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경제는 거시지표의 호조세와 미시경제 지표의 악화가 공존하는 디커플링 현상을 보이고 있다. 고용 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고 주식 시장은 사상 최고점 부근에서 강세를 유지하는 반면, 실질적인 가계 경제를 나타내는 소비·심리 지표는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평범한 미국 서민들이 식탁 물가와 주거비 압박으로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소비 양극화 심화, 주유소 착시 걷어낸 미 소매판매

미 상무부는 지난 6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주유소 매출 감소가 헤드라인 수치를 다소 끌어내렸으나, 주유소를 제외한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늘어 실질적인 소비 흐름은 여전히 견조함을 입증했다. 특히 아마존 프라임데이 등 대형 유통업체의 할인 행사에 힘입어 온라인 판매는 전월 대비 1.9% 급증하며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지출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소득 계층별 ‘온도 차’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증시 호조와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누리는 고소득층이 지출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반면, 중저소득층 가계는 누적된 인플레이션 압력과 세금 환급 효과 소멸 여파로 지출을 빠르게 축소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미 행정부가 지급했던 건당 평균 3,500달러(전년 대비 약 10~15% 증가) 수준의 세금 환급 효과가 소멸한 데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변동성 여파가 확산하고 있다"며 "미국 중저소득 소비자들이 불과 수개월 내에 심각한 현금 부족과 자금 압박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저가 대안을 찾는 ‘트레이드 다운(Trade-down)’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연구소(Bank of America Institute)의 신용카드 지출 데이터 분석 결과, 올해 들어 할인 의류 매장과 저가 식품점, 종합 할인점을 찾는 소비 발길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지 유통업계 관계자 A씨는 "현재 미국 소매판매 성장은 사실상 고소득층이 견인하는 구조"라며 "올해 들어 저소득층 가구의 할인 의류 매장 지출 증가 속도가 고소득층 대비 5배나 빨라질 정도로 저가 상품 선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5년간 미국 소매판매(소매 및 식품 서비스 판매-속보치) 동향>

[자료: Federal Reserve bank of St.Louis]

견고한 노동 시장의 소비 지탱, 물가 상승 요소로 작용

블룸버그는 미국 소비의 급격한 침체를 방지하는 주요 요인으로 강력한 노동 시장을 지목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는 208,000건으로 감소하며, 낮은 해고율과 타이트한 구인 환경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노동 시장의 강세는 소비자들의 가처분 소득을 지지하며 전체 소비를 지탱하는 주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타이트한 고용 환경이 서비스 부문의 임금 상승 압력을 지속시켜 근원 인플레이션의 하락세를 제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경기동향 보고서(베이지북)는 "일부 지역에서 고용이 완만하게 증가했으며, 특정 전문 업종을 중심으로 구인난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해 고용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 달성이 지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채권 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장기간 유지하고, 첫 금리 인하 시점을 당초 전망보다 늦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물가 직격탄 맞은 장바구니, 미국인 66% 식료품비 감당 어렵다

최근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에너지 비용 급등이 식료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가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Post-Ipsos)가 공동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6%가 현재 식료품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 2월 조사 당시 기록한 45% 대비 21%포인트 급등한 수치다. 이러한 물가 부담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 가구의 56%가 식료품 가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5만~10만 달러 가구는 70%, 5만 달러 미만 가구는 82%가 부담을 호소했다. 이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단순 주유비 증가에 그치지 않고 농작물 재배, 제조, 수송 등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쳐 가공식품 가격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모기지 금리 급등에 따른 주거비 상승과 보육비 증가가 더해지면서 중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시사점

유통사에 근무 중인 A씨는 뉴욕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소비 양극화 심화는 한국 수출 기업에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며, “양극화가 극대화되는 시기에는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모호한 중가 브랜드가 가장 먼저 배제될 가능성이 크므로 대미 수출 기업은 투트랙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 여력이 위축된 중저소득층의 실속형 소비 트렌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가성비 중심의 라인업 확보가 요구된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PB) 납품을 추진하거나 달러스토어 등 유통망을 다변화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특히 고물가 여파로 외식이 감소하고 내식 비중이 증가한 식품 시장의 경우, 합리적인 가격대의 가공식품 및 밀키트 중심 K-푸드 제품군이 유효한 공략 대상으로 지목된다. 반면 자산 여력이 견조한 고소득층 타깃 시장은 차별화된 가치와 감성 품질을 극대화한 프리미엄 포지셔닝 전략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유가 변동성에 대응한 선제적인 물류·재고 관리 체계 고도화 및 오프라인 대비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커머스 채널을 활용하는 스마트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료: Bloomberg, Washington post, Wall Street Journal, Financial Times, CNBC, Bank of America Institute, Employment and Training Administration, U.S. Department of Commerce, KOTRA 뉴욕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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