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어와의 납품 협상 과정에서 제품책임보험(Produkthaftpflichtversicherung) 가입 증명을 요구받고 당황하는 한국 기업들이 적지 않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생소한 요청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독일 및 EU의 제품책임 법제 구조를 고려하면 이는 바이어가 부담하는 법적 리스크와 직결된 상업 관행이다.

독일에서는 제품 결함으로 인해 사망, 신체·건강 침해 또는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가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책임을 질 수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유럽경제지역(EEA) 역외에서 제품을 수입하는 경우, 독일 수입업자는 독일 제품책임법상 제조업자에 준하는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즉, 독일 바이어는 단순 구매자나 유통업자에 그치지 않고, 제품 결함 사고 발생 시 피해자로부터 직접 배상 청구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EU의 규제 환경 변화는 바이어들의 리스크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EU는 기존 제품책임 체계를 전면 개편한 신규 제품책임지침(Richtlinie (EU) 2024/2853)을 채택하여, 소프트웨어와 AI 시스템 등 현대 제품의 특성을 반영하고 피해자의 증거 확보를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 중이다. 아울러 비식품 소비자 제품의 안전 의무를 대폭 강화한 일반제품안전규정(GPSR, Verordnung (EU) 2023/988) 역시 전면 적용되고 있어, 독일 바이어가 직면한 소송 및 배상책임 리스크는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현행 독일 제품책임법(ProdHaftG)의 기본 원칙

결국 독일 바이어가 한국 기업에 요구하는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은, 이처럼 격변하는 유럽의 규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미는 최소한의 방어 기제인 셈이다. 독일 바이어가 체감하는 법적 리스크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독일 제품책임의 근간이 되는 독일 제품책임법(Produkthaftungsgesetz, 이하 ProdHaftG)의 독특한 법적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 이 법은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사망, 신체 또는 건강 침해가 발생하거나 제3자의 재산에 손해가 생긴 경우, 제조업자가 고의나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책임을 지는 '무과실책임(Gefährdungshaftung)'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책임 원칙 하에서 바이어의 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은 법이 규정하는 '제조업자'의 범위가 실제 제조 활동을 넘어 유통 주체까지 포괄한다는 점이다. ProdHaftG 제4조는 바로 이 책임의 주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수출기업이 바이어의 요구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 조항에 따르면 법적 책임을 지는 주체는 공장에서 제품을 직접 만든 물리적 제조업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나 상표를 부착해 자신을 제조업자로 표시한 이른바 '준제조업자(Quasi-Hersteller)'까지 포함한다.

나아가 한국 공급업체와 독일 바이어 간의 거래 구조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역내 수입업자'에 대한 법적 의무 규정이다. 동 조항은 유럽경제지역(EEA) 역외에서 제품을 수입하여 유럽 시장에 유통시키는 사업자에게 제조업자와 동일한 수준의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 따라서 한국산 제품을 독일로 들여오는 독일 바이어는 현지 법상 단순한 유통업자가 아니라, 결함 사고 발생 시 피해자로부터 직접 배상 청구를 받는 '1차적 책임자'의 지위를 갖게 된다. 실제 결함의 원인이 한국 제조사의 설계나 제조상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독일 바이어 입장에서는 현지의 복잡한 법적 분쟁과 배상 리스크를 전면에서 먼저 감당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법적 구조 때문에 독일 바이어는 한국 공급업체의 제품책임보험 가입 및 증명 여부를 매우 까다롭게 확인한다. 바이어가 현지 피해자에게 우선 배상한 후 한국 제조사에 구상권(Rückgriff)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때 한국 제조사가 적절한 해외 생산물배상책임 보험(PL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보험의 담보 지역에 독일·EU가 누락되어 있다면 바이어의 구상권 행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독일 ProdHaftG상 주요 책임 주체〉

책임 주체

법적 근거

적용 요건

책임 성격

제조업자(Hersteller)

제품책임법 제4조 제1항

최종 제품, 원재료 또는 부품을 직접 제조

무과실 책임

준제조업자(Quasi-Hersteller)

제품책임법 제4조 제1항

타사 제품에 자사 이름·상표·식별표지 부착

제조업자와 동일

수입업자(Importeur)

제품책임법 제4조 제2항

EEA 역외 제품을 EEA 시장에 수입·유통

제조업자와 동일

공급업자(Lieferant)

제품책임법 제4조 제3항

제조업자 또는 수입업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

보조적 책임

[자료: 독일 제품책임법]

EU 신규 제품책임지침(Directive (EU) 2024/2853)과 책임 범위의 확대

현행법상으로도 독일 바이어가 지는 배상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유럽 시장의 규제 환경 변화는 이들의 법적 리스크를 한층 더 가중시킬 전망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최근 전면 개편된 EU 신규 제품책임지침(Product Liability Directive, 이하 PLD)이다. 이 지침은 1985년 제정된 이후 약 40년 동안 유지되어 온 기존 체계를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재정비한 법률 체계다.

