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싱가포르의 임금은 명목임금 상승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물가 안정에 힘입어 실질임금 개선세를 이어갔다. 기업들의 보상 전략 역시 일률적인 임금 인상보다 핵심 인재 유지에 재원을 집중하는 방향이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최근 싱가포르 노동시장에서 지속돼 온 흐름이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금은 기업의 인건비와 투자 수익성, 소비자의 구매력과 시장 수요를 함께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만큼, 이러한 변화는 싱가포르 진출·투자·수출을 검토하는 기업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가 안정과 싱가포르달러 강세가 만든 실질임금 개선
<명목·실질임금 변화 추이(2015~2025년)>

[자료: 2025 싱가포르 노동부(MOM) 산하 인력 연구 통계국 조사 보고서]
싱가포르 노동부(Ministry of Manpower, 이하 MOM)가 올해 5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정규직 근로자의 명목임금 상승률은 4.9%로, 2024년(5.6%)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에서 0.9%로 꺾이면서 실질임금 증가율은 오히려 2024년 3.2%에서 2025년 4.0%로 확대됐다. 즉, 2025년 근로자들의 구매력 개선은 임금 상승 속도가 물가 상승 속도를 앞지르면서, 실제 소비 여력이 늘어난 효과다.
싱가포르 통화청(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 이하 MAS)은 이러한 물가 안정의 배경으로 국제 원자재·수입물가 상승세 완화와 싱가포르달러 강세를 꼽는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 경제의 특성상, 통화 강세는 수입품 가격의 상승 압력을 낮추는 효과를 낸다. 다만 MAS는 글로벌 공급망 회복과 국내 수요 안정 역시 함께 작용했다고 분석하며, 임대료 등 환율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항목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2025년의 실질임금 개선은 물가·환율·글로벌 비용 여건이 겹쳐서 만들어낸 복합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일률적 인상 대신 핵심 인재 중심 보상에 나선 기업들
<총임금 변동(인상·동결·삭감)별 추이(2015~2025년)>

*주: 상단부터 순서대로 임금인상, 동결, 삭감을 나타냄
[자료: 2025 싱가포르 노동부(MOM) 산하 인력 연구 통계국 조사 보고서]
실질임금 개선과 달리 기업들은 임금 인상에 전반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임금을 인상한 기업의 비율은 2024년 78.3%에서 2025년 72.4%로 줄었고, 임금을 동결한 기업의 비율은 18.5%에서 24.5%로 늘었다. 다만 이는 경영실적 악화 때문이 아니다. 2025년 흑자 기업 비율은 83.1%로 오히려 2024년(80.8%)보다 높았다. 즉, 기업들은 개선된 실적을 전 직원에게 일괄 분배하기보다 지정학적 갈등과 관세정책 등 향후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별적으로 배분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선별적 배분의 기준이 바로 '직원 유지(Employee Retention)'다. MOM 조사에서 기업들은 임금을 인상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이를 꼽았는데, 이는 모든 직원에게 똑같은 인상률을 적용하기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인재에게 보상을 집중시키는 접근과 맞닿아 있다. 특히 금융, 기술, 전문서비스 등 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은 분야에서는 시장 수준의 임금뿐 아니라 경력개발 기회, 교육훈련, 유연근무제와 같은 비금전적 보상의 중요성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산업별로 엇갈린 임금 상승폭
또한 모든 주요 산업에서 임금이 올랐지만 그 폭은 산업마다 달랐다. 다만 이러한 산업별 편차는 앞서 살펴본 기업의 선별적 보상 전략과는 별개로 정부의 임금정책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업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정부의 임금정책에 따른 단계적 임금 기준 상향이 산업 전체의 평균 임금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산업 분야는 행정·지원서비스업으로 7.5%에 달했다. MOM은 청소, 보안, 조경 등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직종에 적용되는 *점진적 임금 모델(Progressive Wage Model, PWM)과 *최소 로컬 근로자 급여 기준(Local Qualifying Salary, LQS) 제도가 이 같은 상승을 이끈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주: 점진적 임금 모델(PWM)이란 청소, 보안, 조경 등 저임금 업종에서 근로자의 기술 습득과 생산성 향상에 맞춰 직무별 최소 임금 수준과 단계적인 임금 인상 경로를 정한 제도다. 단순히 임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과 임금 인상을 함께 유도하는 것이 핵심 취지다.
*주: 최소 로컬 근로자 급여 기준(LQS)이란 외국인력을 고용하는 기업이 현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최소 임금 기준이다. 이 기준을 충족해야 외국인 고용 쿼터와 취업비자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보험서비스업(6.6%)과 금융서비스업(5.9%) 같은 금융 분야는 전문 인력을 확보하려는 기업 간 자발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교적 높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이는 앞서 다룬 '핵심 인재 유지' 논리가 실제 작동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숙박업(3.9%)과 건설업(4.0%)은 팬데믹 이후 급증했던 인력 수요가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상승률에 머물렀다.
싱가포르의 임금 조정 메커니즘과 향후 전망
과거 경기 국면을 보면 싱가포르의 임금 조정 메커니즘은 변화하는 여건에 대체로 잘 대응해왔다. 2020년 팬데믹 등 침체기마다 임금 상승세는 주춤했지만, 이후 생산성 개선과 노동시장 회복에 힘입어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그 배경에는 PWM과 국가임금위원회(NWC) 지침 같은 제도적 장치가 있다. PWM이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면, NWC는 경제성장률·물가·생산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년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노사가 지속 가능한 임금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금년에도 임금은 완만한 오름세를 이어가겠지만, 기업의 임금 인상은 한층 신중해질 전망이다. MAS는 거시경제 보고서에서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 지정학적 리스크, 에너지·운송비 변동성을 향후 물가의 주요 변수로 제시했다. 이런 요인이 커진다면 명목임금이 오르더라도 실질 구매력 개선폭은 2025년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MOM 역시 기업들이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숙련 인력 확보가 까다로운 직무를 중심으로 한 보상 경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시사점
현지 채용이 필요한 한국 진출기업이라면 평균 인상률보다 직무별 시장임금을 기준으로 보상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 기술, 전문서비스 등 핵심 직무에는 경쟁력 있는 임금과 경력개발 경로를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임금 인상의 주된 목적으로 '직원 유지'를 꼽는다는 점은, 인재 '유치' 못지않게 '유지'하는 전략도 함께 고민해야 함을 보여준다.
싱가포르 내 투자를 검토하는 단계라면, 초기 투자비뿐 아니라 중장기 인건비 증가를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PWM·LQS는 저임금 관련 직종 제도지만 그 상승이 누적되며 산업 평균 임금을 함께 끌어올리고, 여기에 핵심인재 확보 경쟁까지 더해져 저임금·고숙련 직군 양쪽에서 인건비 압력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수출기업에게는 실질임금 상승은 싱가포르 소비자의 구매력 개선을 의미하는 기회 요인이다. 프리미엄 식품, 뷰티, 헬스케어, 교육, 디지털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소비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요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산업·직무별 임금 상승폭이 다른 만큼 싱가포르를 단일한 '고소득 시장'으로 보기보다 여전히 소비계층별 세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료: 싱가포르 노동부(MOM), 싱가포르 통화청(MAS), The Straits Times, Channel NewsAsia, The Business Times 등 현지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