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온라인 진료 시장 재편...의료 DX 플랫폼 경쟁 본격화
일본에서 온라인 진료가 단순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넘어 의료 디지털 전환(DX)을 이끄는 핵심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와 지역 간 의료 격차, 의료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의료기관의 행정 업무 부담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의료 정보의 디지털화와 데이터 연계를 국가 차원의 정책 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온라인 진료를 의료 접근성 향상과 의료서비스 효율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 기업들도 온라인 진료 기능을 넘어 전자의무기록(EMR), 예약·결제, 전자 처방전, 약국 연계, 환자 관리 서비스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기관 업무 효율화와 의료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온라인 진료 시장의 중심축도 '진료 서비스'에서 '의료 DX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고령화·의사 부족, 의료 접근성 확보가 과제로 부상
일본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된 국가 중 하나다. 내각부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2024년 10월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624만 명, 고령화율은 29.3%에 달한다. 특히 75세 이상 인구 비중도 16.8%로 높아, 만성질환 관리와 지속적인 의료 상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지방을 중심으로 의사 부족과 의료 접근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의료계획과 의사확보계획을 통해 지역 간 의료 인력 불균형 해소를 추진하고 있으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의료기관 방문 자체가 부담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환경은 온라인 진료와 원격 환자 관리 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다만 일본 온라인 진료 시장은 아직 고령층 중심으로 본격 확산됐다고 보기보다는, 도시권과 디지털 이용에 익숙한 젊은·중년층, 그리고 일부 자유진료 분야에서 먼저 성장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시드플래닝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진료 이용 경험률은 전체 6% 수준이며, 남성 20~49세는 14%, 여성 20~49세는 11%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역별로는 도시권 이용 경험률이 11%로 가장 높고, 산간·도서 지역은 4%에 그쳤다. 이는 온라인 진료가 의료 접근성 개선 수단으로 기대를 받으면서도, 실제 보급에는 대응 의료기관, 통신 환경, 이용자 인식, 결제·예약 인프라 등이 함께 갖춰져야 함을 보여준다.
시장 확대의 중심은 ‘진료’에서 ‘플랫폼’으로 이동
시장조사업체 시드플래닝은 일본 온라인 진료 서비스 시장이 2026년 1248억 엔, 2030년 1735억 엔, 2040년 2591억 엔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6년 기준 시장은 보험진료 891억 엔, 자유진료 357억 엔으로 추산된다. 특히 AGA, 저용량 피임약, 미용의료, 비만 치료 등 자유진료 영역에서는 온라인 상담부터 처방, 결제, 약 배송까지 이어지는 완결형 서비스 모델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시장의 핵심 변화는 온라인 진료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의료 DX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관은 예약, 문진, 진료, 전자의무기록, 수납, 처방전 발급, 약국 연계, 사후관리 등 여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개별 솔루션을 따로 도입할 경우 업무 흐름이 단절되고 직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의료기관들은 단순 화상진료 기능보다 기존 전자 차트 및 보험청구 시스템과 연계되는 통합형 솔루션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온라인 진료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대기시간 단축, 사전 문진, 자동 결제, 재진 예약 관리 등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동 부담과 대기시간을 줄이고, 지속적인 처방·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만성질환, 정신건강, 피부과, 생활습관병 관리 등 정기적 상담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대면진료와 온라인 진료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주요 기업, 의료 데이터 플랫폼 경쟁 강화