본 지침은 이미 지난 2024년 12월 8일 발효되었으며, 독일을 포함한 모든 EU 회원국은 올해 말인 2026년 12월 9일까지 이를 자국 국내법으로 이행 완료해야 한다. 이에 따라 2026년 12월 9일 이후 유럽 시장에 출시되거나 사용이 개시되는 제품에는 대폭 강화된 신규 규정이 전면 적용될 예정이다. 독일 바이어들이 벌써부터 공급망 내 리스크 관리를 엄격히 강화하며 한국 기업에 명확한 담보를 요구하는 이유도 바로 이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규 지침이 가져올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제품의 정의와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기존 제도는 주로 유형의 물리적 제품만을 대상으로 설계되었으나, 신규 지침은 소프트웨어(SW), 디지털 제조 파일, 그리고 AI 시스템 등 디지털 요소가 결합된 현대적 제품을 명확히 포함한다. 이에 따라 전기·전자, 기계류, 산업용 장비뿐만 아니라 스마트 기기나 AI 기능 탑재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제품 자체의 하드웨어적 결함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디지털 기능 오류, 제품과 연동된 서비스가 전체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전방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둘째, 배상책임의 한도가 사라지고 소액 손해 배상이 가능해진다. 현행 독일 제품책임법(ProdHaftG)은 대형 인명 사고 발생 시 제조업자의 인적 손해 배상 책임을 최대 8,500만 유로로 제한해 두고 있었으나, 신규 지침에 따라 이 책임 상한선이 전면 폐지된다. 아울러 피해자가 물적 손해를 청구할 때 500유로까지는 스스로 부담해야 했던 소비자 자기부담금(Selbstbeteiligung) 조항 역시 삭제되어, 향후 바이어와 제조사가 직면할 소송의 빈도와 배상 규모가 대폭 커질 전망이다.

셋째, 피해자의 증거 확보가 한층 용이해진다. 복잡한 하드웨어나 AI 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여, 신규 지침은 일정 요건 충족 시 법원이 제조업자에게 관련 내부 증거를 강제로 공개(Disclosure)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는 유럽 역외에 위치한 한국 제조사 역시 현지 분쟁 발생 시 설계 도면, 소스 코드, 시험 성적서, 품질관리 기록, 리스크 평가 자료 등의 민감한 내부 문서를 법원에 고스란히 제출해야 하는 법적 압박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규격에 맞춰 납품하는 단계를 넘어, 현지 규제 환경에 부합하는 사후 관리 역량을 함께 입증할 필요가 있다. 개발 단계에서의 안전성 검토 문서, 기술문서(Technical File), 품질관리 기록을 철저히 관리하고 리콜 대응 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특히 현재 협상 중이거나 올해 말 이후 실제 납품·출시가 이루어질 중장기 물량은 전부 신규 지침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 된다. 국내 기업들은 지금 체결하는 장기 공급 계약, 프레임 계약(Rahmenvertrag), OEM·ODM 계약을 검토할 때, 향후 바이어가 요구할 강화된 제품책임 조항과 문서 제출 의무를 계약서 조항에 어떻게 유리하게 분배할 것인지 선제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신규 제품책임지침(PLD) 핵심 변화>

구분

현행 제도 (기존 체계)

신규 지침 (2026.12.9. 전면 적용)

제품 정의 및 범위

주로 유형의 물리적 제품에 한정

소프트웨어(SW), 디지털 제조 파일, AI 시스템까지 포함

인적 손해 배상 한도

제조업자 배상 책임 상한선 설정

(독일법 기준 최대 8,500만 유로)

