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북부 노이다(Noida), 라자스탄 비와디(Bhiwadi), 남부 스리페룸부두르(Sriperumbudur), 오라가담(Oragadam)이 글로벌 가전 제조벨트로 자리 잡으면서 곳곳에 냉방기기 제조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스리시티(Sri City)는 인도의 에어컨 제조 허브(AC Manufacturing Hub)로 떠오르며 ‘인도의 쿨링 시티’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료: Times of India]

폭염이 일상화된 인도, 에어컨 내수시장 급성장

스리시티를 포함한 주요 에어컨 제조벨트들이 성장한 배경에는 인도 내수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과거 에어컨은 고소득층의 사지품으로 여겨졌지만,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생존을 위한 ‘생활 필수 가전’으로 빠르게 재정의되고 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하이데라바드·첸나이·콜카타·뭄바이 등 인도 주요 도시의 여름철(3~5월) 평균 최고기온은 최근 10년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내륙 도시인 델리는 2024년 평균 최고기온이 40℃를 넘었으며, 해안 도시인 첸나이조차 38℃에 육박하는 고온 현상이 반복되면서 전국적인 냉방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 인도 주요 도시 여름철(3~5월) 평균 최고기온 추이 >

[자료: 인도기상청(IMD, India, Meteorological Department)]

2026년 4~5월 인도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였다. 현지 매체들이 실시간 기온 순위 사이트 (AQI.in)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5월 22일 기준 지구에서 가장 더운 100대 도시 중 97곳이 인도였으며,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상위 50대 도시는 모두 인도 도시들이 차지했다.

이처럼 전례 없는 폭염과, 급격한 도시화,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 증가에 힘입어 인도 에어컨 시장은 고성장세를 시현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인도의 에어컨 소매 판매량은 2025년 기준 1,330만대에 달해 전년 대비 14%나 증가했다.


< 인도 에어컨 소매 판매량 및 전망(2011~2030) >

(단위 : 천 대)

[자료: Euromonitor]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시장의 축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5년 전세계 에어컨 소매 판매 대수는 총 1억9,258만 대로 집계되었다. 이 중 중국이 1억396만 대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인도가 1,330만대로 확고한 세계 2위 시장으로 도약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시장의 미래 성장성이다. 2025~2030년 중국 에어컨 시장의 연평균 예측 성장율은 -1.6%로 역성장이 예상되는 반면, 인도는 11.0%에 달하는 쾌속 성장이 전망된다.


기록적인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도의 에어컨 보급률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보급률이 90%를 넘어서는 미국, 일본, 60% 이상인 중국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로, 인도 냉방시장이 이제 막 팽창을 시작하는 ‘초기 성장 단계’임을 시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Energy Efficiency 2023’ 보고서를 통해 인도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냉방시장’으로 평가한 바 있다. IEA는 일평균 기온 상승과 에어컨 보급 확대로 인도의 최대 전력수요가 매년 약 4%씩 치솟고 있으며, 향후 인도 전역의 에너지 소비와 전력 피크를 견인하는 핵심 주체가 냉방 기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 전세계 에어컨 소매 판매 현황 및 인도가 차지하는 위치 (2025) >

(단위 : 천 대)

[자료: Euromonitor]


인도 정부의 백색가전 정책 동향


이러한 내수 시장의 팽창에 발맞추어, 인도 정부는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에어컨 산업을 국가 핵심 제조 및 수출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지원책은 2021년 4월 연방 내각의 승인을 거쳐 전격 도입된 '백색가전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제도다. 이 제도는 단순 완성품 조립을 넘어 컴프레서(압축기), 모터, 구리 튜브, 열교환기, 인쇄회로기판(PCB) 등 에어컨 핵심 부품을 인도 현지에서 생산하는 기업에게 매출 증가분의 4~6% 현금 인센티브로 환급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인도 상공부의 2026년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85개 기업이 PLI 수혜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인도 정부는 이를 통해 에어컨 부품의 현지 부가가치 창출 비율(DVA, Domestic Value Addition)을 기존 20%대에서 향후 75~80% 수준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 인도 백색가전 PLI 차수별 주요 선정 기업 현황 >

