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로아티아 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현장에서 체감하는 시장 환경 역시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노동력 부족, 재생에너지 확대에 비해 뒤처진 전력망,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에너지·국방 공급망 재편이다. 이러한 변화는 각각 독립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노동력 부족은 임금과 서비스 비용을 끌어 올리고, 높은 인건비는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 수요를 확대한다. 태양광과 풍력 투자는 늘고 있지만 노후 전력망과 저장 능력 부족이 신규 투자를 지연시키고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 축소와 유럽의 안보 환경 변화는 송유관, 정유시설, 방산 장비, 조선 및 첨단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과거의 저임금·소규모 소비시장에서 노동력, 전력망, 안보라는 구조적 병목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형 시장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외국인력은 필수가 되었지만 채용과 정착은 난항
크로아티아의 외국인 노동정책은 지난 수년간 빠르게 변해왔다. 건설, 관광, 외식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노동력 부족이 제조업, 유통, 물류까지 확산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산업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2025년 크로아티아에서 거주·근로 허가를 받아 일한 외국인 노동자는 약 17만 명에 이른다. 외국인 노동자가 빠르게 증가했던 2022~2023년에는 2026년까지 최대 50만 명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었지만 최근에는 그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수요처였던 건설업의 외국인 노동자 수가 전년 대비 약 30% 감소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는 노동력 수요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외국인 고용 기준 강화, 허가 처리 지연, 채용 비용 상승, 유럽 전반의 이주정책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2025년 외국인 체류 및 허가 발급 현황>

[자료: 크로아티아 내무부]
2026년 4월, 정부는 외국인법 개정안을 채택해 의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EU의 이주·난민 협약과 단일 허가 절차 지침을 이행하는 동시에 외국인 근로자 보호와 고용시장 관리를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주요 내용에는 체류 1년 후 크로아티아어 A1.1 수준 시험 의무화, 실업 허용 기간 확대, 최초 6개월 이후 고용주 변경 허용, 동일 고용주 내 직종 변경 절차 완화,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한 행정 소통 도입 등이 포함되었다. 계절근로 허가는 최대 3년까지 유효토록 하면서 실제 근무는 허가된 지역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조정했다. 고용주에 대한 규정도 강화되었는데 내국인 고용 비율 기준이 높아지고, 임금과 거래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계좌 입금 증빙 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12개월로 확대된다. 근로계약 종료 시 경찰 통보 의무는 근로자에서 고용주로 이전되고 외국인 근로자는 계약 종료 후 5일 이내 크로아티아 고용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정책의 방향이 외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데서 벗어나 누가, 어느 기업에서, 어떤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관리하는 체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허가 지연과 행정 부담이 기업 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불만이 높다. 실제로 한 사업자가 4월 말 신청한 취업허가는 7월 중순 또는 8월 초에야 승인되고 있다며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채용을 추진했지만 허가 전에는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없고 승인 대기 기간에도 숙소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등 매년 동일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거 외국인 노동자는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임금 수준이 거의 비슷해진 점도 큰 장애요소이다. 인건비는 최근 수년간 30% 상승한 반면 매출 100유로당 약 50유로가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고 교통, 행정대행, 채용 수수료 역시 함께 상승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더라도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빠른 임금 상승만큼 생활 수준은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2023년 유로화 도입 이후 평균 임금은 26% 오른 반면 장바구니 가격은 50%나 상승했다. 가계가 장바구니 구매에 사용하는 임금 비중은 10년전인 2015년 38%에서 2025년에는 43%로 높아졌다. 평균 임금 자체는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구매력은 오히려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주거비 부담도 커졌다. 2025년 8월 기준 자그레브의 평균 월세는 약 650유로로 전년 대비 8% 상승했으며, 40㎡ 규모 원룸이나 소형 아파트 임대료는 통상 500~700유로에 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해도 근로자의 생활비 부담이 줄지 않아 인력 이탈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병목, 이제는 전력망
