에 맞게 구축된 '기업 전용 AI(Enterprise AI)'가 제조업에서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향후 제조기업의 경쟁력은 누가 더 뛰어난 AI를 사용하는가 보다, 누가 더 많은 제조 경험과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축적했는가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준비해야 할 세 가지
중국 제조업의 가파른 AI 전환 속도를 감안할 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역시 보다 구조적이고 정교한 실행 전략을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
첫째, AI 컴퍼니 이전에 '데이터 컴퍼니'가 우선이다.
많은 기업들이 AI 도입 자체를 목표로 삼지만, 정작 생산·구매·품질 데이터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AI의 성능은 결국 데이터의 품질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데이터 표준화와 업무 프로세스 정비가 AI 도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반복적이고 경험 의존도가 높은 업무부터 AI를 적용해야 한다.
모든 업무를 한 번에 AI로 전환하기보다는 제품 기술문서 분석, 구매 의사결정 지원, 생산계획 수립, 품질 데이터 분석 등 효과를 정량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셋째, AI를 시스템 도입이 아닌 '조직 역량의 내재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기업의 지식과 경험을 조직 전체가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새로운 업무 방식이다. 따라서 IT 부서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생산, 구매, 품질, 영업 등 현업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전사적 혁신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맺음말
필자가 최근 중국에서 여러 제조기업과 협업하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많은 기업이 AI에 관심은 높지만 실제로는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명확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는, 현장에서 실무리더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만, 실제 업무 프로세스와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는 의견을 자주 듣게 된다.
제조업은 오랫동안 설비와 생산기술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여기에 더해 축적된 제조 경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이를 AI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사결정 체계로 발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중국은 이미 AI를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과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도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AI는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현장의 경험과 전문성을 디지털 자산으로 축적하고, 이를 조직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AI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이 보유한 경험과 데이터를 어떻게 AI가 활용할 수 있는 경쟁력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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