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의 여파로 미국 최대 유통기업인 월마트의 실적 전망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월마트는 지난달 발표한 1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2027회계연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를 2.75~2.85달러로 유지했다. 이는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2.91달러를 하회하는 수준이다. 월마트는 미국 내 동일 매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하고 영업이익도 5% 늘어나는 등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물류비와 연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매출 증가에 따른 수익성 개선 효과가 고유가에 따른 비용 상승에 상당 부분 상쇄됐다는 평가다. 월마트는 향후 경영 환경에 대해 신중한 전망을 내놓으며 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치를 발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유가 고공 행진, 미 소비자 행동 변화 촉발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중동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 일반휘발유 가격은 2월 말 갤런당 2달러 후반대에서 5월 중순 4.56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유가가 다소 안정되며 6월 9일 기준 갤런당 4.16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는 1년 전(3.12달러)보다 약 33% 높은 수준이다. 포춘(Fortune)은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활동이 지속되고는 있지만, 소비 방식에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소비자들이 지출 자체를 급격히 줄이기보다는 구매 품목과 소비처를 보다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년간 미국 일반 휘발유 가격 동향>

[자료: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이러한 트렌드는 소비자들의 주유 행태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스트코(Costco), 샘스클럽(Sam’s Club), BJ’s 등 창고형 매장들은 일반 주유소보다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동 전쟁 발발 이후 방문객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들이 한 번에 가득 주유하기보다 소량씩 자주 주유하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존 데이비드 레이니(John David Rainey)는 “월마트와 샘스클럽 회원들의 방문당 평균 주유량이 2022년 이후 처음으로 10갤런 미만으로 감소했다”며 “소비자들이 경제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비 위축은 6월 10일 발표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도 반영됐다. 5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4.2% 상승해 전월(3.8%)보다 오름폭이 확대되며 2023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란과의 갈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린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저물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은 여전한 모습이다.
<지난 20년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동향>

[자료: Bureau of Labor Statistics]
고유가 장기화와 소매판매 둔화, 비필수 소비재 감소세 뚜렷
레스토랑 컨설팅 업체 레비뉴 매니지먼트 솔루션즈(Revenue Management Solutions)의 분석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이 상승할수록 외식 방문 횟수는 점차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평균 주유비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설 경우 외식 소비 감소 효과가 두 배 이상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맥도날드는 고유가 지속으로 저소득층 소비가 위축되면서 세트 메뉴 대신 단품 주문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며, 가구 소득 4만5,000달러 미만 고객층의 방문도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맥도날드는 수요 회복을 위해 4월 중순부터 미국 내에서 3달러 이하 메뉴를 추가하고, 4달러대 아침 식사 가성비 세트를 도입하는 등 가격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로이터(Reuters)는 맥도날드 외에도 쉐이크쉑(Shake Shack), 파파존스(Papa Johns), 도미노피자(Domino’s Pizza) 등 미국 주요 외식 체인들도 전쟁 여파로 인한 소비 둔화 속에서 유사한 매출 성장 둔화 흐름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감소하자 비필수 소비재 지출도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4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5% 증가에 그치며 3월(1.6%) 대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반면 주유소 판매는 2.8% 늘어나 에너지 관련 지출 부담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차량 및 부품 판매는 0.4%, 의류·액세서리는 1.5%, 가구류는 2.0% 감소했다. 백화점 매출도 3.2% 줄어들며 소비자들이 필수 지출을 제외한 소비를 줄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산 효과 끝? 고소득층 내 확산하는 트레이드 다운
이 같은 고유가 압박은 미국 전 소비 계층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토드 바소스(Todd Vasos) 달러제너럴 CEO 역시 "유가 갤런당 4달러를 임계점으로 보고 있다"며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 가구까지 점차 할인 매장을 찾는 추세"라고 밝혔다. 그동안 자산 가치 상승으로 미국 소비를 주도해 온 고소득층마저 최근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지갑을 닫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식료품 및 생필품 소비에서도 브랜드 제품 대신 가격이 저렴한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 상품이나 저가 대안재를 선택하는 이른바 '트레이드 다운(저가 제품 선호)' 현상이 전 계층으로 심화하는 모습이다.
시사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관세 부과 충격에 중동 분쟁에 따른 고유가 악재가 겹치며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이 내내 3%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았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시점 역시 당초 예상보다 늦춰져, 올해는 동결 기조를 유지한 뒤 2027년 중순에야 첫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투자 은행에 근무중인 A씨는 KOTRA 뉴욕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실질임금 감소로 인한 소비 둔화가 이미 현실화하는 단계"라며 "시장 내에서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반면, 오히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주목하는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인 우리 기업들은 이처럼 급변하는 미국 경제 환경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에 맞춘 진출 전략을 재수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료: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Times, Reuters, Fortune, Fox Business, AAA,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Bureau of Economic Analysis, Goldman Sachs, KOTRA 뉴욕무역관 자료 종합