배상 책임 상한선 전면 폐지

물적 손해 자기부담금

소비자가 물적 손해 청구 시 500유로의 자기부담금 존재

소비자 자기부담금 조항 삭제

입증 책임 및 증거 확보

소비자가 제품 결함과 손해의 인과관계를 전적으로 입증해야 함

법원의 내부 증거 강제 공개(Disclosure) 명령권 부여

[자료: EU 신규 제품책임지침]

EU 일반제품안전규정(GPSR)과 경제주체별 제품안전 의무

신규 지침이 사고 발생 이후의 배상 책임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면, 제품의 유통 전 단계에서 바이어가 준수해야 할 행정적 안전 의무 역시 한층 더 엄격해졌다. 이를 규율하는 핵심 제도가 바로 지난 2024년 12월 13일부터 전면 적용되고 있는 EU 일반제품안전규정(General Product Safety Regulation, 이하 GPSR)이다. GPSR은 주로 비식품 소비자 제품의 전반적인 안전을 통제하며, 제조업자뿐만 아니라 수입업자, 유통업자,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등 공급망 내의 모든 경제 주체에게 구체적인 법적 의무를 부과한다.

경우에 따라 공식 대리인이나 풀필먼트 서비스 제공자가 제품안전 관련 의무 구조에 포함될 수 있으나, 한국 기업과 독일 바이어 간 직접 납품 구조에서는 독일 바이어가 수입업자로서 핵심 의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독일 바이어가 한국 공급업체에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 기술문서, 시험성적서, CE 관련 문서, 리콜 대응 절차 등을 요구하는 것은 독일 내 법적 책임과 행정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다만 EU 일반제품안전규정은 모든 산업재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은 아니다. 제품이 소비자 제품인지, B2B 전용 제품인지, 다른 EU 조화법령의 적용을 받는 제품인지에 따라 적용 범위와 의무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수출 전 제품군별 적용 법령을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제품책임보험(Produkthaftpflichtversicherung)의 구조와 보장 범위

이러한 규제로 인해 독일 바이어들은 공급망 관리의 일환으로서 공급업체의 제품책임보험 가입 여부를 명확히 검증한다. 제품책임보험은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제3자에게 인적 손해나 물적 손해, 또는 그로 인한 파생 손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법적 배상책임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독일 현지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 활동 중 발생하는 사고를 담보하는 사업활동배상책임보험(Betriebshaftpflichtversicherung, BHV)과 제품책임보험(Produkt-Haftpflicht)이 하나의 패키지 형태로 결합되어 운영되는 경우가 많으며, 제품의 특성에 따라 별도의 특약이나 확장 담보가 추가된다.

제품책임보험은 보장 범위에 따라 크게 일반 보험과 확장형 보험으로 나뉜다. 우선 일반 제품책임보험은 통상적인 인적 손해와 물적 손해, 그리고 그에 따른 직접적인 파생 손해를 중심으로 보장한다. 반면 확장 제품책임보험(Erweiterte Produkthaftpflichtversicherung)은 납품한 제품이 바이어 측의 다른 제품에 결합·혼합·가공되거나 생산 공정에 투입된 이후 발생하는 특정 순수 재산 손해, 즉 ‘결함 제품으로 인한 순수 재산상 손해(Produktvermögensschäden)’까지 보장 대상에 포함한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완제품 소비재를 독일에 수출하는 경우에는 일반 제품책임보험이 기본 검토 대상이 된다. 반면 한국 기업이 독일 제조사의 최종 완제품에 탑재되는 부품, 소재, 모듈, 혹은 기계 구성품을 납품하는 B2B 거래의 경우에는 확장 제품책임보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결함 부품 하나로 인해 독일 바이어의 생산 라인이 전면 중단되거나(생산중단 손해), 이미 조립된 완제품을 전량 폐기 및 재작업해야 하거나, 혹은 완제품 시장 유통 후 리콜 비용(Rückrufkosten)이 발생하는 등의 연쇄적인 순수 재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책임보험이 독일 내에서 모든 기업에 강제되는 '법정 의무 보험'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으로 수출을 위한 필수적인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일반 제품책임보험과 확장 제품책임보험의 비교>

구분

일반 제품책임보험

확장 제품책임보험

핵심 보장 범위

통상적인 인적 손해, 즉 사망·신체 및 건강 침해에 따른 손해와 물적 손해를 중심으로 보장

일반 제품책임보험의 보장 범위를 포함하면서, 결함 부품·소재가 완제품에 결합·가공된 뒤 발생하는 제품 관련 순수 재산상 손해(Produktvermögensschäden)까지 담보 범위를 확대