노동시장과 함께 크로아티아 경제의 또 다른 병목은 전력망이다. 크로아티아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잠재력이 높은 국가로 평가될 만큼 최근 수년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전력 생산설비 확대 속도를 송전망과 배전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신규 발전소의 계통 연결 지연이 심화되고 있다. 에너지규제기관 HERA는 2026~2035년 송전망 개발계획에서 일부 지역이 이미 용량 한계에 근접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 증가, 국제 전력의 통과 물량 확대, 노후화된 송전선과 변압기 등으로 분석되었다. 현재 전력망 손실률은 8.2%로 EU 평균인 약 6%를 웃돈다. 한편, 스마트미터기 설치율은 약 60%에 그쳐 보급률이 100%에 가까운 인근 이탈리아나 슬로베니아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크로아티아 사용자협회는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중 60건 이상, 총 30억 유로 규모의 투자가 허가와 계통 연결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슬라보니아, 북부 크로아티아, 달마티아의 농촌과 소도시에서는 태양광 발전설비의 신규 연결이 제한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크리제브치 지역에서는 일부 가정이 지붕형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도 기술적 조건 때문에 전력망에 연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연결문제는 대도시와 산업지역보다는 전력 소비가 적고 재생에너지 생산 잠재력이 큰 외곽 지역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향후 10년간 송전망 투자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세부적인 사업으로는 신규 400kV 송전선과 110kV 변전소 건설, 멜리나·이스트리아·두브로브니크 지역 송전망 강화, 콘이스코와 툼브리 구간의 400kV 복선 송전선 구축 등이다. 이 계획은 노후 송전선을 교체하고 변전소를 현대화하는 동시에 ICT 기반 전력관리 시스템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전력 흐름과 계통 안정성을 높이는 계획도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발전량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현재 저장 능력 부족과 계통 제약으로 전체 전력 수요의 약 2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배터리 저장용량을 충분히 확대할 경우 전기요금을 2030년까지 25%, 2040년까지 33% 낮출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부 역시 현재 가정용 태양광과 히트펌프 지원을 배터리 저장장치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크로아티아 전력공사 HEP는 향후 2년간 약 8991만 유로 규모의 전력 기자재 조달을 추진할 계획이다. 조달 물량은 에너지 효율형 변압기 2683대와 케이블 약 8800㎞로 변압기 조달 예산은 약 5098만 유로, 케이블 하네스는 1433만 유로, 배전용 4심 케이블은 약 2461만 유로로 예정되어 있다.
<크로아티아 송전망 현황 및 10개년 투자계획>

[자료: 크로아티아 경제부]
한편, 국내 원유 매장량과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송유관, 저장시설, 정유공장의 전략적 중요성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원유 매장량은 2020년 약 773만 톤에서 2024년 약 422만 톤으로 크게 감소했다. 원유 생산량도 같은 기간 약 62만 톤에서 54만 톤으로 줄어들면서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 원유 매장량이 약 10년 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영 원유 운송기업 JANAF는 크르크섬 오미샬리 터미널에서 시작하는 총 631㎞의 송유관과 약 210만㎥ 규모의 원유 저장시설을 운영 중이다. 크로아티아뿐 아니라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주변국에 원유를 공급할 수 있고 송유관의 설계 수송능력은 연간 약 3400만 톤으로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를 줄이려는 중부유럽 국가들에 대체 공급 경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헝가리 MOL 그룹을 대상으로 비러시아산 원유 공급을 확대하고 있고 저장탱크와 터미널 인프라 추가 투자도 추진 중이다. 국영 석유·가스기업 INA도 리예카 정유공장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약 7억 유로가 투입된 중질잔사 처리시설은 2026년 전면 가동을 목표로 디젤 생산량을 최대 30% 늘리고 다양한 종류의 원유를 처리할 계획이다. 이는 크로아티아의 에너지 전략이 재생에너지, 송전망, 배터리뿐 아니라 원유 수입, 저장, 운송, 정유 능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다층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크로아티아 전력산업에는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현지기업이 존재한다. 1921년 설립된 콘차르(KONČAR)는 변압기, 발전기, 전기기계, 철도차량, 전력 시스템을 생산하는 대표 기업이다. 현재까지 약 50만 개의 변압기를 생산했고 약 120개국에 공급했다. 수력발전기 분야에서도 전 세계 40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며 2025년 KONČAR 그룹 매출은 11억 유로를 넘어섰다. 주요 시장은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으로 매출의 70% 이상을 수출에서 창출해 냈다.
