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코 후지모리 당선과 페루 정치 지형의 변화
2026년 7월 3일 페루 국가선거심판위원회(Jurado Nacional de Elecciones, JNE)는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 민중의 힘(Fuerza Popular) 후보를 2026~2031년 임기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선포했다. 2026년 6월 7일 결선투표에서 후지모리는 9,223,396표(50.135%)를 얻어 함께하는 페루(Juntos por el Perú)의 로베르토 산체스(Roberto Sánchez) 후보를 4만 9641표 차로 제쳤다. 후지모리 당선인은 7월 15일 당선증(credenciales)을 받은 뒤 7월 28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5년 임기를 시작한다.
<2026년 페루 대선 결선투표 결과>

[자료: ONPE]
1975년 리마에서 태어난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 당선인은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전 대통령의 장녀로,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2006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2011년까지 활동했으며, 2011년, 2016년, 2021년 세 차례 대선 결선투표에서 패배한 뒤 2026년 네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2000년 후지모리 전 대통령 퇴진 이후 26년 만에 후지모리주의(fujimorismo) 계열 정치 세력이 재집권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후지모리주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정부(1990~2000년) 시기에 형성된 정치 노선으로,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과 대외 개방, 강경 치안 정책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당시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며, 이를 둘러싼 후지모리주의 지지·반대 진영 간 정치적 대립이 이어져 왔다.
또한, 이번 페루 대선은 최근 중남미 정치 지형의 변화 흐름과도 맞물린다. 2000년대 좌파 정부의 연쇄 집권을 의미하는 '핑크 타이드(Pink Tide)' 이후 최근에는 역내에서 우파 또는 중도우파 성향 정부가 확대되는 추세다. 2023년 말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에서 우파·중도우파 정부가 출범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에콰도르에서 중도우파 정부가 재집권했고 칠레와 온두라스에서는 우파 성향 후보가, 볼리비아에서는 약 20년간의 좌파 집권을 마감한 중도 성향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2026년 들어서도 코스타리카(2월), 콜롬비아(6월), 페루에서 우파 성향 후보가 잇달아 승리하면서 이른바 '블루 타이드(Blue Tide)'로 불리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후지모리 신정부의 경제·통상 정책 기조
후지모리 신정부는 친시장 및 재정건전성 기조를 표방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발표한 공약집 '질서 있는 페루(Perú con Orden)'는 페루 중앙은행(Banco Central de Reserva del Perú, BCRP)의 독립성 보장과 계약 존중, 2031년까지 재정적자를 GDP 대비 1% 수준으로 축소하는 재정 건전화 방침을 제시했다.
경제 분야 공약의 핵심은 '규제완화 쇼크(shock desregulatorio)'다. 광업, 인프라, 에너지 등 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 프로젝트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중복 행정절차를 폐지하는 등 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연간 50억~70억 달러 규모의 민간투자를 추가 유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공약이 실제 이행될 경우, 인허가 지연이 주요 애로 요인으로 지적돼 온 페루 시장에서 투자 프로젝트의 추진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분야별로는 치안 분야에서 전국 단위 통합관제체계(C5i) 구축과 스마트 순찰차 1000대, 상호연결 감시카메라 1만 대 도입, 경찰서 200개소 현대화를 공약했다. 인프라 분야에서는 찬카이(Chancay)항 연계 인프라 확충과 민관협력(Asociaciones Público-Privadas, APP), 세금공제공사(Obras por Impuestos, OxI) 방식의 활용을 제시했다. 광업 분야에서는 전략 프로젝트의 신속한 인허가와 행정절차 디지털화를, 에너지 분야에서는 2031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시장은 신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이번 선거 결과가 경제정책의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국가신용도와 투자 전망을 개선할 것으로 평가했으며, 규제 부담 완화가 이뤄질 경우 지연돼 온 광업·인프라 프로젝트가 재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공약은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정책 방향인 만큼, 실제 추진 여부는 취임 이후 내각 구성과 예산 편성, 입법 과정을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한-페루 교역 현황과 향방
2011년 8월 한-페루 FTA 발효 이후 양국 교역은 대체로 연간 30억 달러 안팎에서 유지됐다. 교역 규모는 2021년 약 42억4000만 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감소세로 전환돼 2025년에는 약 31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자동차, 가전, 철강, 화학제품 등 제조업 제품을 수출하고, 페루로부터 구리, 아연, 천연가스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상호보완적 교역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자재 수입 증가 등의 영향으로 한국 기준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으나, 적자 규모는 2021년 약 26억6000만 달러를 정점으로 이후 등락을 거치며 축소되는 추세다. 다만, 양국 경제협력은 상품 교역을 넘어 방산·조선, 인프라·건설, 광업·자원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페루 교역 추이>
(단위: 백만 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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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2021 |
2022 |
2023 |
2024 |
2025 |
20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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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
금액 |
794 |
778 |
