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확산으로 고성능 GPU를 대량 사용하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냉각, 광통신 등 관련 산업에도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GPU 자체보다는 기판·유리섬유·절연재·광통신 등 기존에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를 AI 데이터센터 공급망과 연결하며 성장 기회를 확보하는 모습이다. 향후 GPU의 전력소비와 발열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액체냉각과 광통신 등 주변 인프라 분야의 중요성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일본 AI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 제조업까지 파급

생성형 AI 확산으로 대규모 연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투자가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AI용 데이터센터 구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신문)이 일본의 주요 데이터센터 운영기업 26개사를 조사한 결과, 22개사가 일본 내 AI용 거점 확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AI 데이터센터 수전용량은 2025년 말 약 1.1GW에서 2033년 말 약 4.9GW로 약 4.5배 확대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도 상당하다. 부동산서비스기업 쿠시먼앤드 웨이크필드(C&W)에 따르면 일본에서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평균 약 160억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향후 추가될 약 3.8GW의 데이터센터 건설에만 약 10조 엔에 가까운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AI 서버와 반도체 도입 비용까지 포함하면 전체 투자액은 수십조 엔 규모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닛케이신문은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일본의 AI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주요 국가 가운데 비교적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 닛케이컴퓨터]

이 같은 투자는 데이터센터 건물의 증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많은 GPU를 사용하는 만큼 반도체 기판과 소재, 전력, 냉각, 고속통신 등 다양한 주변 기술을 필요로 한다. 닛케이컴퓨터가 일본 내 데이터센터 사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2026~2030년 24개사가 총 38건의 신설·증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신규 시설의 절반 이상이 액체 냉각에 대응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GPU가 고성능화될수록 이러한 파급효과는 더욱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투자액의 약 30~40%가 GPU 조달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GPU가 대형화·다층화되고 소비전력과 발열이 증가하면서 기판·절연재·유리소재·냉각·광통신 등 GPU 주변 공급망에도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이 가운데 소재·재료와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 다수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어 AI 데이터센터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GPU 고성능화에 반도체 기판·소재기업 ‘특수’

AI 데이터센터 특수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분야는 GPU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 기판과 소재다. AI용 GPU는 단순히 반도체 칩의 성능만 높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반도체 칩(Die, 다이)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패키지 기판의 면적과 배선층이 커지고, 열에 의한 변형이나 배선 간 절연 등 기존에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던 기술적 과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반도체 기판과 유리섬유, 절연소재에 강점을 가진 일본 기업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분야

기업

주요 제품·기술

AI 데이터센터와의 연관성

반도체 기판

이비덴

IC 패키지 기판

GPU 대형화·다층화에 따른 고성능 기판 수요 확대

유리 소재

닛토방적

T글라스크로스

대형 GPU 기판의 열변형 억제

절연 소재

아지노모토 파인테크노

ABF

다층 반도체 패키지용 절연재 수요 증가

광통신·냉각

후루카와전공

광섬유·광통신·수냉 부품

데이터 전송량 및 GPU 발열 증가에 따른 수요 확대

전력 설비

토리시마제작소

발전소용 급수펌프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용 발전소 확대에 따른 수주 증가

[자료: 닛케이컴퓨터, 닛케이신문 등을 토대로 도쿄무역관 작성]

이비덴(Ibiden)은 고성능 반도체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IC 패키지 기판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복수의 다이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제품이 늘어나면서 기판 자체도 대형화·다층화되고 있다. 이비덴은 미세배선과 다층화 기술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AI용 GPU와 ASIC 수요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회사 측은 최근 AI 서버용 기판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생산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패키지>

[자료: 이비덴]

