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프라인 백화점·대형매장에서 ‘싸게 살 수 있는 곳’보다 ‘직접 찾아가고 싶은 곳’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이마루·마쓰자카야백화점과 파르코 등을 운영하는 J.프론트 리테일링 그룹의 상업시설 파르코와 최근 KOTRA나고야무역관과 협업한 중부지역 최대 규모 백화점 JR나고야 다카시마야다.

파르코는 1970년경부터 약 50년간 여름철 대표 판촉 행사로 진행해온 대형 세일 ‘그랑바자르’를 2026년 처음으로 중단했다. 기존 일본 백화점과 상업시설은 여름철 대규모 할인행사를 주요 판촉 수단으로 활용해왔지만, 파르코는 가격 할인 대신 인기 IP와의 협업과 점포별 독자 기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성과도 눈에 띈다. 파르코의 2026년 7월 입점 매장 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3.6% 증가했다. 올해 6월 나고야에 문을 연 신규 상업시설 HAERA(하에라)의 매출이 포함돼 있어 개업 효과가 일부 반영됐지만, 기존 파르코 15개 점포 역시 모두 전년 동월 실적을 웃돌았다. 특히 의류 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9% 증가했다. 반면 대형 세일을 실시했던 2025년 7월에는 의류 매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1.9% 감소했다.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가 움직인다는 오랜 유통업계의 공식이 이전만큼 강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 유통의 공식이 바뀐다, 없어지는 세일 행사

파르코가 그랑바자르 중단을 결정한 배경에는 소비자의 구매 시점과 소비 동기의 변화가 있다. 일본 유통업계에서는 전통적으로 2월과 8월을 매출이 둔화되는 시기로 보고 ‘니파치(二八)’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2025년 파르코에서는 전 점포의 8월 입점 매장 매출이 대형 세일을 진행한 7월을 웃돌았다. 8월에 별도의 전 점포 캠페인을 실시한 영향도 있었지만, 비수기로 여겨지던 8월 실적이 7월보다 높았다는 점은 기존 판촉 전략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가와세 겐지 파르코 사장은 최근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 자체보다 재미있는 기획이나 매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에 더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할인보다 매장을 방문할 계기와 현장에서의 경험이 소비를 이끄는 요인으로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길어진 여름도 계절 세일의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다. 더운 날씨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계절 변화에 맞춰 의류를 구매하던 소비 패턴이 약해지고, 특정 시점에 여름 상품을 할인해 재고를 소진하는 기존 판매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입점 의류업체 역시 원재료비와 물류비 상승분을 가격에 계속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재고를 줄이고 정상가격 판매 비중을 높여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 기준과 판매업체의 재고 전략이 함께 달라지면서 대형 세일에 의존하던 일본 유통업계의 판촉 방식도 재편되고 있다.

‘재미있으니까 간다’, 달라지는 소비자들의 방문 동기

파르코가 주목한 것은 소비자가 매장을 찾는 계기의 변화다. 가와세 사장은 최근 소비행동을 “놀이공원에 다녀온 뒤 기념품을 사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표현했다. 특정 상품 구매를 목적으로 매장을 찾기보다 재미있는 행사나 볼거리를 계기로 방문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 선택 기준도 가격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의류업계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고 판매 시의 가치까지 구매 판단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가격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지면서 상품을 구매할 분명한 이유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확산도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가격과 상품 정보를 쉽게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한 상품 판매만으로 방문을 유도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일본 대형 유통망은 가격 할인보다 콘텐츠와 이벤트, 지역 특색 등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강화해 매장 방문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판촉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치이카와’를 만나러 파르코에 간다, 캐릭터 IP의 힘

파르코가 올해 여름 그랑바자르를 대신해 내세운 대표적인 기획은 인기 캐릭터 ‘치이카와’와의 협업이다.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전국 파르코 15개 점포에서 ‘치이카와, 파르코, 여름’ 캠페인을 진행하고, 영화 개봉과 연계한 포토부스와 점포 내 참여형 이벤트 등을 운영했다. 이는 가격 할인 대신 인기 콘텐츠를 활용해 매장 방문의 계기를 만들려는 전략이다. 파르코 역시 7월 실적 증가의 배경으로 ‘치이카와’ 협업 캠페인과 점포별 여름방학 기획을 언급했다.

IP 활용은 단기 행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케부쿠로 파르코는 대규모 리뉴얼을 통해 본관 지하 2층에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매장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주간 소년 점프』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JUMP SHOP과 ‘치이카와랜드’ 등을 유치해 콘텐츠 중심의 매장 구성을 강화했다. 시부야와 나고야 파르코에서도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전문점이 집객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콘텐츠를 통해 방일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도 유도하고 있다.

