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는 원자력 발전 확대와 함께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장기 에너지 정책의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20기가와트(GW)로 확대하고, 이 가운데 5GW를 SMR로 확보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대형 원전 건설과 함께 차세대 원전 기술 도입을 병행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캐나다·한국 등과의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자국 기업의 기술 개발과 산업 기반 구축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가 작고 모듈 형태로 제작할 수 있어 건설 기간을 단축하고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차세대 원전으로 평가받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SMR 건설비는 1킬로와트(kW)당 2000~6000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를 기준으로 튀르키예가 2050년까지 추진하는 5GW 규모의 SMR 구축에는 약 100억~30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SMR은 기존 원전 대비 장점이 있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초기 투자비가 낮아 다양한 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고, 공장 제작과 모듈 생산을 통해 건설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운전과 유지·보수가 상대적으로 단순해 운영비 절감도 기대되며, 발전 효율 향상과 방사성 폐기물 발생량 감소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이러한 특성은 전력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국가에서 새로운 원전 도입 방안으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동시에 갖춘 국가다. 정부는 SMR을 통해 국내 전력 공급 기반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원전 산업과 기술 협력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튀르키예는 해외 선진 기술을 적극 도입하면서도 자국 산업 기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과의 협력이다.


미국과의 협력

튀르키예 기업 IC홀딩은 2026년 7월 미국 ARC 클린테크놀로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나트륨 냉각 방식의 차세대 SMR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튀르키예에 총 1000MW 규모의 원자로 10기를 건설하고, 인접 국가에도 추가로 10기를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원전 건설 사업을 넘어 튀르키예와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SMR 시장을 함께 개척하겠다는 구상이다. IC홀딩은 원자로를 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개발과 인허가, 현지화, 공급망 구축, 상용화를 아우르는 장기적인 기술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튀르키예와 동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SMR 기술 상용화를 위한 라이선스 협력도 추진하고 있어 해외 기술을 기반으로 자국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려는 전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 정부는 2025년 7월 금융 지원을 통해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 수출입은행(EXIM)과 국제개발금융공사(DFC)가 튀르키예의 원자력 사업, 특히 SMR 프로젝트를 지원할 준비를 마쳤으며 사업성이 확보된 프로젝트가 제안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루마니아와 폴란드 원전 사업에 대규모 금융지원 의향서를 발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튀르키예에서도 투자 기회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은 금융 지원뿐 아니라 산업 협력 측면에서도 튀르키예와의 협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미국 측은 이미 튀르키예 기업들이 해외 원전 프로젝트에서 부품과 장비, 각종 서비스를 공급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산업 기반이 양국 간 SMR 협력 확대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력 협력을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캐나다와의 협력

캐나다와의 협력도 기술과 산업 생태계 구축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되고 있다. 캐나다 원자력 서비스 기업 키넥트릭스와 튀르키예 엔지니어링 기업 누클린(Nuclean)은 튀르키예와 신규 원전 도입국을 대상으로 SMR과 첨단모듈원전(AMR) 사업 기회를 공동 발굴하기로 한 것으로 2026년 3월 알려졌다. 양사는 원전 전 주기 서비스 역량과 현지 엔지니어링 능력을 결합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모듈형 원자로 부품 생산과 공급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계획이다.

누클린은 튀르키예의 SMR 목표인 5GW가 최소 16기의 SMR 건설에 해당하며 국내 시장 규모가 약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부품 생산과 공급망 구축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에서 국내외 기업의 역량을 결합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캐나다 측 역시 축적된 원전 프로젝트 경험을 활용해 튀르키예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모듈형 원자로 사업에도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년 6월에는 누클린과 캐나다 포틀랜드홀딩스 인베스트코는 SMR과 기술 이전, 전문 인력 양성, 공급망 구축, 투자 및 금융 조달 등을 포괄하는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교육과 산업 참여 확대, 투자 기반 조성까지 포함하는 장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데 의미가 있다. 튀르키예 기업들이 캐나다 원자력 생태계에 참여하고 대학과 연구기관, 전력회사, 엔지니어링 기업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한국과의 협력

한국과의 협력도 SMR 산업 기반 확대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튀르키예 원자력 기술 기업 누클린과 한국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개발사업단(i-SMRDA)은 튀르키예와 주변 지역의 SMR 프로젝트 개발과 사업 기회 발굴, 튀르키예 제조업체의 글로벌 i-SMR 공급망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력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번 협력은 튀르키예의 청정에너지 전환과 장기 원자력 발전 목표 달성을 지원하는 지속 가능한 SMR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은 2028년까지 혁신형 SMR 표준설계 인가를 획득하고 2030년대 세계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 양국 협력은 차세대 원전 시장에서 의미 있는 협력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지에서도 한국의 SMR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I사의 사업개발(Business Development) 책임자 K씨는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튀르키예는 국토가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어 기존 대형 원전 방식은 발전소와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SMR을 지역별로 분산 배치하면 전력망 연결과 관련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어 튀르키예에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업계에서도 한국의 SMR 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국 개발 노력

해외 협력과 함께 자국 기업들의 독자적인 기술 개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산기업 바이카르의 SMR 개발이다. 2025년 12월 튀르키예 에너지·천연자원부는 바이카르가 40MW급 SMR 설계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바이카르는 세계적인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원전 기술 확보와 대규모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자체 기술 개발 의지를 나타냈다. 이에 맞춰 튀르키예 정부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민간기업이 국산 SMR 시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튀르키예는 미국과 캐나다, 한국 등 주요 국가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자체 기술 개발과 산업 기반 육성을 병행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기술과 자본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자국 중심의 원전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점이 현재 추진되는 SMR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사점

SMR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글로벌 SMR 공급업체들은 튀르키예 시장 진출 시 현지 인허가 요건과 규제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별 규제 체계의 차이는 사업 일정과 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제 자본 유치도 사업 성공의 핵심 요소다. 해외 투자는 설계 인증과 부지 인허가 등 초기 비용을 충당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선진 원전 기술과 운영 경험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면 규제 리스크와 공사비 증가 위험을 줄이고 다른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사업 추진 방식으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협력(PPP)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정부는 규제 지원과 초기 자금을 제공하고 민간은 기술과 투자 자금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에너지 기업과 벤처캐피털, 기관투자자 등 다양한 민간 자금을 활용하고 프로젝트 대출과 자기자본 투자를 병행하면 사업 특성과 위험 수준에 맞는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기존 원전보다 투자비가 적고 건설 기간이 짧다는 SMR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투자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국가 차원의 전략 수립과 규제 체계 마련은 물론 연구개발 지원, 설계 인증, 부지 인허가, 최초 모델 설계(FOAK) 등에 필요한 초기 비용은 민간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SMR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2050년까지 100억~3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튀르키예의 SMR 사업은 단순한 신규 발전설비 건설을 넘어 국가 에너지 전략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장기 프로젝트다. 글로벌 협력과 자체 기술 개발, 안정적인 금융 조달과 제도적 지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면 튀르키예는 차세대 원전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 : 현지 언론 Daily Sabah, Anadolu Agency, Nuclear Business Platform 및 무역관 보유자료 등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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