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부터 시작된 이른 폭염은 여름철 이탈리아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 로마, 밀라노, 피렌체 등 주요 도시에 잇따라 폭염 경보가 발령되면서 여름철 고온 현상이 장기화되고 일상화되는 양상이다. 과거 이탈리아의 가정용 에너지 설비 수요는 겨울철 난방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으나, 최근에는 폭염의 장기화로 냉방 설비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기존에는 가스보일러를 중심으로 겨울철 난방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고효율 냉난방 통합 설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는 추세다. 여기에 EU의 건물 탈탄소화 정책이 더해지면서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은 단순한 가스보일러 교체시장에서 히트펌프, 하이브리드 시스템, 스마트 제어 기반의 고효율 설비시장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의 전환, 시장의 기준은 달라지는 중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은 기존 가스 인프라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시장의 평가 기준은 점차 고효율·저탄소·냉난방 통합형 설비로 이동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오래된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많고, 기존 주택에 가스 배관과 라디에이터 기반 난방설비가 널리 구축되어 있어 가스보일러가 여전히 중요한 난방기기로 사용되고 있다. 난방설비 교체 시에도 기존 배관, 배기 구조, 설치 공간, 건물 단열 수준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가스보일러가 단기간에 급격히 사라지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최근 판매 지표는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Assotermica에 따르면 2025년 이탈리아 벽걸이 보일러 판매량은 76만9090대로 전년 91만1899대 대비 15.7% 감소했다. 바닥형 보일러와 송풍식 보일러도 각각 24.0%, 14.7% 감소했으며, 가스 온수기 판매량은 29만1084대로 전년 대비 6.1% 줄었다. 반면 버너는 2만5581대로 전년 대비 8.7% 증가해 일부 품목에서는 상반된 흐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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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Assotermica]
Assotermica는 이러한 감소세를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난방설비 교체와 에너지효율 개선이 둔화될 수 있는 구조적 불확실성으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여전히 약 900만 대의 노후 난방기기가 남아 있으며, 이들 설비는 최신 고효율 제품보다 에너지효율이 낮고 환경 부담이 크다. 따라서 판매 감소는 가스보일러 수요 자체가 증발했다기보다, 인센티브 축소와 제도 변화 속에서 소비자와 설치업체가 설비 교체를 미루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장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존 가스보일러를 동일한 방식으로 교체하는 수요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고효율 콘덴싱보일러, 저Nox(질소산화물) 제품, 스마트 온도제어, 하이브리드 시스템 연계 가능성이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폭염으로 냉방 수요까지 커지면서, 난방기기는 단순 난방설비에서 냉난방 통합형 에너지 설비로 성격이 확대되고 있다.
폭염과 탈탄소가 이끄는 시스템 전환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은 단순히 가스보일러가 히트펌프로 빠르게 대체되는 구조로 보기 어렵다. 기존 주택의 가스 배관, 라디에이터 기반 난방설비, 노후 건물 구조를 고려하면 가스 기반 설비는 당분간 시장의 한 축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폭염으로 인한 냉방 수요 확대와 EU 탈탄소 정책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단순 난방기기 교체에서 고효율·전기화·냉난방 통합 설비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여름철 폭염이 반복되면서 가정 내 쾌적성 확보가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겨울철 난방만 담당하는 설비보다, 난방과 냉방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히트펌프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받는 설비로,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 기능을 제공할 수 있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냉난방 통합형 대안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탈리아에서 히트펌프가 단기간에 가스보일러를 전면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오래된 주택의 단열 성능, 초기 설치비, 전기설비 용량, 실외기 설치 공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간 상대가격, 설치기사의 숙련도 등이 전환 속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라디에이터와 가스 배관을 갖춘 주택에서는 설비 전체를 한 번에 전기식으로 바꾸기보다,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이탈리아 시장의 과도기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히트펌프와 가스보일러를 결합해 외기 온도, 에너지 가격, 난방 부하에 따라 운전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주택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에너지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와 설치업체 모두에게 비교적 수용성이 높은 방식이다.