이에 이비덴은 2026년 2월 기후현 오노사업장 등을 중심으로 향후 3년간 총 5000억 엔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약 4000억 엔인 연간 연결 매출을 웃도는 규모다. 이번 투자를 통해 AI 서버용 IC 패키지 기판의 생산능력을 2028년도에 2024년도 대비 약 2.8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증설되는 생산능력에 맞춰 주요 고객이 투자비의 상당 부분을 선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글로벌 AI 기업들이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공급망 투자까지 직접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닛토방적(Nitto Boseki)은 AI 반도체의 대형화로 인한 새로운 기술적 문제를 기존 유리 소재 기술로 해결하고 있다. GPU 패키지 기판은 실리콘과 유기수지 등 열팽창률이 서로 다른 소재로 구성돼 있는데, 기판이 커질수록 온도 변화에 따른 미세한 팽창 차이가 전체 기판의 뒤틀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배선이나 접점이 어긋날 경우 고가의 GPU 전체를 폐기해야 할 수도 있어, 기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소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닛토방적의 특수 유리섬유인 ‘T글라스크로스’는 일반 유리섬유보다 실리콘에 가까운 열팽창 특성을 가져 이러한 변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GPU 기판 내부의 코어층에 적용하면 열이 발생해도 실리콘과 유사하게 팽창·수축해 기판 전체의 뒤틀림을 줄일 수 있다. AI GPU의 대형화·다층화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반도체·클라우드 기업으로부터 주문이 급증했고, 닛토방적 측은 생산 설비 가동 수준이 최대치에 이르렀다고 설명하고 있다. 회사의 시가총액도 2022년 대비 약 9배 수준으로 확대되는 등 AI 데이터센터 확대가 기존 유리섬유 기업의 사업 가치까지 크게 바꾸고 있다.

아지노모토는 식품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AI 반도체용 핵심 소재 분야에서도 높은 존재감을 갖고 있다. 자회사인 아지노모토 파인테크노가 1990년대 아미노산 관련 기초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ABF(Ajinomoto Build-up Film)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 내부의 각 배선층을 절연하는 필름 소재다. 처음에는 PC용 반도체가 주요 사용처였지만, 최근 AI GPU의 성능 향상을 위해 기판이 대형화되고 내부 배선층이 늘어나면서 ABF를 사용하는 층수와 면적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자료: 아지노모토]

AI 반도체 수요 확대는 아지노모토의 사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6년 3월기 아지노모토그룹의 연결 사업 이익 1811억 엔 가운데 ABF 등 전자재료를 포함한 ‘헬스케어 등’ 부문은 662억 엔으로 약 36%를 차지했다. 회사는 2027년 3월까지는 해당 부문의 이익 비중이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 서버를 ‘돌리기 위한’ 광통신·전력 설비에도 수요 확산

AI 데이터센터의 파급효과는 GPU 제조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성능 GPU를 실제 데이터센터에서 가동하려면 서버 사이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해야 하고, 동시에 막대한 전력과 냉각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기존 광통신과 발전설비 분야에서도 AI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GPU가 고성능화될수록 연산능력 자체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고 안정적으로 가동시키는 주변 인프라의 성능이 전체 AI 시스템의 효율을 좌우하게 되고 있다.

후루카와전공(Furukawa Electric)은 AI 데이터센터 확대를 계기로 기존 광통신 기술이 다시 성장 사업으로 부상했다. AI 서버는 수많은 GPU를 동시에 연결해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서버와 서버, 데이터센터와 데이터센터 사이에서 고속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광섬유와 광케이블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광섬유 사업은 과거 일본 내 통신망 구축이 일단락된 이후 수익성이 낮은 사업으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기술 개발을 지속해 온 결과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함께 관련 제품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후루카와전공 측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내부 서버를 연결하는 광섬유가 빠르게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자료: 후루카와전공]

