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배경: 비전염성질환 증가와 초가공식품 소비
파키스탄은 당뇨병, 고혈압 등 식습관 관련 비전염성질환(NCD)의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국립심장협회(PANAH)를 비롯한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러한 질환 증가의 상당 부분이 나트륨(소금), 당류,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비당류감미료 함유량이 높은 초가공식품·음료 소비 확대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보건서비스규제조정부(NHSRC)는 국회 보건상임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국제 모범사례에 부합하는 초가공식품·음료 전면경고표시제(Front-of-Pack Warning Label, FOPWL) 도입 제안서를 파키스탄표준품질관리청(PSQCA)에 제출했다. 공중보건 진영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을 초과하는 당류·포화지방·트랜스지방·나트륨 또는 비당류감미료를 함유한 제품에 대해 우르두어로 표기된 검은색 팔각형 경고라벨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칠레·멕시코 등에서 시행 중인 팔각형 경고라벨 방식을 참고한 것으로, 소비자가 영양성분표를 직접 해독하지 않아도 한눈에 고위험 제품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제당뇨연맹(IDF) 최신 발표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파키스탄 성인 당뇨병 유병률은 31.4%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환자 수는 약 3,453만 명으로 중국·인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관련 학술 연구는 파키스탄의 연간 당뇨병 진료비 지출을 약 26억 달러로 추산(2021년)하며, 2045년에는 44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공중보건 진영은 이러한 수치를 근거로 초가공식품 소비 규제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 파키스탄 당뇨병 관련 주요 지표(20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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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파키스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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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당뇨병 유병률 |
31.4%(세계 1위) |
IDF Diabetes Atlas 11판(2024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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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 수 |
약 3,450만 명 |
2050년 7,020만명 전망, 미국 추월해 세계 3위 규모 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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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되지 않은 당뇨병 비율 |
26.9%(세계 5위) |
약 930만 명 미진단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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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당뇨병 관련 의료비 지출 규모 |
1인당 79달러 |
세계 최하위권(2위), 스위스 12,234달러, 미국 10,497달러 |
[자료: International Diabetes Federation(IDF) Diabetes Atlas 11판(2024), PMC 코스트연구]
진행 경과 : 2년째 심의,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제도
이 제안은 PSQCA 산하 기술위원회에서 2년 넘게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2026년 5월 기준으로도 시행 여부와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공중보건 단체들은 2026년 5월 총리에게 조속한 법제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같은 달 파키스탄식품산업협회(PAFI)도 총리에게 별도 서한을 보내 반대 입장을 전달하는 등, 정부와 업계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PAFI는 연매출 1조 루피, 고용인원 10만 명 이상 규모의 포장식품 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초가공식품 자체에 대한 관리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경고형" 라벨 대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Alimentarius) 기준에 기반한 완화된 표시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PSQCA 영양기술위원회의 구성이 최근 개편되면서 그동안 참여해 온 업계 대표들이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는 절차적 문제도 제기하고 있어, 정부가 업계 의견 수렴 없이 제도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지 언론은 이 사안의 쟁점을 설계와 시행 방식의 문제로 짚는다. 파키스탄 식품 소비의 상당 부분은 브랜드 없이 낱개로 판매되거나 정식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제조·유통업체를 통해 이뤄지는 비공식 유통망에 의존하고 있어, 정부의 감시·단속이 사실상 미치지 않는다. 경고라벨 규제가 등록·검증된 포장식품 기업에만 적용될 경우, 소비자가 표시 의무가 없는 비공식·비포장 제품으로 소비를 옮겨갈 가능성이 있어 정책의 실효성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싱가포르의 자율표시제(Healthier Choice Symbol)처럼 업계와의 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PAFI는 여기에 더해 경제적 파급 효과도 우려하고 있다. 포장식품 업계는 이미 고물가, 높은 세율, 전력 등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경영 부담이 커진 상태이며, 경고라벨 도입에 따른 재포장·성분 조정 비용까지 더해지면 제품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AFI는 이 경우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가 인증·검증되지 않은 저가 비공식 제품으로 이탈해 오히려 식품안전 사각지대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FOPWL 도입 관련 이해관계자별 입장 비교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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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보건 당국 및 시민단체 (PANAH, Heartfile 등) |
식품 업계 및 비즈니스 협회 (OICCI, PBC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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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입장 |
즈각적인 의무적 FOPWL(전면경고표시제, 흑색 팔각형) 도입 |
일방적 도입 반대, 충분한 협의 및 자발적 개선 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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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근거 |
비감염성 질환 급증 차단, 저문해율 인구 보호 |
비공식 시장과의 형평성 문제, 포장재 변경 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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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점 |
과학적 영향 프로필 모델 기반 강제 규제 |
점진적 로드맵 마련 및 식품 안전.보안 우선 |
[자료 : 현지 뉴스 자료 KOTRA 카라치 무역관 종합]
국제 동향과 비교
전면경고표시제는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칠레는 검은색 팔각형 경고라벨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실제 구매 감소와 제품 재구성(reformulation) 효과를 이끌어낸 사례로 꼽히며, 멕시코·이스라엘·페루 등도 유사한 경고형 라벨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영국의 신호등 표시제, 호주의 건강별점제도는 자율 방식으로 운영되며 구매 행태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접국 인도에서도 식품안전기준청(FSSAI)이 유사한 경고표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남아시아 지역 전반에서 관련 논의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파키스탄이 최종적으로 어떤 방식을 채택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나, 보건 당국이 강경한 경고형 라벨을, 업계가 완화된 표시 방식을 각각 주장하는 구도는 다른 국가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갈등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파키스탄의 경우 포장식품 이외에 비공식 유통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공식 유통망에만 적용되는 규제가 실제로 소비 행태를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병존한다는 점에서, 최종 제도 설계가 초기 제안과 달라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국 기업 시사점
파키스탄 현지에서는 최근 한류 콘텐츠 확산과 맞물려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카라치·이슬라마바드·라호르 등 주요 도시에서는 한국식 치킨·라면 등을 취급하는 곳이 늘고 있으며,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한류 축제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몰린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라면·과자·음료 등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 화장품을 포함한 소비재 전반에 대한 현지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어, 파키스탄을 신규 시장으로 검토하는 국내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흐름에서 이번 경고표시제 논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간과할 사안이 아니다. 규제가 확정된 이후에 대응을 시작하면 포장 재설계, 현지어 번역, 성분 재검토 등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는 만큼, 시행 여부가 가려지기 전인 지금이 오히려 정보를 축적해 둘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제도가 시행될 경우 적용 대상은 라면·과자·음료·소스 등 당류·나트륨 함량이 높은 품목군이 될 가능성이 크며, 국내 기업이 이미 확보한 해외 수출용 포장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둘째, 라벨은 우르두어 표기가 전제되는 만큼 현지어 라벨링 대응 체계를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 셋째, 제도 확정 이전이라도 PSQCA의 기술위원회 논의 동향, PAFI 등 업계 단체의 입장, 국회 심의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해 두면 실제 시행 시 대응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이번 사안은 아직 규제로 확정되지 않은 단계이지만 파키스탄 정부가 식품 라벨링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파키스탄 식품·소비재 시장에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은 지금 단계에서부터 현지 라벨링 규제 동향을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료: Ministry of National Health Services, Regulations & Coordination, PSQCA, Pakistan National Heart Association(PANAH), Pakistan Association of Food Industries(PAFI), International Diabetes Federation(IDF), The News International, Business Recorder, WHO, Dawn, KOTRA 카라치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