심사차수

발표시점

주요선정기업

주요생산품목

1차

2021년 11월

다이킨, 파나소닉, 하벨스, 볼타스, 블루스타, 앰버 엔터프라이즈, 딕슨 테크놀로지스 등

에어컨 완제품 및 핵심 부품(컴프레서, 모터 등), LED 조명 및 부품

2차

2022년 6월

LG전자, 미쓰비시 전기, 아다니 카퍼 튜브, 위프로 엔터프라이즈 등

고효율 에어컨 부품(컴프레서, 제어기), 구리 튜브 등 원자재, LED 조명

3차

2025년 1월

다수의 중견 부품사 및 LED 소재 기업

1, 2차에서 부족했던 에어컨 및 LED 관련 중소형 부품 및 소재

4차

2026년 1월

키를로스카 뉴매틱, 고드레지 보이스, 인도 아시아 카퍼, 프라나브 비카스, 크리온 테크놀로지 등

컴프레서, 모터, 열교환기, 구리 튜브, 제어 회로(PCBA) 등 핵심 부품

[자료: 인도 공보국(PIB), KOTRA첸나이무역관 재정리]

동시에, 냉방 수요 급증으로 인한 전력망 과부하를 방지하기 위해 기기 에너지 효율 규제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인도 에너지효율국(BEE)은 신규 출고 에어컨의 기본 설정 온도를 24°C로 의무화한 데 이어, 최근 기기의 물리적 작동 범위를 20°C~28°C로 하드웨어적으로 제한(Hardwiring)하는 제재 조치 도입을 발표한 바 있다(2026년 8월 시점에서 아직 시행 전). 또한, 2026년 1월 에어컨 에너지 효율(ISEER) 평가 표준 기준을 일제히 상향 고시했다. 이 조치로 인해 기존에 5성급(5-Star) 최고 효율 등급을 받았던 제품들이 4성급으로 무더기 강등되는 등 시장 진입 기준이 대폭 까다로워졌다. 이로 인해 에어컨 제조사들은 최고 등급 지위를 유지하고 판매량을 방어하기 위해 전력 소모를 차단하는 고효율 인버터(Inverter) 기술 및 친환경 냉매 탑재가 불가피해졌다.


결과적으로,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유도하는 PLI 제도와 BEE의 강력한 에너지 규제가 병행됨에 따라, 저효율 수입산 저가 제품의 시장 진입은 자연스럽게 차단되고 있다. 인도의 에어컨 산업은 단순 조립 단계를 벗어나 고부가가치 친환경 냉방 기기를 생산하는 선진 제조 생태계로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인도 에어컨 시장 경쟁 동향 프리미엄(고효율·AI) 기술 트렌드


현재 인도 에어컨 시장은 상위 3개 제조사가 전체 소매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약 49%)를 차지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인도 로컬 브랜드인 볼타스(Voltas)가 19%의 점유율로 선두를 수성한 가운데, LG전자(17%)와 다이킨(13%)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며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선도 기업 간의 점유율 쟁탈전은 최근 인도 소비 시장을 관통하고 있는 ‘고효율’과 ‘스마트(AI)’라는 두 가지 핵심 트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 인도 에어컨 소매 판매 브랜드별 시장 점유율(2025) >


[자료: Euromonitor]