689 |
606 |
629 |
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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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율 |
(63.6) |
(△2.0) |
(△11.4) |
(△12.1) |
(3.9) |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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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
금액 |
3,450 |
2,847 |
2,937 |
2,602 |
2,561 |
1,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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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율 |
(25.2) |
(△17.5) |
(3.1) |
(△11.4) |
(△1.6) |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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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
4,244 |
3,625 |
3,626 |
3,208 |
3,190 |
1,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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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
-2,656 |
-2,069 |
-2,253 |
-1,996 |
-1,932 |
-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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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KITA]
주: 2026년은 1~5월 누계 기준
향후 교역은 정권 교체 자체보다 신정부 정책의 이행 여부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FTA 발효 이후 대부분의 관세가 철폐된 만큼 제도적 교역 여건의 변화는 제한적이며, 교역은 투자와 내수 등 실물경제의 흐름에 좌우될 전망이다. 신정부가 공약한 인프라 투자와 규제완화가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자본재와 중간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페루 수출 확대가 기대된다. 반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투자와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수요도 둔화될 수 있다. 수입 측면에서는 원자재 중심의 교역 구조가 이어지는 만큼 페루의 광물 생산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교역 규모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요 분야별 협력 전망
1. 방산·조선
최근 한-페루 경제협력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방산·조선이다. 해상·육상·항공 분야에서 대형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으며,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 중심으로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먼저, 해상 분야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2024년 4월 페루 국영조선소(SIMA)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고, 그 일환으로 약 6406억 원 규모의 함정 4척 공동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은 설계와 기자재 공급, 기술 지원을 맡고 SIMA가 최종 건조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어 2025년 12월에는 양사간 차세대 잠수함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등 후속 사업과 기술협력을 위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으로 육상 분야에서는 현대로템이 2024년 5월 K808 차륜형장갑차 30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페루 시장에 진출했다. 이어 2025년 12월에는 페루 육군 및 육군조병창(FAME)과 K2 전차 54대와 K808 차륜형장갑차 141대 등 총 195대 공급을 위한 총괄합의서를 체결했다. 마지막으로 항공 분야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2012년 KT-1P 기본훈련기 20대를 수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페루 국영 항공정비기업(SEMAN)과 협력을 통해 페루 항공산업 역량 강화를 위한 기술협력과 컨설팅을 지원하며 향후 협력 확대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세 분야 모두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을 중심으로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다만, 현재 추진 중인 사업 가운데 상당수는 전임 정부에서 계약이 체결됐거나 아직 본계약 이전 단계에 있다. 신정부가 치안·안보 강화 기조에 맞춰 국방예산을 확대할 경우 본계약 체결과 후속 사업 추진에 긍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반면, 예산 조정이나 사업 우선순위 변경이 이뤄질 경우 일부 사업의 추진 일정에는 변동 가능성도 있다.
2. 인프라·건설
페루는 유사한 사회·경제 여건의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인프라 수준이 낮고, 수도와 지방 간 인프라 격차도 큰 편이다. 이에 따라, 보건, 위생, 교통을 비롯해 도로, 항만, 전력 등 주요 인프라 분야에서 투자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 페루 정부는 투자진흥청(PROINVERSIÓN)을 중심으로 민관협력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2025년 9월에는 사업 절차의 신속화와 법적 안정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관련 법률(Ley N.° 32441)을 제정했다. 신정부가 공약한 규제완화 정책이 추진될 경우, 이러한 제도 개선과 맞물려 APP 사업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우리 기업의 페루 인프라 시장 진출도 확대되는 추세로, 사업 영역도 기존 설계·감리 중심에서 PMO와 시공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신정부의 인프라 공약이 실제 예산 집행으로 이어질 경우 도로, 항만, 전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참여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지방정부의 사업 집행 역량 부족과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공공투자 지연 가능성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로 남아 있다.