GPU의 발열 증가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고 있다. 차세대 GPU는 기존 공랭 방식만으로 열을 처리하기 어려워지면서 서버에 냉각수를 직접 공급하는 수냉·액냉 방식의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후루카와전공은 수냉 관련 사업에서 2030년까지 현재 대비 15배의 이익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에 CPO(Co-Packaged Optics)와 외부 광원(ELS) 등 차세대 광통신 기술의 시장 형성 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약 2년 빨라질 것으로 보고 개발과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회사는 2031년 3월까지 5년간 총 6500억 엔을 투자할 계획이며, 이 가운데 80% 가까이를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토리시마제작소(Torishima Pump)의 사례는 AI 데이터센터 특수가 얼마나 넓은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회사의 주력 제품은 발전소에서 보일러 등에 물을 공급하는 대형 급수펌프로, AI나 반도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면서 북미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신규 발전소 건설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발전소용 펌프 수요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토리시마제작소의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용 발전소 관련 수주 잔고는 현재 약 100억 엔 규모로 확대됐다. 회사에 따르면 3~4년 전에는 20억~30억 엔 정도였던 만큼 불과 몇 년 사이 3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AI 데이터센터 확대가 GPU와 서버 수요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고, 다시 발전소 건설과 산업용 설비의 주문으로 이어지는 연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사례다.

‘새로운 AI 기술’보다 기존 강점을 AI 공급망에 연결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AI 시장이 성장한 뒤 갑자기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비덴은 반도체 기판, 닛토방적은 유리섬유, 아지노모토는 기능성 소재, 후루카와전공은 광통신, 토리시마제작소는 발전소용 펌프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기술과 생산능력을 축적해왔다. AI 데이터센터의 확대가 기존 기술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이들이 보유한 경쟁력이 AI 인프라의 핵심 요소로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GPU가 세대교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기술적 과제가 발생한다는 점도 제조기업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GPU 기판이 커지면서 휨을 방지하는 소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소비전력과 발열이 늘면서 냉각장치가 필요해지며, 처리 데이터가 증가하면서 광통신의 성능도 높아져야 한다. 즉 AI 데이터센터의 성장 자체뿐 아니라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발생하는 새로운 ‘병목’을 기존 제조기술로 해결하는 기업이 공급망에서 새로운 위치를 확보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글로벌 AI 공급망에 참여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닛케이컴퓨터에 따르면 최근 엔비디아나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가 기존 거래 단계를 건너뛰고 냉각·광통신·소재기업에 직접 접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차세대 GPU의 사양이 완성된 이후 제품을 공급하는 것보다, 사양이 정해지는 초기 단계부터 고객과 기술협의를 진행하는 것이 공급망 경쟁력으로 연결되고 있다.

시사점

향후 GPU의 고성능화와 함께 전력소비와 발열, 데이터 전송량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액체냉각, 전력관리, 광통신 등 주변 인프라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AI 데이터센터 시장의 사업기회 역시 GPU 중심에서 이를 안정적으로 제조·운영하기 위한 소재·부품·설비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 H사의 T부장은 유선 인터뷰를 통해 “일본 기업들은 검증된 기존 기술을 AI 데이터센터용으로 확장하는 접근을 선호하는 만큼, 한국 기업도 단순 제품 판매보다 일본 기업의 기존 설비·기술과 결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도 일본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GPU나 완성형 데이터센터 사업 중심으로만 바라보기보다, 냉각·열관리, 고밀도 전력관리, 광통신, 데이터센터 운영·모니터링, 관련 소재·부품 등 자사가 보유한 기술을 AI 인프라의 새로운 수요와 연결하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 기업이 이미 강점을 가진 하드웨어·소재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을 제시하고, 현지 기업과의 공동개발이나 실증을 통해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AI 인프라 공급망에서는 완성된 제품을 납품하는 단계뿐 아니라 차세대 GPU와 데이터센터의 사양이 결정되는 초기 단계부터 고객과 기술을 공동 검토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 기업 및 데이터센터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 초기부터 공급망에 참여하고, 이를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 진출로 연결하는 중장기적인 접근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료: 닛케이컴퓨터, 니혼게이자이신문, 이비덴, 닛토방적 등 각 사 자료를 토대로 KOTRA 도쿄무역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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