주요 보험 대상

독일 시장에 직접 유통되는 완제품 소비재를 수출하는 기업

독일 제조사 또는 바이어의 최종 완제품에 탑재되는 부품, 소재, 모듈, 기계 구성품 등을 납품하는 B2B 공급기업

대표적 거래 구조

한국 기업이 자체 완제품을 독일 수입업자 또는 유통업자에게 공급하고, 해당 제품이 독일 시장에서 판매되는 구조

한국 기업의 부품·소재·모듈이 독일 바이어의 생산공정에 투입되거나 최종 제품의 일부로 결합되는 구조

실무 리스크 예시

수출한 완제품 소비재의 결함으로 인해 현지 소비자가 부상을 입거나, 타인 소유의 재산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결함 부품으로 인해 바이어의 생산라인이 중단되거나, 이미 조립된 완제품을 폐기·재작업해야 하는 경우

[자료: FMP Fuchs & Co. KG]

독일 바이어가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을 요구하는 이유

이러한 연쇄적 리스크로 인해 독일 바이어들은 납품 계약, 벤더 등록, 품질 심사, 그리고 프레임 계약(Rahmenvertrag) 체결 시 공급업체의 영문 혹은 독문 보험 가입 증명서(Certificate of Insurance) 제출을 계약의 필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곤 한다. 바이어들이 이처럼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은, 강화된 현지 규제 하에서 자신들의 재무적 건전성과 법적 방어권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인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바이어가 보험 증명 제출을 필수로 요구하는 배경은 크게 세 가지 실무적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독일 바이어 자신이 최종적인 법적 책임을 고스란히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산 제품을 EEA(유럽경제지역) 역외에서 수입해 독일 및 유럽 시장에 유통하는 독일 바이어는 독일 제품책임법(ProdHaftG)상 '역내 수입업자'로서 물리적 제조업자와 동일한 무과실책임을 지게 된다. 현지 피해자나 소비자들은 시차가 있고 소통이 어려운 한국 제조사를 상대로 복잡한 해외 소송을 제기하는 대신, 접근이 쉬운 독일 내 수입업자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을 택하므로 바이어가 느끼는 법적 압박은 매우 크다.

둘째, 사고 발생 후 구상권(Rückgriff) 행사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독일 바이어가 현지 피해자에게 우선 배상한 뒤, 실제 결함 원인을 제공한 한국 제조사에 비용을 청구하려면 한국 제조사가 이를 감당할 재정적 능력을 갖추고 있거나 보험을 통해 배상 재원을 확실히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해외 PL 보험이 없다면 독일 바이어는 막대한 리스크를 온전히 떠안은 채 한국 기업을 상대로 지난한 국제 소송과 집행 문제를 겪어야 하므로, 보험 증명서를 통해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바이어 내부의 공급망 리스크 관리 체계와 글로벌 계약 표준 조건 때문이다. 독일 기업들은 벤더 관리 과정에서 품질인증, 기술문서, 시험성적서, 리콜 대응 체계와 함께 제품책임보험 가입 여부를 공급업체 심사의 중요 지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즉,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은 해당 공급업체가 유럽 시장의 리스크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유사시 실질적인 사고 대응 능력을 갖춘 준비된 파트너임을 증명하는 객관적 척도로 활용된다.

특히 자동차, 기계, 전기·전자, 의료기기, 식품 접촉제품, 배터리, 화학제품, 건축자재 등 안전 리스크가 큰 분야에서는 보험 가입 여부가 거래 성사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에서는 공급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일반적으로 품질보증협정(QAA, Quality Assurance Agreement)을 체결해야 하며, 이 협정에는 엄격한 품질 표준과 법적 요구사항이 포함된다. 이 중에서도 제품책임보험 가입 조항은 제품 결함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리콜 비용이나 연쇄 손해배상 리스크를 담보하는 핵심 사안이다. 만약 바이어가 요구하는 최소 보장 금액과 특약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최종 납품 계약 자체가 무산될 정도로 결정적인 거래 조건이 된다. 실제로 KOTRA 함부르크 무역관이 인터뷰한 독일의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 B사 관계자는 “자동차 공급망 내에서 제품책임(PL) 보험은 계약을 위한 사실상의 필수 전제 조건이며, 적절한 보험 가입 증명 없이는 구체적인 견적(Offer)이나 협상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안

독일 바이어가 요구하는 제품책임보험 검증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유럽 규제 격변기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재무적 방어 기제다. 따라서 우리 수출 기업들은 바이어의 이러한 요구를 까다로운 무역 장벽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현지 공급망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받아들이고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실무적으로 한국 공급업체가 취해야 할 핵심 대응 방안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구체화할 수 있다.