따라서 향후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은 하나의 기술이 다른 기술을 빠르게 대체하는 형태보다는, 주택 유형과 에너지효율 수준에 따라 다양한 설비가 병존하는 구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주택에서는 고효율 콘덴싱보일러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교체 수요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으며, 신축 및 고효율 주택에서는 히트펌프와 냉난방 통합형 설비의 적용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는 보일러, 히트펌프, 태양광, 스마트 온도조절기, 에너지관리시스템 등을 연계해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는 통합 제어 솔루션의 중요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EU 정책과 이탈리아 지원제도, 화석연료 단독 보일러보다 하이브리드·전기화 설비에 무게
시장 변화의 또 다른 축은 EU의 건물 에너지효율 정책이다. EU는 건물 부문의 에너지 소비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을 개정했으며, 2050년까지 탈탄소 건물 재고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2025년부터 화석연료 기반 단독 보일러에 대한 재정 인센티브를 중단하는 방향이 제시되면서, 가스보일러 시장은 정책적 압박을 받고 있다.
다만 이는 가스보일러 판매가 즉시 중단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심은 ‘화석연료 단독 설비’에 대한 지원은 줄이고, 재생에너지 기반 설비와 결합된 하이브리드 시스템, 히트펌프, 고효율 설비로 정책 지원의 초점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시장에서도 기존 가스보일러를 단순히 교체하는 방식보다,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향후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설비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이탈리아의 난방설비 지원제도에도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Conto Termico는 이탈리아 에너지서비스관리기관인 GSE가 운영하는 에너지효율 및 재생열 지원제도로, 소규모 에너지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기반 열 생산 설비 도입을 지원한다. 연간 9억 유로 규모의 재원을 바탕으로, 적격 비용의 최대 65%까지 자본보조금 형태로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원 대상은 히트펌프, 태양열 집열기, 고효율 난방설비, 재생에너지 기반 열 생산 설비 등으로, 기존 화석연료 설비를 단순 교체하기보다는 건물의 에너지효율 개선과 재생열 전환을 촉진하는 데 초점이 있다.
또 다른 제도인 Ecobonus는 에너지효율 개선 공사에 대해 세액공제 방식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ENEA의 Ecobonus 안내에 따르면 고효율 히트펌프, 저온 지열 시스템, 태양열 온수 시스템, 콘덴싱 보일러, 히트펌프와 콘덴싱 보일러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이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히트펌프와 콘덴싱 보일러가 함께 작동하도록 설계된 설비로 정의되며, 기존 가스보일러 중심 시장이 히트펌프·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전환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시사점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은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가스보일러 수요가 단기간에 사라지지는 않지만, 향후 시장의 중심은 고효율·저탄소·냉난방 통합형 설비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기업은 이 점을 고려해 단순 완제품 수출보다 전환기 수요에 맞춘 기술과 부품, 시스템 솔루션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지 바이어에 따르면, 이탈리아 난방기기 시장에서는 에너지효율과 보조금 적용 가능성이 제품 선택의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은 기존 가스 기반 제품에만 집중하기보다, 고효율 콘덴싱보일러 관련 부품, 히트펌프 부품, 스마트 제어 시스템, 에너지관리 솔루션 등 고효율·저탄소 설비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분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탈리아 시장에서는 제품 성능뿐 아니라 설치 편의성, 유지보수성, 기존 설비와의 호환성도 중요하게 평가된다. 완제품으로 진출할 경우 CE, ErP, Ecodesign, EU 가스기기 안전규정 등 기준 충족이 필수적이며, 현지 설비 유통사, HVAC 전문 도매상, 설치업체 네트워크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기업은 단기 판매보다 현지 파트너십 구축, 설치기사 대상 기술 지원, A/S 신뢰도 확보를 병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자료: Assotermica, Assoclima, CRESME, EHPA, Mordor Intelligence, European Commission, Reuters, KOTRA 밀라노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