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다시 부각된 원유 공급망 다변화


2026년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와 석유제품 수송이 급감하면서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이 다시 드러났다. 호르무즈해협은 2025년 기준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한 핵심 해상 통로로, 세계 해상 석유교역량의 약 25%를 담당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2026년 3월 호르무즈해협의 수송량이 전쟁 이전의 10% 미만까지 감소하자 회원국 비축유 4억 배럴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IEA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공동 비축유 방출 조치이다.

2026년 6월 미국과 이란은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60일 이내에 최종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호르무즈해협의 상선 통항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7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상선 공격이 이어지고 미국이 보복 공습에 나서면서 합의가 흔들렸다. 8월 초 미국이 예정했던 대이란 공격을 취소하고 협상 방침을 밝혔지만,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이란 핵 문제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세계 주요 해상 석유 수송 요충지와 중동산 원유의 아시아 수송 경로>

(단위: 백만 배럴/일)

[ 자료: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EIA), World Oil Transit Chokepoints (2026년 3월 발표) 자료 바탕으로 오클랜드무역관 작성 ]


전체 통과 물량은 말라카해협이 호르무즈해협보다 많다. 그러나 한국으로 향하는 중동산 원유는 호르무즈해협을 먼저 지나야 한다. 따라서 중동산 원유 공급망에서는 호르무즈해협이 선행 병목지점이며, 이곳에서 차질이 발생하면 말라카해협으로 유입되는 중동산 원유 물량 자체가 감소한다. 말라카해협이 동아시아행 해상 운송의 주요 관문이라면, 호르무즈해협은 중동산 원유 수송의 출발 단계에서 통과해야 하는 핵심 요충지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 정유업계에서는 중동산 원유의 절대적인 물량뿐 아니라 공급국, 원유 등급, 선적항과 운송경로를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뉴질랜드산 원유는 생산 규모가 크지 않지만 호르무즈해협과 홍해를 통과하지 않고 한국으로 운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급망을 보완할 수 있는 비중동산 원유로 평가할 수 있다.

뉴질랜드 원유 생산 및 공급 구조

뉴질랜드의 원유 생산지는 북섬 서부의 타라나키(Taranaki) 지역과 인근 해역에 집중돼 있다. 주요 생산 유전으로는 Maari, Maui, Kapuni, Turangi, Mangahewa, Pohokura, Cheal, Kupe 및 Ngatoro 등이 있다.

뉴질랜드 기업혁신고용부(MBIE)에 따르면 현재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거의 전량 수출된다. 유일한 정유공장이었던 마스든 포인트(Marsden Point)가 가동되던 시기에도 뉴질랜드산 원유는 해당 공장의 설비 구성과 목표 제품 수율에 잘 맞지 않아 거의 전량 해외로 수출됐다. 당시 정유공장은 주로 중동과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한 원유를 사용해 휘발유·경유·항공유 등을 생산했다.

최근 뉴질랜드 원유 생산량은 기존 유전의 자연감산으로 전반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유전의 생산량이 증가하기도 했지만 Maari, Maui, Pohokura 등 주요 유전의 감소분을 충분히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 뉴질랜드산 원유는 대규모 장기 공급처라기보다 필요한 시점에 특정 유종을 조달할 수 있는 보완 공급원에 가깝다.


<뉴질랜드 원유 생산·수입·수출 동향>

[ 자료: MBIE, Oil Statistics 바탕으로 오클랜드무역관 정리 ]


원유를 수출하고 정제유를 수입하는 뉴질랜드


뉴질랜드 원유 공급망의 특징은 국내에서 생산한 원유를 수출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소비하는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정제유는 해외에서 수입한다는 점이다. 뉴질랜드 유일의 정유공장이었던 마스든 포인트 정유공장은 2022년 4월 정제 작업을 중단하고 연료 수입·저장 터미널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의 원유 수입은 사실상 중단됐고, 국내 석유제품 수요는 해외 정유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 수입으로 충당되고 있다.

정제 기능 중단 이전에는 마스든 포인트가 뉴질랜드 연료 수요의 약 70%를 공급했지만, 현재 뉴질랜드는 휘발유·경유·항공유를 주로 싱가포르, 한국, 일본 등의 정유공장에서 수입한다. 즉, 한국은 뉴질랜드산 원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뉴질랜드에 정제된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2025년 뉴질랜드의 경유·항공유 주요 수입국>

(단위: 백만불)

[ 자료: UN Comtrade, HS 2710.19(경유·항공유 등) 기준 오클랜드무역관 정리 ]


한국의 뉴질랜드산 원유 수입 동향


한국은 원유 수요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중동은 가장 중요한 공급 지역이다. 그러나 호르무즈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확대되면서 미국, 남미, 아프리카 및 오세아니아 등 비중동 지역으로 원유 공급선을 분산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뉴질랜드산 원유 수입은 2021~2022년 2만 톤 안팎에 머물렀으나, 2023년 14만3,300톤으로 크게 증가한 뒤 2024년 21만4,400톤, 2025년 26만300톤으로 확대됐다. 수입액도 2022년 1,740만 달러에서 2023년 1억400만 달러, 2025년 1억5,530만 달러로 늘었다. 특히 2026년 상반기 수입 실적은 1억340만 달러, 14만3,400톤으로, 수입액은 2025년 연간 실적의 약 67%, 수입 물량은 약 55%에 달했다.