1) 해외 PL 보험 가입 가능성 확인

한국 기업이 독일 바이어의 요구에 대응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필수적인 방법은, 국내 손해보험사 또는 보험 중개사를 통해 독일 및 EU 지역을 담보하는 해외 생산물배상책임보험, 즉 해외 PL 보험(Product Liability Insurance) 가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수출 대상 국가, 제품군, 연간 매출액, 위험도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해외 PL 보험 및 기업종합배상책임보험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는 이미 PL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독일 바이어가 제시한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실제 보험증권(Policy)에 빈틈없이 반영되어 있는지 여부다. 우선 담보 지역(Territorial Limits)이 독일 또는 EU 전역을 명확히 포함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글로벌 유통망을 가진 바이어라면 전 세계(Worldwide) 담보 여부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바이어가 계약서나 품질보증협정(QAA)을 통해 요구한 사고당/연간 총보상한도(Limit of Liability)의 최소 금액을 충족하는지, 그리고 인적·물적 손해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파생 손해까지 보장 범위에 포함되는지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수출 제품의 범위와 구체적인 거래 구조 역시 핵심 검토 대상이다. 우선 독일에 선적되는 실제 품목이 보험 증권상의 담보 제품 리스트에 누락 없이 명확히 등재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거래 방식이 자체 브랜드 수출인지, OEM·ODM 구조인지, 혹은 부품·소재 납품인지에 따라 각 거래 구조에 부합하는 별도의 특약(확장 담보 등)을 매칭하여 가입해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 독일 제조사의 완제품에 편입되는 부품이나 모듈을 공급하는 B2B 기업은 결합·혼합·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수 재산 손해를 담보하는 확장 제품책임보험 특약을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기업이 간과하는 면책 조항(Exclusions)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유럽 시장에서 가장 분쟁 소지가 높은 리콜 비용(Rückrufkosten), 제품 교체 비용, 그리고 소프트웨어(SW) 결함 관련 손해 등이 면책 대상에 묶여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면 바이어가 요구하는 리스크 관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해 계약이 결렬될 수 있다.

2) 독일 바이어와 계약 조건을 명확히 협의

제품책임보험은 단순히 가입 증명서를 제출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이어와 체결하는 본 계약서상의 '책임 배분' 조항과 한 몸처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 기본공급계약서(Rahmenvertrag)나 품질보증협정(QAA) 상으로는 리콜 비용이나 바이어의 생산 중단 손해까지 한국 공급업체가 전부 부담하도록 명시되어 있으나, 정작 가입한 국내 보험사 증권에서는 해당 손해들이 면책 조항으로 묶여 있을 경우, 한국 기업은 막대한 배상 비용을 고스란히 독자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따라서 계약 협상 단계에서부터 공급업체가 유지해야 하는 최소 보상한도액은 물론, 보험 담보 지역, 보험의 유효 기간, 특히 계약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 보장을 유지해야 하는 '배상청구 기준일 연장(Run-off)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아울러 최초 보험 증명서(CoI)의 제출 시점, 매년 보험 갱신 시 증명서 재제출 주기, 그리고 사고(Claim) 발생 시 바이어 측에 통지해야 하는 제한 시간 및 절차 등 행정적인 요구 사항도 계약서에 명확히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더불어 실제 제품 결함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사후 대응 절차도 사전에 계약서상에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반영해 두어야 한다. 임의적 혹은 강제적 리콜 발생 시 비용 분담 기준, 결함 원인 조사를 위해 바이어에게 제공할 기술 문서와 품질 자료의 공개 범위, 그리고 바이어가 현지 피해자에게 우선 배상한 뒤 한국 제조사에 구상권(Rückgriff)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요건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바이어의 영업 손실(Loss of Profit)이나 간접 손해(Consequential Damages), 생산 중단 손해와 같은 항목들은 계약상 책임 범위와 보험사의 일반 담보 범위가 가장 흔하게 어긋나는 영역이므로 반드시 별도로 대조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외 PL 보험료는 제품의 공급 단가(Price)와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가 요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이어가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보상 한도액이나 확장 담보 특약을 요구할 경우, 그로 인해 상승하는 보험료 비용을 최종 단가 협상 단계에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3) 제품 품질 및 문서 관리 체계 정비

