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브뤼셀을 방문해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언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상임의장과 만나 제11차 한-EU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최근 한국 정부와 EU 지도부는 2026년 4월 한-EU 무역위원회를 진행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 정상이 EU를 직접 방문한 건 8년 만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한-EU 디지털 통상협정(Digital Trade Agreement) 최종 서명, 경쟁력 파트너십 출범 등 성과가 있었으며,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회의로 양측간 관계가 더욱 격상됐다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주요 내용

① 한-EU 디지털 통상협정 서명 등 디지털 분야 협력 강화

한국과 EU는 2025년 3월 제12차 한-EU FTA 무역위원회에서 최종 타결이 선언된 디지털통상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에 이어 두번째로 EU와 디지털 통상협정을 체결한 국가가 됐다. 해당 협정은 기존 한-EU FTA에서 다루지 않았던 디지털 무역 및 데이터 이전, 전자서명, 전자 결제 등 빠르게 성장하는 신산업 분야를 포괄하는 별도의 통상협정이다. 주요 내용은 양국간 △전자계약·전자 인증·전자 성명의 상호 인정, △데이터의 자유로운 국경간 전송(현지화 요구 금지), △전자상거래에서의 소비자 보호, △국제 표준 활용과 적합성 평가 상호인정 등이다. 이로서 향후 우리 클라우드 서비스, 핀테크, AI 관련 기업의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제도적 발판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양측은 AI 협력 문건 체결에 동의하고, 안전한 국경간 데이터 이동을 위한 개인정보 보호 협력, 딥테크 스타트업의 국제 진출 지원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대미 기술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해 제3국과의 기술 협력을 추진하려는 EU의 움직임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U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과의 AI 분야 협력 강화를 발표한 것 외에도, 해나 비르쿠넨 EU 기술분야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지난주 브라질을 방문해 새로운 디지털 파트너십 서명을 추진한 바 있다. 비르쿠넨 부집행위원장은 EU가 ‘개방된 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안전한 기술’을 촉진하고, ‘규범을 바탕에 둔 디지털 세계’에 대한 의지를 갖춘 국가들과 협력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까지는 주로 정부간 논의가 진행됐으나, 집행위원회는 교역 확대를 위해 기업의 참여도 유도하고자 한다.


② 한-EU 경쟁력 파트너십 체결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EU는 무역·투자, 공급망, 디지털, 첨단 기술 등 전략적 중요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경쟁력 파트너십을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고위급 경제대화를 신설하기로 했으며, 이는 기존의 한-EU 무역위원회, 경제안보·신통상이슈 전략대화, 산업정책 대화 등의 협의체를 기반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③ 안보 분야 협력 강화

이외에도 양측은 안보·방위 파트너십 확대의 일환으로 비밀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협정 체결 시 EU와 비밀정보를 안전하게 교환하고, 방산 산업 협력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테러 및 중대범죄의 예방·탐지·수사를 위한 승객 예약자료(PNR) 전송 협정 협상도 타결됐는데, 발효 시 EU 국적 항공사를 통해 국내에 입국하는 승객의 예약자료를 활용해 마약, 총기, 테러 등 초국가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④ 기타 주요 내용

이번 정상회의는 한-EU 간 상호인정협정(MRA, Mutual Recognition Agreement) 협상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4월 EU 집행위원회는 MRA 협상 범위와 목표 등을 담은 수임 지침(negotiating mandate)을 만들어 회원국 승인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MRA 협정이 체결될 경우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전 양국에서 이중으로 시험을 받아야 하는 요건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해당 조치는 상대국이 지정한 제품 시험기관의 시험성적서를 상호 인정하는데 국한되며, 상대국의 실질적 기술 표준이나 규정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지 언론 Borderlex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 무역총국 관계자는 한-EU 양측이 전자를 공동 관심 분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 공동 선언문에는 MRA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진 않았으나, EU 집행위원회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EU는 정상회담에서 MRA 협상을 위한 내부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앞으로 실무 레벨에서 양국 간 인증 장벽 해소를 위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EU의 철강 무관세 수입 쿼터(TRQ)에 대해서도 성명문 등에 별도 언급은 없었으나, 현지 언론 Politico는 양측 수뇌부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회담을 마무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측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해당 사안이 철강 산업 뿐 아니라 양국 간 산업 협력, 공급망 안정, 투자·고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올해 6월 말 만료되는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를 대체하기 위해 2025년 10월 7일 ‘글로벌 철강 과잉생산 대응조치’를 발표했으며, 이에 따르면 연간 TRQ가 1,834만톤으로 제한되고 초과 물량에 50%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국가별 세부 쿼터 배분은 아직 협상 중에 있다. 현재 입법 마무리 단계로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만 남겨둔 상태이며 집행위원회는 6월 4일부터 7월 2일까지 조강국(Melt and Pour, 철강이 최초로 용해되어 초기 고체 형태로 주조된 국가) 증빙 서류 기준 마련을 위한 의견수렴을 진행 중이다.

향후 전망 및 시사점

이번 정상회담은 무역·투자와 공급망, 디지털, 안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양측 간 협력의 전반적인 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경쟁력 파트너십과 고위급 경제대화를 새로 출범시키고 디지털 통상협정 등 여러 협력 문건에 합의함으로써, 향후 협력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제도적 기반이 폭넓게 구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2011년 FTA 발효 이후 이어져 온 한-EU 간 관계를 한층 안정적인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마련된 협력의 틀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후속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MRA와 철강 무관세 쿼터 등 우리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사안은 구체적인 내용이 향후 실무 협상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이에 관련 협정·조치의 세부 규정과 협상 결과가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그리고 산업가속화법(IAA),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우리 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제가 어떻게 구체화될 지 지속 모니터링해야 한다.

출처: EU 집행위원회, 청와대, 한국 외교부, Politico Pro, Border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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