3. 광업·자원
광업은 페루 경제의 핵심 산업이자 한-페루 교역의 주요 분야다. 페루는 세계 3위의 구리 생산국이자 세계 2위의 아연 생산국으로, 광업은 페루 전체 수출의 약 65%를 차지한다. 페루는 한국의 주요 광물 공급국으로, 양국은 2024년 11월 핵심광물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공급망 정보 공유와 공동 탐사·개발 등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정부는 광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전략 프로젝트의 인허가 절차를 신속화하고, 재투자 세제 인센티브를 포함한 광업법 현대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페루 광업계에서는 신규 프로젝트의 인허가 지연이 투자 확대의 주요 제약 요인으로 지적돼 온 만큼, 관련 제도 개선이 추진될 경우 신규 투자 여건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광산기업이 납부한 세수의 일부를 채굴 지역에 이전하는 재원 배분 제도인 '카논(Canon)'과 관련해서는 이전 재원의 최대 40%를 지역 주민에게 직접 배분하는 '국민을 위한 카논(Canon para el Pueblo)' 도입을 공약했다. 다만, 페루 광업계는 카논의 일부를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는 방안보다 지방정부의 재정 집행 역량을 개선해 광업 재원이 공공서비스와 인프라 투자에 효과적으로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광업은 정치·사회적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야다. 페루 최대 구리 광산 가운데 하나인 라스밤바스(Las Bambas)는 지역공동체와의 갈등으로 2016년 이후 반복적인 도로 봉쇄를 겪었으며, 2022년에는 시위대의 광산 부지 점거로 약 50일간 생산이 중단된 바 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승인 이후에도 지역사회 협의와 추가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생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향후 광업 투자 확대와 한-페루 자원 협력의 성과는 제도 개선의 이행 여부와 지역사회의 수용성 확보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의 과제와 의회 구도
신정부는 0.27%p 차의 초박빙 승부 끝에 출범하게 됐다. 이번 결선투표에서 국내 유효표 기준으로는 산체스 후보가 약 3만 2000표 앞섰으나, 후지모리 당선인은 재외국민 투표에서 약 8만 2000표 차의 우위를 보이며 최종 승리를 거뒀다. 지역별로도 후지모리 당선인은 리마, 카야오, 북부 해안 지역 등 전국 25개 선거구 가운데 9곳에서 승리한 반면, 남부·중부 안데스와 북부 산악 지역을 포함한 나머지 16개 선거구에서는 산체스 후보가 우세를 보였다.
<2026년 페루 대선 결선투표 지역별 결과>

[자료: ONPE, KOTRA 리마 무역관 재구성]
주: 주황색은 후지모리 우세 지역, 녹색은 산체스 우세 지역
또한, 이번 총선으로 1992년 폐지됐던 상원이 34년 만에 부활하면서 의회는 양원제로 전환됐다. 대선에서 승리한 민중의 힘(Fuerza Popular)은 상원(22/60석)과 하원(41/130석) 모두에서 제1당이 됐으나 단독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우파 성향의 대중혁신당(Renovación Popular)과 공조하더라도 과반 확보가 어려워, 중도 성향의 좋은 정부당(Partido del Buen Gobierno)이나 여타 좌파 성향 정당들과의 협의 없이는 주요 공약의 입법과 예산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 페루 총선 의회 구성 결과>

[자료: DecidePerú, KOTRA 리마 무역관 재구성]
시사점
친시장 기조의 정부 출범은 방산, 인프라, 자원 등 한국 기업의 관심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기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신정부 공약이 예산과 입법으로 이어져 실제 정책으로 이행될 필요가 있다.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협력 사업은 후속 발주와 신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의회 구도와 근소한 득표 차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사업 추진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현재 추진 중인 주요 협력 사업의 상당수가 전임 정부에서 시작된 만큼, 정책과 사업의 연속성도 중요한 변수다. 아울러, 페루 경제는 국제 원자재 가격과 중국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인 만큼, 교역과 투자 환경 역시 대외 여건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은 FTA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교역 여건을 활용하는 한편, 신규 투자와 프로젝트는 신정부의 첫 예산안과 내각 구성, 공약의 입법화 등 정책 이행 상황을 확인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료: JNE, ONPE, Infobae, Gestión 등 KOTRA 리마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