일본 온라인 진료·의료 DX 시장에서는 M3, 메들리, MICIN 등 주요 기업들이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M3는 일본 의사의 90% 이상이 등록한 의료 종사자 포털 ‘m3.com’을 기반으로 의료정보 제공, 전자 차트, 진료지원 시스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왔다. M3 계열의 ‘디지털 스마트 진료’는 진찰권, 예약, 문진, 전자 차트 연계, 자동결제, 온라인 진료, 약 배송 등을 통합해 의료기관의 접수·회계·환자관리 업무 효율화를 지원한다. 메들리는 ‘CLINICS’를 중심으로 클라우드 진료지원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CLINICS는 온라인 진료와 처방 연계, 예약 관리, 환자 앱 기반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제공하며, 최근에는 의료문서 작성과 전자 차트 업무를 지원하는 AI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온라인 진료 플랫폼이 단순 환자 접점 앱을 넘어 의료기관 내부 업무를 지원하는 SaaS형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MICIN은 온라인 진료 서비스 ‘curon’을 통해 예약, 문진, 화상진료, 처방전 및 약 배송, 약국 연계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사업자들은 모두 진료 전후의 업무 프로세스를 묶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으며, 향후 경쟁력은 이용자 수뿐 아니라 의료기관 시스템과의 연계성, 데이터 활용성, 보안·인증 대응 역량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의료 IT 업계 관계자 A씨는 도쿄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온라인 진료 기능 자체가 서비스 경쟁력으로 평가됐지만, 최근에는 전자 차트, 예약·결제, 보험청구 시스템과 얼마나 원활하게 연계되는지가 도입 결정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며 "의료기관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기보다 기존 업무 흐름을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의료 DX 정책 가속
일본 정부는 의료 DX를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의료 DX의 주요 축으로 전국 의료정보 플랫폼, 전자 차트 정보 표준화, 진료보수 개정 DX 등을 제시하고 있다. 온라인 자격 확인, 전자처방전, 전자 차트 정보공유 서비스, 표준형 전자 차트 개발 등도 함께 추진 중이다. 특히 전자처방전은 단순히 종이 처방전을 전자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의료기관과 약국에서 최근 처방·조제 정보를 확인하고 중복투약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전자 차트 정보공유 서비스 역시 진료정보제공서, 건강검진 결과, 약제 알레르기, 검사 정보 등을 의료기관과 약국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는 온라인 진료가 독립된 서비스가 아니라 의료정보 연계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후생노동성은 온라인 진료에 대해 대면진료와 적절히 조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원칙적으로 환자와 기존 관계가 있는 의사가 실시하는 등 안전성 기준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시장에서는 규제 완화만을 전제로 한 급격한 확산보다는, 의료 안전성과 데이터 연계, 보험제도, 진료보수 체계와 조화를 이루는 점진적 성장이 예상된다.
시사점
일본 온라인 진료 시장은 화상 상담 서비스 경쟁을 넘어 의료 데이터와 업무 플랫폼 중심의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는 세 가지 기회가 주목된다. 첫째, 클라우드 기반 전자의무기록, 병원정보시스템, 예약·결제, 문진 자동화 등 의료기관 DX 솔루션 분야다. 일본 의료기관은 고령화와 인력 부족 속에서 업무 효율화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 기존 시스템과 연동 가능한 경량형·모듈형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의료 문서 자동 작성, 진료 지원 AI, 의료 데이터 분석 등 AI 기반 헬스케어 솔루션이다. 의료진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진료 품질을 높이는 기술은 일본 시장에서도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료 AI는 정확성, 설명 가능성, 개인정보 보호, 의료기기 해당 여부 등 규제 검토가 필수적이다. 셋째, 원격 환자 모니터링, 만성질환 관리, 디지털 치료제, 재택의료 지원 플랫폼 분야다. 일본은 고령층의 재택의료와 지역 포괄케어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병원 밖 환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수집·분석하고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서비스가 성장할 여지가 있다. 향후 일본 의료시장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는 온라인 진료 기능 자체보다 데이터 연계성, 의료기관 업무 효율화, 보안·인증 대응, 현지 의료제도와의 적합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은 단독 플랫폼으로 바로 진입하기보다 일본 의료기관, 약국, 기존 의료 DX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기능 단위로 시장을 검증하고, 현지 보험·규제 환경에 맞춘 단계적 진출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자료: 니혼게이자이신문, 시드플래닝, PR TIMES, 후생노동성, 디지털청, 도쿄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