무엇보다 극심한 폭염 속에서 ‘전기료 절감’이 최우선 구매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전력 소모와 소음이 적은 분리형(Split) 에어컨은 2025년 전체 판매량(1,330만 대)의 대부분인 1,300만 대를 기록하며 시장의 주력 제품군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점유율 1위인 볼타스(Voltas)는 다양한 기후 조건에서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는 5성급 인버터 에어컨(Vectra 시리즈)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한편, LG전자는 실시간 전력 소비 목표 설정과 절감 효과 모니터링이 가능한 'ThinQ 앱'을 선보였으며, 에너지 절약 기능에 관심이 높은 프리미엄 수요층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단순 냉방 성능 외에 AI 및 친환경 기술을 적용한 제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블루스타는 힌디어와 영어 음성 제어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AI 모델 40여 종을 출시하여 폭넓은 소비자층 확보에 나섰다. 또한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연동 및 AI 에너지 모드로 전력 사용량을 최대 30% 절감하는 '맞춤형 AI 윈드프리' 시리즈를 선보이며 프리미엄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있다. 캐리어미디어 역시 친환경 냉매와 향상된 공기정화 필터를 적용한 신제품을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고도화된 에너지 효율성과 향상된 사용자 편의성이 향후 인도 에어컨 시장 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임을 시사한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기반 글로벌 냉방 공급망의 생산거점화


치열한 내수 경쟁 속에서 성장한 인도의 냉방기기 제조 역량은 이제 거대한 내수시장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인도가 단순한 내수용 생산기지를 넘어 글로벌 냉방기기 공급을 위한 생산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스리시티(Sri City)는 대규모 제조시설과 부품 공급망이 집적되면서 이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장 선도적인 사례는 LG전자와 다이킨(Daikin)이다. LG전자는 스리시티 내 247에이커 부지에 약 6억 달러(5,000크로르 루피)를 투자해 인도 내 세 번째 대규모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25년 5월 착공하여 2026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이 공장은 향후 연간 에어컨 150만 대와 컴프레서 200만 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냉장고·세탁기까지 포함한 종합 가전 생산시설로 구축되는 만큼, LG는 이를 통해 인도 내수시장 대응력을 높이는 동시에 중동과 남아시아 등 해외 수요에도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 LG전자 인도 신공장 조감도 >

[자료: LG그룹]


다이킨은 한발 앞서 스리시티에 75.5에이커 규모의 제3공장을 구축하고 2023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약 1억 달러(1,000크로르 루피)가 투자된 이 생산거점은 연간 에어컨 150만 대와 컴프레서 300만 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에어컨 완제품과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를 한곳에서 생산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여 물류 효율을 극대화했으며,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해외 시장으로 영토를 넓히는 주요 수출 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가정용 에어컨을 넘어 산업용 공조(B2B) 분야에서도 글로벌 거점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공조 기업 캐리어(Carrier)는 2026년 5월 스리시티에 1억 달러(1,000크로르 루피) 규모의 대형 제조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약 39에이커 규모로 조성되는 이 시설에서는 대형 칠러(Chiller) 등 첨단 냉각 솔루션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인도가 단순 가정용 가전을 넘어 데이터센터, 상업시설용 고부가가치 냉각 설비의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사점

인도의 에어컨 산업은 폭염과 도시화에 따른 내수시장 확대를 기반으로 완제품 중심의 생산에서 핵심 부품과 냉각설비를 포함한 제조 생태계로 범위를 넓혀가는 모습이다. PLI를 통한 부품 현지화와 에너지효율 기준 강화가 병행되는 가운데, LG전자·다이킨 등 주요 가전기업의 생산능력 확대와 Carrier의 산업용 냉각설비 투자까지 이어지면서 인도의 냉방산업 기반이 점차 고도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스리시티에 가전·공조 분야의 대규모 생산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인도가 단순히 에어컨 수요가 큰 시장을 넘어 글로벌 기업의 생산 및 공급 거점으로 활용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향후에는 인도 내수시장 성장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 등 인접시장으로의 수출 확대 여부와 함께, PLI에 따른 컴프레서·모터·열교환기 등 핵심 부품의 현지 조달 확대가 인도 냉방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 인도 상공부(DPIIT), 인도 전력부 에너지효율국(BEE), 인도 기상청(IMD), AQI.in, 국제에너지기구(IEA), Euromonitor, Times of India 등 현지 언론 보도, 주요 기업(LG전자, Daikin, Carrier 등) 공식 발표자료 및 KOTRA 첸나이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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