데이터센터 등 대형 전력 수요처가 새로운 투자 압력, 안보 투자도 새로운 산업정책으로
전력망 투자 필요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은 대형 전력 수요처의 등장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논의되고 있다. 판테온 데이터센터 계획은 2027년 착공,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향후 약 1GW 규모의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신규 400kV 송전망, 약 300㎞의 송전선, 대형 변전소, 배터리 저장시설 구축이 필요하며 이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약 2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조달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현재는 사업초기 단계로 향후 투자 규모와 일정은 향후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데이터센터와 산업시설이 크로아티아 전력망에 추가적인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분석된다. 전력망 연결, 에너지저장, 비상전원, 데이터센터 에너지 관리 솔루션이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
유럽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크로아티아의 국방정책과 산업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EU의 SAFE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 17억 유로 규모의 국방 차관을 활용할 계획이다. SAFE는 EU 회원국의 긴급한 국방 투자를 공동조달 방식으로 지원하는 총 1500억 유로 규모의 금융수단으로 크로아티아가 제출한 투자계획에는 Leopard 2A8 전차, Caesar 155㎜ 자주포, TATRA 군용트럭, 탄약 공동조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차관은 최장 45년 만기, 원금 상환 유예기간 10년의 장기·저리 조건으로 제공되고 2030년 말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장비 교체를 넘어 크로아티아군의 육·해·공 전력을 장기간에 걸쳐 현대화하는 계획으로 평가되며 향후 전차와 자주포뿐 아니라 방공체계, 해군 초계함, 통신, 감시정찰, 정비·유지보수 분야의 후속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최근 방산 조달에서는 제품 가격과 성능뿐 아니라 현지 생산, 기술이전, 유지보수, 부품 공급, 현지 기업과 조선소의 참여가 중요한 평가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오랜 조선산업 전통과 숙련된 엔지니어, IT 및 전기전자 기반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함정, 방공체계, 군용차량 사업에서도 현지 조립과 정비, 기술교육, 부품생산을 포함한 산업협력 제안이 수주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자료: 각 기관 홈페이지]
시사점
크로아티아 경제는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성장 과정에서 노동력 부족, 높은 생활비, 전력망 용량 한계, 에너지 안보와 같은 구조적 병목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병목은 기업 운영비용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시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채용 자체보다 숙련 인력을 유지하고 정착시키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은 급여 뿐 아니라 숙소, 언어교육, 행정, 조직 적응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조·물류 자동화, 무인 주문·결제 등의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발전설비보다 전력망, 저장장치, 변압기, 케이블, 스마트그리드가 핵심 투자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대형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송전망과 배터리에 대한 투자 필요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다만 크로아티아에는 KONČAR와 같은 경쟁력 있는 전력기업이 존재하므로 한국 기업은 단순 완제품 수출보다는 현지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 핵심 부품 공급, 배터리·디지털 기술 결합, 유지보수 협력을 검토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국방과 전략산업 분야에서도 현지 파트너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EU 공동조달과 SAFE 금융을 활용하는 사업은 역내 조달, 현지 생산, 기술이전 조건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기업은 장비 판매에만 집중하기보다 현지 조립, 장기 유지보수, 인력교육, 부품 공급망을 포함한 패키지형 진출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에너지, 전력망, 데이터센터, 방산 분야는 서로 다른 산업으로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국가안보 또는 필수 서비스와 연관되어 있고 장기간의 운영과 유지보수, 현지 인력 교육, 기술이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크로아티아 시장의 중심이 단순 소비재 수입에서 전략 인프라와 산업 프로젝트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국 크로아티아 시장은 단순 소비재 중심 시장에서 전략 인프라와 산업 프로젝트 중심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앞으로는 자동화, 전력망 현대화, 에너지저장장치, 데이터센터, 방산 협력과 같은 프로젝트 기반 분야가 우리 기업의 새로운 진출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 크로아티아 내무부, EU 집행위원회, Eurostat, 현지 주요 언론, KOTRA 자그레브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