<한국의 뉴질랜드산 원유 수입 동향>

[ 자료: 한국무역협회, HS 2709.00 기준 오클랜드무역관 정리 ]


뉴질랜드산 원유가 한국 전체 원유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기준 0.2%로 중동산이나 미국산 등에 비해 제한적이다. 그러나 호르무즈해협과 홍해를 통과하지 않는 남태평양 공급원이라는 점에서, 원유 공급망 다각화와 비상시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보완적 공급원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주요 원유 수입국>

순위

수입대상국

수입액(백만불)

수입비중

1

사우디아라비아

$25,741

34.2%

2

미국

$12,865

17.1%

3

UAE

$8,769

11.6%

4

이라크

$7,656

10.2%





18

뉴질랜드

$155

0.2%

[ 자료: 2025년 UN Comtrade, HS 2709.00(원유) 기준 오클랜드무역관 정리 ]


뉴질랜드, 탐사 제한 철회 후 첫 신규 해상 석유 탐사 허가


뉴질랜드 연립정부는 2018년 도입된 신규 해상 석유·가스 탐사 제한을 철회하고 민간 기업의 신규 탐사 허가 신청을 다시 허용했다. 이후 뉴질랜드 정부는 2026년 7월 호주계 자원개발기업 EnZed Energy에 해상 타라나키 분지에 대한 석유 탐사 허가를 발급했다. 이는 탐사 제한 철회 이후 처음 발급된 신규 해상 석유 탐사 허가로, 정부의 탐사 재개 방침이 실제 허가 발급으로 이어진 첫 사례이다.

허가 구역에는 석유·가스가 매장 돼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Kaheru 탐사 대상지가 포함돼 있다. EnZed Energy는 우선 기존 지진파 및 지질 자료를 분석해 해당 지역의 자원 잠재력을 평가한 뒤 단계적으로 탐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탐사 허가가 곧바로 상업적 유전 발견이나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실제 생산까지는 탐사·평가시추, 매장량 및 경제성 검토, 관련 인허가와 생산설비 투자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와 별도로 연립정부 참여 정당인 NZ First는 2026년 총선 공약으로 차기 정부 임기 동안 초기 10억 뉴질랜드달러를 투입하는 ‘국가 지하자원 개발 조사(National Subsurface Development Survey)’를 제시했다. 석유·가스뿐 아니라 지열과 이산화탄소 저장 가능 부지에 관한 국가 단위 데이터를 구축해 민간 탐사·개발 투자를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는 현재 정부 예산이 확정된 사업이 아니라 NZ First가 제시한 선거 공약으로, 향후 정책의 구체화 여부는 총선 결과와 차기 연립정부 구성 협상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EnZed Energy에 대한 이번 허가로 뉴질랜드의 석유·가스 탐사 재개 정책은 규제 철회에서 실제 허가 발급 단계로 넘어갔다. 그러나 탐사 초기 단계인 만큼 단기간에 뉴질랜드의 원유 생산량이나 대한국 수출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한국의 원유 공급망 다각화 측면에서는 향후 Kaheru 지역의 탐사 결과와 후속 탐사 허가 발급, 상업성 있는 매장량 발견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동발 충격으로 커진 한·뉴질랜드 에너지 공급망 협력 필요성


2026년 중동 전쟁을 계기로 뉴질랜드에서도 석유제품 공급망 안정이 국가 경제안보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뉴질랜드는 중동산 원유를 직접 수입하지 않지만, 주요 석유제품 공급국인 한국과 싱가포르는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호르무즈해협의 운송 차질은 뉴질랜드의 석유제품 수급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2025년 뉴질랜드 석유제품 수입 중 경유·항공유 수입(HS 2710.19)의 46%가 한국, 34%가 싱가포르에서 공급돼 특정 아시아 공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연료업계 비상협의체를 가동하고 ‘Fuel Response Plan 2026’을 마련하는 한편, 호주와 연료 규격을 맞춰 수입 가능 지역을 넓히고 9일분에 해당하는 디젤 9,000만 리터를 추가 확보했다. 또한 싱가포르와 연료 등 필수품에 대한 수출 제한을 상호 금지하는 ‘필수물자 무역협정(Agreement on Trade in Essential Supplies, AOTES)’을 체결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정부 간 협의를 진행하고 주요 정유·트레이딩 기업을 접촉해 기존 수준의 석유제품 공급 지속과 선적·공급 차질 정보 공유를 요청했다.

이러한 교역 구조에서 뉴질랜드는 한국 등 아시아 정유국과의 석유제품 공급관계를 강화할 수 있고, 한국은 뉴질랜드산 원유를 비중동 지역의 보완 조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뉴질랜드산 원유 수입도 증가하고 있는 만큼, 양국은 민간 장기계약 가능성 검토, 수급·선적 정보 공유, 비상시 정부·업계 간 협의 채널 구축 등으로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


자료: IEA, EIA, UN Comtrade, MBIE, 한국무역협회 및 무역관 보유 자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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