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메세(Messe Stuttgart)에서 2026년 6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더 배터리 쇼 유럽 2026(The Battery Show Europe 2026)'이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72개국 이상에서 약 1만 7300명이 참관했으며, 1160개 이상의 기업이 전시 부스를 운영했다.
The Battery Show Europe은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및 전기차 공급망 전문 전시회 중 하나로, 배터리 셀 제조사부터 소재·부품·장비 기업, 자동화 솔루션 기업까지 산업 전반의 주요 기업들이 참여하는 행사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배터리 셀보다 제조공정, 자동화, 열관리 소재, 전장부품 등 공급망 전반의 기술이 중심을 이뤘다. 특히 생산설비, 품질관리, 열관리, 배터리 팩 및 전장부품 관련 기업들의 전시 비중이 높게 나타나며 유럽 배터리 산업의 관심이 생산능력 확대에서 제조 효율성과 공급망 경쟁력 강화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유럽 배터리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 발간된 'Battery Atlas 2026'에 따르면 유럽의 배터리 셀 생산능력 전망은 당초 예상치인 2000GWh에서 1190GWh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기업들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토종 셀 제조사들의 투자 지연과 재무적 어려움이 이어지면서 셀 생산능력 확대보다는 정밀 제조기술과 고부가가치 부품 분야로 산업 역량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자료: 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 직접 촬영]
독일 내 셀 제조 현황…제한적인 범용 생산 역량
독일은 다수의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배터리 셀 제조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생산 기반을 갖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아시아 기업들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독일 내 셀 생산은 프리미엄 차량용 특수 셀이나 완성차 기업의 수직계열화 범위 내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르쉐(Porsche)가 인수한 V4SMART다.
V4SMART는 독일 남부 엘방엔(Ellwangen)과 뇌르들링겐(Nördlingen) 공장에서 원통형 리튬이온 셀을 생산하고 있으며, 포르쉐 911 카레라 GTS 하이브리드 등에 적용되는 고출력 부스터 셀을 주력으로 한다. 해당 제품은 6분 이내 80% 충전과 높은 순간 출력을 구현한 특수 목적 배터리로, 일반 전기차용 대량 생산 셀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편 폭스바겐 그룹의 배터리 자회사 PowerCo는 잘츠기터(Salzgitter) 공장을 중심으로 그룹 내 수요 대응을 위한 배터리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유럽 내 배터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독일 내 일부 셀 생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아시아 기업들이 주도하는 대규모 범용 셀 생산 체제를 대체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주요 배터리 셀 제조 프로젝트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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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명 |
V4SMART |
PowerCo Salzgitter |
Northvolt Dre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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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위치 |
엘방엔, 뇌르들링겐 |
잘츠기터 |
독일 북부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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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형태 |
21700 원통형 셀 |
각형 유니파이드 셀 |
파우치형·각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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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목표 |
고출력 특수 셀 양산 |
연간 20~40GWh |
연간 60GW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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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특징 |
하이브리드 스포츠카용 부스터 셀 |
그룹 내부 수요 대응 |
정부 지원 기반 프로젝트 |
[자료 : KOTRA 프랑크푸르트 무역관 자체 종합]
전시장을 채운 독일의 강점, 소부장 경쟁력
무역관이 참관한 전시장에서는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유한 정밀기계, 제조공정, 화학소재, 시험평가 분야 기업들의 활발한 전시가 이어졌다. 특히 참가 기업들은 배터리 산업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라기보다 산업용 레이저, 특수화학, 시험·계측 등 기존 주력 사업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배터리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이는 독일 제조업의 강점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이 새로운 산업 분야로 적용·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조공정 분야에서는 ASML의 반도체 EUV 노광장비용 산업용 레이저로 유명한 TRUMPF가 배터리 냉각판과 CCS(Cell Contact System, 배터리 셀과 배터리 관리 시스템을 연결하는 부품) 용접용 멀티포커스 레이저 접합 기술을 선보였다. 또한 폐배터리 전극 소재를 회수하는 레이저 박리 공정을 소개하며 재활용 시장 대응 기술도 함께 제시했다.