제품책임보험은 사고 발생 후의 재무적 손실을 완화하는 사후적 구제 수단일 뿐, 기업의 법적 제품책임 자체를 면제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따라서 확실한 보험 가입과 별개로 제품의 본질적인 안전성을 확보하고, 이를 증명할 품질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독일 및 EU 시장에서는 제품이 안전하게 설계·제조·표시되었는지, 유효한 시험과 위험성 평가를 거쳤는지, 그리고 사용자가 제품을 오인 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주의사항과 정보가 제공되었는지 여부가 향후 제품책임 분쟁 시 법적 책임의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판단 요소가 된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은 유럽 시장 진출 전, 제품 사양서를 비롯하여 기술문서(Technical File), 위험성 평가서, 공인 시험성적서, 인증서, 그리고 CE 적합성 선언서(DoC) 등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기록화해야 한다. 또한 사용설명서(Manual)와 제품상의 경고 표지(Warning Labels)가 수출 대상국의 언어(독일의 경우 독문) 및 법적 규정에 맞게 정확히 작성되었는지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유사시 특정 불량 품목만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도록 생산 이력 및 로트(Lot)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품질관리 기록, 시정조치 요구서(CAR), 그리고 리콜을 포함한 사고 대응 매뉴얼을 촘촘히 정비해 두어야 한다.

특히 2026년 말 전면 시행을 앞둔 EU 신규 제품책임지침(PLD) 하에서는 복잡한 기술 제품에 대한 법원의 증거 공개(Disclosure) 명령과 피해자의 입증부담 완화 규정이 대폭 강화된다. 이는 제품 결함 분쟁이 발발했을 때, 제조사가 "우리 제품은 설계·제조·표시 전 과정에서 안전하게 관리되었으며, 합리적인 품질 관리 절차를 완벽히 통과했다"라는 점을 객관적인 '문서'로 즉각 증명해야 함을 뜻한다. 만약 평소에 이러한 문서적 방어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실제 제품에 결함이 없었더라도 분쟁 대응 과정에서 입증 실패로 인해 패소로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전기·전자제품, 기계류, 소프트웨어(SW) 내장 제품, 그리고 AI 기능이 포함된 첨단 제품의 경우 제품 출시 이후의 사후 관리(Post-market Surveillance)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규 규제 환경에서는 제품 출하 후 진행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오류, 보안 취약점 방치, 안전경고 업데이트 누락, 그리고 시장에서 발견된 결함에 대한 조치 지연 등도 모두 '제품 결함'의 범위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 독일 바이어의 제품책임보험 요구 대응 체크포인트>


[자료: KOTRA 함부르크무역관 자체 제작]

시사점

독일 바이어가 한국 공급업체에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EU 제품책임 법제하에서 수입업자가 지게 되는 법적 부담을 완화하고 양사 간의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차원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제품책임법상 EEA(유럽경제지역) 역외 제품을 수입하는 사업자는 제조업자에 준하는 엄격한 책임을 부담하게 되며, 최근 EU의 신규 제품책임지침(PLD)과 일반제품안전규정(GPSR) 시행으로 인해 제품 안전 및 배상책임 리스크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은 독일 및 EU 시장에서 납품 계약, 벤더 등록, 품질 심사, 프레임 계약(Rahmenvertrag) 체결 전 과정에서 통과해야 하는 필수적인 확인 서류로 자리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제품책임보험 가입 증명이 독일·EU 통관을 위한 '법정 필수 요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업적 관행으로서 현지 공급망 진입을 결정짓는 필수 관문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철저한 품질 보증과 완벽한 문서화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리스크 관리 대책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자료원: 독일 제품책임법(ProdHaftG §1·§4·§10·§11), EU 신규 제품책임지침(Richtlinie (EU) 2024/2853), EU 일반제품안전규정(Verordnung (EU) 2023/988), 독일 연방법무부, 독일 연방환경, IHK Hannover, IHK München, Nürnberger Versicherung, FMP Fuchs & Co. KG, KOTRA 함부르크무역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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