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미국 서부 지역의 산업 지형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AI 기업과 빅테크 기업이 집중된 캘리포니아는 AI 혁신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이 가져온 성장의 이면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바로 전력과 물이라는 두 가지 핵심 인프라가 동시에 부족해지는 ‘이중 인프라 압력(Double Infrastructure Pressure)’ 현상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공장을 건설하거나 사업장을 확장할 때 교통망, 인력 확보, 토지 가격 등이 주요 고려사항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전력 공급 능력과 물 확보 가능성이 기업 투자 결정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 최대 경제 규모를 가진 캘리포니아는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위험과 급증하는 전력 수요가 맞물리면서 물과 전기라는 두 가지 자원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AI 산업 성장의 숨겨진 비용, 전력 수요 폭증
AI 산업의 성장은 곧 전력 소비 증가를 의미한다. 생성형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는 수천 개의 고성능 GPU가 필요하며, 이러한 GPU는 기존 서버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AI 모델의 규모가 커질수록 전력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대표적으로 AI 학습용 데이터센터는 일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대비 수 배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하나의 AI 데이터센터가 수백 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을 소비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으며, 일부 초대형 시설은 중소 도시 전체가 사용하는 전력량에 맞먹는 수준의 전력을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 데이터 센터 전력 사용량 전망 (2020-2030)>

[자료: McKinsey & Company]
캘리포니아 에너지위원회(CEC)는 데이터센터가 현재 캘리포니아 전체 전력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지만 AI 산업 확대에 따라 향후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 산업 전기화(Electrification), 반도체 생산시설 증가까지 더해지면서 전력망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최근 북미에서는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전력회사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을 체결하거나 아예 발전 자산 확보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토지 확보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충분한 전력 확보가 사업 성공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력 못지않게 데이터센터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핵심 변수가 있다. 바로 서버 열을 식히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양의 냉각수다.
만성적인 물 부족에 직면한 캘리포니아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캘리포니아가 오랫동안 물 부족 문제를 겪어온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주 전체 강수량의 대부분이 북부 지역에 집중되는 반면 인구와 산업시설은 남부 지역에 밀집돼 있어 지역 간 물 공급 불균형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장기 가뭄과 폭염이 반복되면서 수자원 확보는 캘리포니아 경제와 산업 전반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극심한 가뭄은 캘리포니아 수자원 시스템의 취약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저수지 수위가 크게 낮아지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 고갈 문제가 심화되면서 주정부는 물 사용 제한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최근 강수량이 일부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향후 가뭄 발생 주기가 더욱 짧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수자원부(Department of Water Resources)는 향후 수십 년간 기후변화로 인해 강설량 감소, 폭염 증가, 수자원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안정적인 물 공급 체계 구축이 주정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농업과 산업이 경쟁하는 물 수요
캘리포니아의 물 부족 문제가 더욱 복잡한 이유는 다양한 산업이 동일한 수자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는 미국 최대 농업 생산지로, 미국 과일, 채소, 견과류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농업은 캘리포니아 전체 물 사용량의 약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뭄이 발생할 때마다 농업용수 확보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산업 성장에 따른 데이터센터 건설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물 수요가 추가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제조업 공장과 달리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상당량의 전력과 냉각수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농업용수와 산업용수 간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개발이 활발한 센트럴 밸리, 인랜드 엠파이어, 임페리얼 밸리 등은 이미 물 부족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향후 AI 산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경우 지역사회는 경제 성장과 수자원 보존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페리얼 밸리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최대 규모의 데이터 센터 제안>

[자료: Calexico Chronicle]
AI 데이터센터가 물 부족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이유
최근 데이터센터가 물 부족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AI 기술 확산으로 서버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모델 학습에 사용되는 고성능 GPU는 기존 서버보다 훨씬 많은 열을 발생시키며, 이를 제어하기 위해 대규모 냉각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다수의 데이터센터는 냉각탑(Cooling Tower)을 활용한 증발 냉각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물이 지속적으로 증발하며 소비된다. 업계에서는 대형 데이터센터 한 곳이 하루 수십만에서 수백만 갤런 규모의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특히 여름철 폭염 기간에는 사용량이 더욱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터 센터 쿨링 타워 예시>

[자료: IFM]
더 큰 문제는 데이터센터의 물 소비가 단순히 냉각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 역시 냉각 과정에서 물을 사용한다. 즉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증가할수록 간접적인 물 사용량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를 ‘물-에너지 넥서스(Water-Energy Nexus)’라고 부르며, 향후 AI 산업 성장에 따른 가장 중요한 인프라 과제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량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는 기업별 물 사용량이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인 수자원 계획 수립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물 재활용 산업이 새로운 성장 분야로 부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는 물 재활용과 재생수(Recycled Water) 활용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하수처리수를 정화해 산업용수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있으며, 일부 지방정부는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산업시설의 재생수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스앤젤레스의 ‘Pure Water Los Angeles’ 프로젝트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자원 인프라 사업으로, 하수처리수를 고도 정수해 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오렌지카운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수 재충전 및 재생수 시스템 중 하나를 운영하며 물 부족 문제 대응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자료: Los Angeles Department of Water and Power]
이처럼 AI 산업 확대와 물 부족 문제가 동시에 심화되면서 수처리 설비, 수처리 필터, 스마트 수자원 관리 시스템, 누수 감지 기술, 재생수 처리 장비 등 물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사점
AI 산업 확대는 캘리포니아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동시에 물과 전기라는 핵심 인프라에 대한 압박도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위험과 전력망 확충 필요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역으로, 향후 물과 에너지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KOTRA 로스앤젤레스 무역관이 인터뷰한 데이터 업계 관계자 A 씨는 “과거에는 데이터센터 개발 시 전력 공급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최근에는 물 확보 계획에 대한 검토도 크게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시장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고효율 냉각 설비, 수처리 및 재이용 시스템, 스마트 워터 관리 솔루션, 전력 변압기 및 배전 설비, 에너지 저장장치(ESS), 스마트 그리드 기술 등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산업 성장에 따른 인프라 병목 현상이 심화될수록 물과 전력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며,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 California Energy Commission (CEC), Mckinsey & Company, California Department of Water Resources (DWR), CalMatters, Calexico Chronicle, IFM, Los Angeles Department of Water and Power (LADWP), KOTRA 로스앤젤레스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