배터리 팩 및 전장 부품 분야에서는 글로벌 정밀 전자부품 제조기업인 Interplex에서 분사한 전기차 솔루션 기업인 ENNOVI가 원통형·각형·파우치형 셀에 적용 가능한 CCS 솔루션과 고전압 버스바(Busbar, 배터리 팩 내부에서 전력을 전달하는 금속 도체) 시스템을 공개했다. ENNOVI는 전자부품 및 정밀 커넥터 기술을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용 인터커넥트 솔루션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소재 분야에서는 독일 특수화학 기업 Evonik이 열관리 및 안전성 향상 솔루션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Evonik은 에어로겔(Aerogel, 우수한 단열 성능을 가진 초경량 다공성 소재) 기반 단열소재와 분리막용 기능성 첨가제를 전시하였다. Evonik은 특수화학 분야에서 축적한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배터리용 기능성 소재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시험·계측 분야에서는 독일의 열분석 및 공정 분석 장비 전문기업인 NETZSCH가 전극 소재 특성 분석과 품질관리를 위한 열분석 장비를 선보이며 배터리 제조 공정의 신뢰성 확보 방안을 제안했다. NETZSCH 역시 기존 산업 및 연구개발 분야에서 활용되던 분석 기술을 배터리 품질관리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번 전시회는 배터리 셀 제조사보다 각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소부장 기업들이 기존 기술을 배터리 산업에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독일이 배터리 산업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처음부터 개발하기보다 기존 제조업의 강점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셀 제조보다 소부장 중심으로 진화
현장에서 만난 독일 배터리 엔지니어링 컨설팅 기업 P사의 엔지니어 M씨는 독일 배터리 산업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독일에는 대규모 셀 양산을 주도하는 앵커 기업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공급망은 셀 제조 자체보다 레이저 접합, 배터리 팩 가공, 버스바 배선, 열관리 소재, 품질관리 솔루션 등 기존 강점을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독일이 아시아와의 가격 경쟁이 어려운 범용 셀 생산보다는 고정밀 엔지니어링과 고부가가치 제조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사점 및 국내 기업 진출 방안
이번 전시회는 독일 배터리 산업이 셀 제조 경쟁보다는 주변기술 경쟁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에게도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공정 자동화 및 스마트 제조 솔루션 분야의 협력 기회를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유럽의 신규 배터리 생산라인은 수율(Yield, 생산된 제품 중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향상과 품질관리를 위해 실시간 공정 제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실제 생산설비를 가상공간에 구현해 운영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최적화하는 기술), 검사 자동화 기술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검사장비 및 제조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이러한 수요를 겨냥한 통합 솔루션 공급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유럽 화학기업과의 공동 연구개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나트륨이온배터리(SIB, Sodium-Ion Battery), 리튬황배터리(LSB, Lithium-Sulfur Battery),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개발과 배터리 여권제도(Battery Passport, 배터리의 원재료·탄소배출·재활용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관리하는 제도) 등 환경규제 대응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고기능성 코팅재, 특수 바인더, 열관리 소재 등 분야에서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시장 진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은 배터리 산업에서도 정밀기계, 화학소재, 품질관리 등 기존 제조업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배터리 셀 제조사들은 유럽 시장에서 셀 경쟁력 강화와 ESS(Energy Storage System) 사업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레이저 공정, CCS, 버스바, 열관리 소재, 시험·검사 장비 등 독일 배터리 산업 생태계에서 수요가 집중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 및 사업 기회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향후 유럽 배터리 시장에서는 셀 생산능력 확대뿐 아니라 제조 효율성, 품질관리, 안전성 확보를 위한 주변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 The Battery Show Europe 2026 현장 참관, Battery Atlas 2026, 기업 발표자료, 현지 인터뷰 및 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