의 치이카와 기획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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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파르코]

지역마다 다른 ‘갈 이유’를 만든다

파르코의 변화는 IP 활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거에는 도쿄의 패션과 문화를 지방도시에 소개하는 방식으로 점포망을 확대했지만, 역세권 상업시설과 대형 쇼핑몰, 전자상거래가 성장하면서 전국에 비슷한 점포를 운영하는 방식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이에 파르코는 ‘보편성·독자성·지역성’을 기본 방향으로 정하고 입지와 고객 특성에 따라 점포 구성과 운영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지역 밀착형 점포인 우라와 파르코에는 식품 슈퍼마켓과 가전양판점, 서점, 생활용품점 등 일상 수요와 밀접한 매장이 입점해 있으며, 연간 약 170건의 행사와 사이타마현 내 기업이 참여하는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다. 기치조지 파르코 역시 지역의 음악·영화 문화에 맞춰 레코드 매장과 소규모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가와세 사장은 “시부야점에서 성공한 것을 다른 점포에 그대로 가져가면 되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에 같은 매장과 행사를 적용하기보다 지역 소비자의 생활방식과 취향에 맞춰 점포별 기획을 차별화하는 것이 파르코 전략의 핵심이다.

이러한 전략 속에서 파르코의 2025년도 전체 15개 점포 입점 매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 증가한 3,455억 엔으로 3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부야와 우라와, 센다이 등 7개 점포도 각각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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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파르코]

‘한국의 귀여움’을 테마로 승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테마를 먼저 제시하고 이에 맞춰 상품을 구성하는 방식은 한국 소비재를 소개하는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나고야시의 주요 백화점인 JR나고야 다카시마야는 KOTRA 나고야무역관과 협업해 2026년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9층 이벤트 공간에서 ‘ちょこっと韓国(살짝 즐기는 한국)’ 팝업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다양한 한국 제품을 한데 모으기보다 ‘한국의 귀여움’이라는 주제에 맞춰 생활잡화와 디자인 상품을 선별해 구성했다.

행사에는 ‘떡국누나’의 강아지 오브제와 반지·귀걸이 등 액세서리, ‘리빙 크리에어터’의 샐러드 도시락 용기, ‘코토나’와 ‘모머위켄드’의 타월 제품 등이 참여했다. 품목은 서로 달랐지만 귀여운 디자인과 부드러운 색감,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라는 공통된 콘셉트로 매장을 구성했다.

특히 ‘떡국누나’의 강아지 오브제가 행사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강아지 오브제 제품 단가는 약 1,700~3,500엔대로 소형 생활잡화 가운데 비교적 높은 편이었지만, 제품을 직접 본 방문객의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구매가 꾸준히 이어졌다. 현장 반응을 종합하면 단순한 실용품보다 강아지의 표정과 형태를 살린 독특한 디자인, 작은 크기에서 오는 소장성, 인테리어 소품과 선물용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구매를 이끈 요인으로 보인다. 또한 제품을 처음 보는 소비자도 특징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시각적인 개성이 뚜렷해, 별도의 설명 없이도 관심을 유도하기 쉬웠다.

실제 일본 소비자의 긍정적인 반응은 판매액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 종료일인 8월 25일까지 일주일간 매출액은 KOTRA 나고야무역관 내부 집계 기준 약 330만 엔(약 2,855만 원)을 기록했다. 백화점 내 한정된 공간에서 일주일간 운영한 소규모 팝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한된 기간과 공간에서도 꾸준한 구매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KOTRA 나고야무역관의 협업과는 별개로, 같은 ‘ちょこっと韓国(살짝 즐기는 한국)’ 행사에 참가한 ‘리빙크리에이터’의 샐러드·과일 보관용기 ‘지켜팟’도 현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일본에서 흔히 판매되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샐러드 용기와 달리, 심플하고 귀여운 디자인에 내용물에서 발생하는 수분을 분리하는 구조를 적용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아침에 준비한 샐러드를 점심에 먹을 때 채소가 눅눅해지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현장에서는 시각적인 디자인과 함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불편을 개선한 기능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고야 다카시마야에서 열린 ちょこっと韓国(살짝 즐기는 한국) 팝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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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나고야무역관 촬영 및 각 사 홈페이지]

시사점

일본 대형 유통망에서는 가격 할인보다 소비자가 매장을 방문할 계기를 만드는 기획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가격 비교와 구매가 일상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콘텐츠, 이벤트, 지역 특색 등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활용해 방문 수요를 만들고 있다.

파르코는 이러한 변화를 IP 협업과 지역 맞춤형 점포 운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치이카와’와 같은 인기 콘텐츠를 방문 동기로 활용하고, 지역별 소비 특성에 따라 매장 구성과 행사를 달리하고 있다. 약 50년간 이어온 대형 세일을 중단한 이후에도 매출이 증가했다는 점은 할인 중심의 판촉에서 기획 중심의 집객으로 유통 전략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획의 규모보다 주제와 상품의 연결성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KOTRA 나고야무역관과 JR나고야 다카시마야가 협업한 ‘ちょこっと韓国(살짝 즐기는 한국)’은 ‘한국의 귀여움’이라는 주제에 맞춰 생활용품과 디자인 상품을 선별했다. 일주일간 운영된 소규모 팝업에서도 실제 구매가 이어지면서 명확한 콘셉트와 상품 구성이 소비자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 시장에서 한국 소비재를 소개하는 방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제품의 가격보다 소비자가 상품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 취향, 활용 장면을 제시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특히 떡국누나 사례에서는 일본 소비자가 선호하는 ‘카와이(かわいい)’ 감성과 일상 공간에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소형 생활소품이라는 특성이 가격 저항을 낮추고 구매로 이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주목하면 좋을 것이다.

자료: 파르코, JR나고야 다카시마야 홈페이지 및 나고야무역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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